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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Feb 18. 2023

Живи, как живешь

하지만 큰 죄를 짓지는 마라

10여년 전의 일기


작업을 위해 켠 맥에서 정체불명의 폴더를 열자 등장한  이 일기에 그 때 심히 안타까워 하시며 마치 간청하듯 말씀했던 교수님과 실실 웃으며 들었지만 집에 오는 내내 생각이 나 오자마자 적어 두었던 그날이 어렴풋 아니 생생히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때도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더욱 고맙다.

그런데 왜일까.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준 사람에게 더욱 연락하지 않게 되어버린 까닭은. 아무래도 내가,

자신에게 실망해서가 아닐까.



TMI : 나는 작곡 전공자였으나 은혜로 오르간과에 넘나드는 허락을 받아 가끔 학교의 오르간과 연주회나 제자 연주회에도 참여. 작곡, 오르간, 지휘수업을 가장 사랑했는데 이 세 레슨을 가장 적게 다닌 모순의 인간.


* 교수님 : 성격이 불같고 열정이 대단한 분으로 직설적이고 실력이야 당연 좋지만 교수들 사이에서 약간 ㄸㄹㅇ로 인식되기도 하셨던. 날 데려올 때에도 학기가 한참 지난데에다 제자 수 꽉 차서 안 된다고 학과장이 절대 불허 했음에도 끝까지 싸우시면서 결국 러시아 학생을 쫓아내고 나를 들이기로 했다고 매우 자상하게 말씀하시던 무서운(?) .


쫓겨난 학생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 군가에게 피해를 주며 들어오고 싶지 않아 비록 꿈같은 오르간 클래스였지만 스스로 나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성격.


예수님을 믿으나 성가대가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듣기 괴로워 자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시면서도, 나를 설득시키려 할 때마다 성경구절로 꼭 한 번씩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던 분.

(나는 괴로워도 교회는 끝까지 참고 다니는 듯..)


참고로 러시아 학생이 다 그러했듯 나도 교수님께

오랜 세월동안 단 1루블도 따로 낸 적은 없다.

종종 방학중의 레슨에도 돈 한 푼 받고자 한 적 없이

교수님은 사명을 다하듯 제자를 힘써 사랑해 주셨다.


* 마샤 : 교수님의 딸. 자기 인형에다 내 한글이름을

똑같이 붙여서 인형 이름(?)을 날마다 부른 덕에,

비록 내가 레슨에 잘 오지 않아도 교수님이 내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었던, 귀여운 꼬마.


* Живи, как живешь : Live as you live


Живи, как живешь



생각나는대로 적어놔야 할 것 같아서.

떠오르는대로 남겨놔야 할 것 같아서.


비록 내가 오늘 정신이 너무나 없지만

교수님을 통해서 들은 말이 실제로는

하나님 - 당신으로부터임을 아니까...


좋은것도 싫은것도 있었지만 구분말고

기억나는만큼은 무작정 적어놓는다.  



생각해봐.

네가, 마샤가 입어주기를 바래서 준 이 옷을

내 딸이 안 입고 방구석 아무데에나 놨다가

걸레로 쓴다면 네 기분이 어떻겠어.

하나님이 너에게 달란트를 줬는데,

그걸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아무렇게나 산다면,

재능 준 분의 입장과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너한테 어떤 강렬한 사랑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넌 뭐가 그렇게 겁이 나.

니가 기차역에서 화장실에 갔다 쳐.

그런데 변기통에 여권을 빠뜨린 거야.

그럼 넌 그 다음부터는 화장실에 안 가냐.

아, 여권을 빠뜨린 적이 있어,

그러니 난 평생 화장실에 안 갈거야, 이래?


뭘 웃어, 들어봐. 잘 들어.

난 정말 죄가 많은 사람이야. 그래 다 죄인이지,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신이 나에게 그렇게 살도록 하지 않았는데

내가 큰 죄를 지은 사람이야.

하지만 하나님이 너무 자비로우셔서

나에게 용서와 정말 많은 것을 주셨어.

들어봐. 이번엔 나 자신을 예를들어 얘기해줄게.


난 아들과의 관계도 그랬고 너무 힘들고 질린 

있었기 때문에 지금 부인과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를 원하지는 않았어. 얼마나 피했는데.

아내는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어. 부탁만 했지.

하지만 내가 거절했어. 그러다 생각해보게 됐지.


내가 과연, 거절할 자격이 있는가.

그녀가 가진 권리로 부탁하는 당연한 것을,

내가 거절할 자격이 있는가.

신이 하도록 한 것을 내가 거절할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어.


너 그거 아니?

난 지금 마샤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해.

집에 돌아가면 내 딸이 자고 있는데 그걸 보는 나는

천국이 따로 없어.


내가 순종했더니, 하나님은 나에게 행복을 주신거야.

하나님은 네게 나쁜것을 허락해 선사하는 분이 아니시다.


네가 좋은 것을 원한다면.

결코 나쁜것을 주지 않아.


живи, как живёшь 라는 말이 있어.

просто 와 простовато 는

다른 의미라는 것 너도 알지?


너한텐 이루말할 수 없는 재능이 너무 확연하게 있어.

그리고 넌 분명히 여자야.

그럼 너는 네 일- 오르간을 해야하고 작곡을 해야 해.

하지만 때가 되면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족을 이뤄야 해. 그게 신이 너에게 주신 본분이야.


죄를 안 지으려고 하면서 사사건건 작은 일에

조바심 내다가 오히려 커다란 죄를 내내 짓는

경우가 있어. 너 지금 안 그러니?

넌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재능을

우습게 여기기도 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외면하려는 큰 죄를 짓고 있는거야.


네가 나를 정말 스승으로 여긴다면 진지하게 들어.

나도 충분히 겪었어.

적어도 너에게 없거나 아닌 말을 하지는 않아.


네가 행복하다고?아니 너는 행복하지 않아.

넌 행복이 뭔지 몰라.

너 혹시 여자를 좋아하는 거냐?그건 권하지 않는다.

그건 아니야.

그래 그럼 뭐가 문제야.

언제가 되는 게 중요한 것이란 게 아니라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거야.


애를 가지고 키우는 행복이

여자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야.

물론 네가 그 전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

연습하고.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미

얼만큼 이뤄놓은 상태니 시간 분배하는거지.


충분하다고? 넌 모든 게 겁나지.

무슨 일이든 어떤 관계든

네가 상상하거나 생각하는 만큼 되지 않을까봐

시작도 안  버리는 거지. 그렇지? 그래.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그건 전혀 올바르지 않아.


넌 그리스도인이잖아.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않니?

모든 선한것을 행하고, 계속 해나가라고 했어.

행함이 없는 것은 소용이 없어.

사랑도 믿음도 행함에 있지.



어 너 이상해. 너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정상적이지 않아.

어 나 너 이해 못해.  


준비가 다 됐을때만 오려면 뭐하러 와. 준비 다 되면

내가 뭘 하겠어. 넌 제발 좀 자주나와 응? 자주 나와.

금요일에 꼭 와. 알았지?

전혀 준비 안 됐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좀 와.

괜찮아, 넌 오기만 해. 일단 와.

넌 자꾸 와야 되.


너에게 많은 달란트가 있지만 신이 너에게 준 최고의

달란트는 хорошая душа(good soul)야.

너한텐 그게 있어.

외면하거나 거부하려 하지마.

깊이 생각해볼 시간이야.

너를 생각해서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живи, как живешь,

하지만 큰 죄를 짓지는 마라.


교수님의 바흐 - 토카타와 푸가 : 특히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실제로 듣는 것과의 차이가 가장 크다. 궁금해서 찾아갔던 교수님의 연주는 솔직히 완벽했다. 음반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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