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서른두 살에 받는 암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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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의사 선생님께서는 갑상선 쪽으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는 소견을 주셨고, 나는 별생각 없이 관련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내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찼다. ‘암이면 어떡하지?’로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암에 걸릴 정도로 뭘 잘못한 게 있나?’라는 생각에 닿아 온 생을 통찰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몸을 아꼈다. 누가 딱히 시킨 것도 아닌데 몸에 좋은 음식을 좋아했고 가공식품은 기피하였으며, 운동도 꾸준히 하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도 약초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몸에 좋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더더욱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말라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는 차라리 ‘나는 암이 맞다’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생각해보고자 했다.
‘다음은 뭐지?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나? 아니지. 투병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회사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일을 하는 게 아니었고,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냥 암이 맞다고 생각하자.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는 것보다는 내가 받을 충격이 덜 하겠지. 야, 생각해 봐. 예전에 괜한 일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로 테스트 결과 기다릴 때의 두려움 보다 지금이 덜한 것일걸?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때에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암 진단받는 게 마음이 더 나을걸’ 등 내 특유의 유머 재간을 발휘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온라인상에 있는 갑상선암 관련 콘텐츠를 모조리 찾아보았다. “거북이암”이라고도 불릴 만큼 다른 암에 비해 진행 속도가 느려 “착한 암”이라고까지 불린다 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괜찮다……. 괜찮아, 암이어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나를 다독이며 내키지 않는 마음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 99% 암이 맞습니다. 갑상선 유두암의 종류로…….”
오늘 내가 암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일단 암 보험 관련해서라도 어머니께는 이야기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께는 엄두도 안 난다. 왜인지 모르게 내가 암이라고 말하면, 아버지께서 버럭 하실 모습이 먼저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 남자친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다. 도한이는? 도한이는……. 타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애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까, 안 하는 것이 나을까 진지하게 고민된다. 입장 바꿔서 나라면 그의 병에 대해 아는 것이 나을까, 모르는 것이 나을까?
하필이면, 왜 나일까? 내 안에는 이런저런 의문들이 튀어나왔고,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어 일기장에다가 주야장천 썼다.
안녕하세요, 여로예요.
정말 오랜만에 책을 엮을 생각을 하니 흥분되는 거 있죠. 그동안 책 안 엮고 뭐 하고 살았나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기도 했답니다. 역시 혼자 일기장에 쓰는 글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오늘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복한 하루 보내세요♥
여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