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는 계기
프롤로그
「그럼, 수진 님은 얼마 정도의 여윳돈을 통장에 남겨둬야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나라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등 정해진 바가 아무것도 없는 이 상태에서?」
나는 이 질문을 수진 님에게 했고, 질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었다.
'아, 이거 돈의 문제가 아니구나!', '내 잔고에 얼마가 남아 있든, 떠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제로구나!'
나는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지금 보다 어렸던 20대 중반에는 함께 떠날 친구도 있었고 시간도 있었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다. 패기는 넘쳐흘렀는데, 하루 벌어서 하루 살 때다 보니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때는 '나한테 목돈으로 몇 천만 원만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울텐데…….'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30대 초반이 된 나는 간절했던 그 몇 천만 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때 꿈꿨던 것처럼 자유롭지는 못하다. 사실 내가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지를 한지도 얼마 안 됐다. '이 나이에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해서 그냥 가보는 게 맞나', '돈도 얼마 못 모아놨는데 이걸 지금 써도 되나'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나의 생각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지금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돈이 조금 있기도 하고, 그렇다면 지금이 떠나기에 가장 좋은 때 아니에요?」라는 수진의 말에 겨우 내 상태를 인지했으니 말이다.
서른세 살,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인으로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 생활에 비교적 만족하며 사는 편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에 회사 경기가 부쩍 나빠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기적으로 받던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 판정을 받게 되었고, 나는 이 우주의 부랑자 마냥 떠돌기 시작했다.
정말 말 그대로 여기저기 떠돌면서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지?', '어떤 일로 돈을 벌면 좋을까'등 내 안에서 새삼 새로운 질문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잘 생각해 보면 안정적인 직장인 생활을 할 때에는 그저 맹목적으로 돈을 벌었던 것 같다. 가끔씩, 받는 돈에 비해 일을 많이 해야 했던 달에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런 고민도 체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끝까지 파고들 수 없었고 일상의 고단함에 쉬이 놓쳐버렸다.
회사를 나오고 난 후, 열 달이 가까운 시간 동안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면서 내 안에 있는 나를 찾고자 한다.
「나는 무엇까지 되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내게 아주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궁금하다.
안녕하세요, 여로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 공간을 찾은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책을 엮은 지도 어언 8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그간의 이야기들을 지면으로 나누면서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거기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가 있는 거 알죠?
오늘도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