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현실
나는 이상형을 세 번 만나봤다.
세 번의 만남을 가져봤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 세 명의 이상형과 마주쳐 봤다는 뜻.
한 명 만나기도 어려운데 세 명이나?
그럴 수도 있고
세 명이나 만났는데 한 명도 못.....?!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후자가 조금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ㅎㅎ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어려우나
세 명의 공통점으로는 왠지 외국인이었고
머리색과 성격(성향)이 동일했던 것이랄까.
이상형이라는 게 솔직히 본능적 요소 아닌가.
내가 무언가 생각하고 떠올려서 이상적으로
만들어 내는 희망 리스트 말고, 이유나 논리
따위 없이 그저 타고난 무언가에 의한 '그것'.
초딩 고학년 무렵일까 하여간 환상 속에나
있을 법한 어떤 막연한 이상형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인물들이 실존했다는 것.
TV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마주친 것.
1. American
아무 것도 모르던 초 6 막바지 무렵이었다.
미국 스키장에서 나만 스키를 탈 줄 모르자
강사가 1대 1 교습을 해 주었는데, 대개의
미국인이 그러하듯(?) 친절하고 활달했다.
커다란 고글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안 보여도
성격 하나는 끝내줬다. 나름 단단히 무장해온
나에게, 찬바람 들어가면 춥다며 조금이라도
틈새가 보일 때마다 자꾸 소매를 내려주거나
지루할 틈 없이 1시간 내내 재미있게 해 주고
리프트 타는 동안 넌센스 문제를 계속 내면서
배려 끝판왕에 모든 매너 기본 장착 다정다감.
내가 고개를 내리자 "앞을 보고 타야 해" 했는데
그래도 자꾸 아래를 보자, 자기를 보라며 매번
내려갈 때마다 마주보고 스키를 탔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뒤로 탄 거네.. 내려갈 때 계속 문제를
냈던 기억.ㅋㅋ 바닥 말고 자기(앞) 보게 하려고.
다시 나란히 리프트에 오르던 중 좀 답답해서
고글을 벗어 호주머니에 넣었더니, 고글 안 쓰면
추워서 안 된다며 괜찮다는데 자기 고글을 벗어
내 얼굴에 씌워 주었는데... 그 때! 1시간 남짓
같이 있어도 못 본 얼굴을 그 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굴까지 이상형인데?!?!??? 무엇ㅋㅋㅋㅋ
몹시 당황..ㅋㅋ까지는 아니라도 깜짝 놀랐던.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 아니
얼떨떨. 현실에는 없어야 할(?) 이상형 아닌가.
내 고글 있기도 하고, 이 사람 것 쓰면 이 사람은
못 쓰니까 다시 벗어 주려는데 기필코 말리면서
자기 것 쓰라고 해서 끝까지 쓰다 끝나고 돌려줌.
(이 사람 것은 따뜻한 재질, 내 건 선글라스 비슷)
마지막 스키를 타고 나에게 코코아 마실래?
Yes, 하자 코코아 타서 가져오던 게 마지막.
생각하니 웃기다...ㅋㅋㅋ 유일하게 내가 본
미국인 이상형의 어떤 표본과도 같던 인물.
어떤 영화배우 중에라도 그보다 마음에 든
미국인은 전혀 없다. 그러니 이상형 아닐까.
(Michael W. Smith도 이상형에 속하지만
목소리+음악+신앙 포함이라 조금 다를 수도)
2. Russian
고등학생 나이, 대학 다닐 때 지하철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오른편 조금 멀리에 그야말로
이상형이 서 있었다. 문제는(?) 어려보였다..
ㅋㅋ 몇 살인지 몰라도 나보단 무조건 어림.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못 본 척 하고 더는
안 봤는데 그 애가 성큼성큼 걸어 무려 바로
내 앞으로 오는 것이었다. 제대로 안 보아도
시야로 보이는 것. 또래 친구들 두 명이 더
있었는데 같이 이 근처로 왔지만 오직 얘만,
내 바로 앞에 섰고, 급격히 불편해진(?) 나는
애써 모른 척 했다. 사람이 참 영적존재인 게
모르려고 해도 알고, 의식이 되는 게 있잖나.
얼마나 대놓고 나를 보는지 차마 고개 들 수
없어 내적 갈등이 일어난 도중, 마침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일어나자 당연히 그 애가 앉았다.
내 신경도 온통 소년이었지만 소년만 솔직했다.
끝까지 모른 척 하기 위해(애 쓴다~) 가방에서
아무 거나 꺼냈는데, 독일에서 사 온 어린왕자.
왕초보라 읽어도 다 이해 못 하면서 막 읽는 척.
오직 책만 '쳐다보는' 나. 그런 나를 고개 돌려
빤히 쳐다보는 미소년, 끝까지 꿈쩍하지 않자
나중엔 책을 뚫어져라 같이 보다가, 친구들이
다가왔다. '내리나 보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소년이 일어날 때도 솔직히 당연히 의식 됐지만
그런 면에서는 절제력(?)이 최강이기 때문에
절대 고개 돌리지 않았는데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마자 "До свиданья!" 외치듯
하는 소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 보았다. 모스크바 지하철 문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게 빠르고 무섭게 닫히므로(그땐)
매우 짧은 순간이었고 나는 인사하는 그 애를
'보고' 끝났다. 러시아에 참 오래 살았지만 그
후에도 그 정도 이상형은 스쳐본 적조차 없다.
*소년이 한 말은 "안녕히 계세요!" 인사임ㅋㅋ
걔가 하니까 옆에 애들도 순간 같이 인사하고
내렸어 ㅋㅋㅋㅋㅋ 귀요미들 ㅋㅋㅋㅋㅋㅋㅋ
3. Portuguese
아... 여기가 제일 셌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
가장 심각하게 시험에 들어서 괴로웠던 기억.
왜냐하면 1번은 내가 어렸고 2번은 걔가 어렸고
원하면 자리 이동도 가능했으나, 마지막 무대는
무려 기내 안이었기 때문에 도망이 불가능했다.
나가려면 기내 문 열고 낙하산 탈 건가 어쩔..
어쩌면 매우 슬픈(?) 상황인 게, 왜 하필 내가
생얼에 땀에 찌들고 꼴이 말이 아닐 때였는가.
여자들 생얼 아니면서 생얼이라 할 때 있는데
내가 말하는 생얼은 No로션 100% 쌩.. 얼....
일평생 한 번 만나볼까 말까 한 이상형을 만난
나의 모습이 ㅋㅋㅋㅋㅋㅋㅋ 그러했던 이유는
그날 출발 직전까지 이삿짐 싸고 집을 치웠다.
사실 나는 짐을 잘 못 싼다. 재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하루 이틀 걸린 것이 아니라 찌들었고
특히 전날에는 '이러다 짐 다 못 싸서 한국 못
가는 것 아닌가'라는 심각한 현장에 있었기에
제대로 못 자고 짐 쌌는데도 청소까지 하느라
아침 일찍 샤워한 내 온몸은 땀으로 범벅됐고
생각해 보니 얼굴에도 아무 것도 못 발랐는데
마지막 크록스 실내화를 후배에게 던져주며
막 뛰쳐나가 공항행. 잠 못 자서 공항에서도..
웃픈 창피 에피소드 하나 만들고... 적어볼까?
내가 비행기 하루이틀 타겠나. 티켓발권 하고
게이트를 찾는데 00번 게이트가 없는 것이다.
남쪽 공항은 처음이라 내가 못 찾나 헤매면서
밑도끝도 없이 짐 끌고 한참 걷다 시간은 가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마침 지나가던 조종사에게
- 실례지만 00번 게이트가 어딘지 아시나요??
조종사는 순간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하다
싶었는지 00번?! 하더니 내 티켓을 들여다보고
- 음... 00번은.. 바로 저~~~기!겠군요!
역시 기장은 바로 아는구나 하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는데 창문 밖 비행기들을 가리키다니...
어이가 없어서 기장 얼굴을 쳐다보자,
- 기내 좌석이잖아, 00번은. 게이트를 봐야지ㅋㅋ
- 앜ㅋㅋㅋㅋ 정신 나갔.. 감사합니다...!!
저럴 만큼 제 정신 아닌 상태로 겨우 게이트에
도달해 탑승권 들고 드디어 기내에 입장했는데..
- Hi!
기절초풍 강한충격 이럴수가 꿈인가 현실인가
나는누구 여긴어디 저긴누구 이게무슨일 정도.
밝은 미소 인사에 나도 바로 답하기는 했으나
그건 자동적으로 나온 반사작용(?)이고, 이제
'의식의 싸움'이 시작되는 기내 여행의 시작벨.
솔직히 이 사람도 날 보자마자 서로 같았다는
그걸 본능적으로 그냥 한번에 알아버린 직감.
내 직감은 틀린 적이 없는데. 이건 너무 센데..
미리 찜해 두었던 중앙 벌크석에 앉은 나에게
조금 뒤 이상형이 다가오더니 우측 벌크석으로
옮겨줄 수 있냐 물어서 343 배열의 H에 착석.
옆은 비어 있었으며 MOW-DUB행 Emirates.
러시아 여승무원이 티나게 이상형에게 스킨십
시도까지 하면서 계속 플러팅 하는 것을 봤다.
러시아 여자가 봐도 끌리는구나. 인기 많겠네.
둘이 혹시 사귀나.. 승무원들끼리 잘 통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상형을 만나면 무얼 하는가.
외면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외면하자. 안 보면 되지. 보지 않으려다
이쪽으로 오니 나도 모르게 슬쩍 보게 됐는데
그녀에게 '나는 여기 앉을게요' 하는 제스쳐를
하더니 내 바로 앞에 딱! 시트를 내리고 뙇..!!
원래 자리 G에 앉았다면 결코 없었을 일이나,
H로 옮겨진 바람에 나는 이상형과 무려 완전
'마주 앉은 채' 5시간의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왜 고문으로 표현하냐고? ㅂㅌ냐고? 아니야..
이유가 복잡해 더 길게 할 수 없어 일단 패스.
나와 상대의 다리 길이도 그렇고 기내 구조상
작은 목소리로도 대화 가능할 만큼 가까웠다.
정면을 보자니 이상형이 눈 뜨고(?) 앉아있고,
창가를 보자니 한계가 있고, 이제 와 G로 바꿔
앉자니 이미 내 자리가 아니고, 나갈 수도 없어
다시 앞을 보면 이상형이 생긋 미소짓고. 하....
여기는 하늘 위 천국인가 아니면 기내 감옥인가
탑승하자마자 처음 본 얼굴이 이 이상형인데
그냥 보자마자 0.001초만에 100% 반했는데
존재할 리 없던 꿈의 이상형이 튀어나왔는데
나는 얼굴에 로션 아니 스킨도 못 발랐어,
머리도 땀에 쩔어서 오기 전 떡진 것 같고,
멀리 앉으면 안 보일 때 뭐라도 해보겠는데
아 그러기엔 아까 크림까지 캐리어에 넣었..
이럴 수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나...
라는 생각도 스쳤지만 무슨 생각을 하기에는
정신이 없기 시작했다. (생각을 할 수가 없음)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긋생긋 웃어버리는
이상형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눈이 마주칠때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차라리 눈을 감자. 그래, 눈을 감아버리자..!
굳게 눈을 감았다. 햇빛이 창가에 쏘아대는데
탑승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무도 안 자는데...
나 혼자 눈을 감고 셀프 강제 수면, 아니 외면.
한 2분 지났을까....
< 딱, 딱 >
무슨 소리지...
< 딱딱딱, 딱, 딱 >
모르겠다, 안 졸려도 자자...
< 딱딱딱딱, 딱딱딱딱! 딱! 딱! >
아니 대체....?!
눈을 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형이 자기 명찰을 딱딱거리며 ㅋㅋ
생긋 .... 나를 무려 깨우고 있던 것이다...
아....... 진짜 어쩔....
눈빛이 막 반짝반짝, 표정은 장난기 가득.
내가 여기 있는데 너는 왜 눈을 감아 느낌.
심심해, 나랑 놀자 딱 그 느낌. 아니라기엔
내가 눈뜨자마자 윙크하며 말 걸기 시작...
결국 그때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말았다.
유창하고 예쁜 영어를 사용하던 이상형은
확신에 찬 E가 틀림없었다. 창가에서 비춘
햇빛 사이로 옅은 무지개가 보였고 (실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상형의 지속적인
윙크와 미소로 나의 뇌는 과부하 되었다.
물론 다른 외국인이 하면 '놀고 있네' 또는
쟤네 윙크 따위는 모두에게 무의미한 데다
오히려 높은 확률로 불쾌할 뿐이었겠지만,
이상형이 미소 날리며 하는 윙크는 하......
본능적으로 이상형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반지는 없었다. 나에게도 본능이 있었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두바이에는 왜 가는지 묻다가 나이가 몇 살
이냐고까지 물어서, 그냥 아주 많다고 했다.
나한테 예쁘다고 했... 생얼을 받아줬..ㅠㅠ
자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날
워낙 seat를 gate로 볼 정도의 뇌 상태에다
역대급 이상형의 출현 및 윙크&대화 세례로
정신이 혼미했으므로 대부분은 잊어버렸다.
원래 Siemens에서 일했는데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이 자기 성격과는 영 맞지 않더라,
일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래서 고민하던 중
Emirates 지원해 봤는데 합격돼서 해 보니
자기랑 꽤 잘 맞다고, 일이 훨씬 즐겁다고.
다른 일 하다 와서, 승무원으로 어린 나이는
아닌데 그래도 이제 이거 열심히 할 거라고.
그래, 지금도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잘 맞네.
뒷 편 오스트레일리아 승객 분도 자꾸만 당신
부르고 찾는 걸 보니 기내에서 늘 인기 많겠다.
서비스 때문에 부른 게 아니라 은근 대화 하고
싶어 하던데, 누굴 대해도 유연히 잘 대처하니
이런 사교성, 성격상 사랑받을 수 밖에 없겠네.
라고 말한 것은 아니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와중에 어린이에게 질투(?)까지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승무원이다보니 일하느라
자리를 비울 때가 잦지 않은가. 그 사이에 나는
근처에서 왠지 서로 아이컨택 하던 아랍 어린이와
몇 마디 나누다가, 아이가 아예 내 옆 빈 좌석으로
와서 앉길래 같이 놀고 있었는데, 이상형이 오더니
"O, you speak Russian?!" 하면서 노는 것을
계속 지켜보다가 애를 제자리로 쫓아(?)보내고
승무원석에 앉더니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ㅎㅎ
참고로 그 어린이의 아버지는 비행 도중.. 이상형
자리 비웠을 때 갑자기 내 앞으로 오더니, 나더러
발 좀 치우라면서... (내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데)
바닥에 담요를 깔고 엎드려 어느 쪽인가를 항하여
알라신에게 기도,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시 돌아온 이상형과 마주앉아 시선을 피하다
얼굴, 성격, 행동, 머리색깔까지 완벽 이상형인
이 남자는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일까 머릿속에
내내 궁금했는데, 포르투갈인임을 듣고 놀랐다.
태어나 처음 보았고, 예상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국 와 봤다 불고기 맛있더라 어쩌고 저쩌고
재잘재잘 소년처럼 얘기 하는데 다 모르겠고,
이름이 뭘까 이름 알면 페이스북에... 아니야.
하지만 이름이 뭘까 이 생각의 무한반복 도중
나도 모르게 이상형의 명찰을 힐끗 보려다가
아무래도 대놓고 볼 수 없어서 그냥 말려는데
눈치 재빠른 이상형이 알아채고 씨익 웃더니,
갑자기 자기 명찰을 잡고 내 앞에 쭉 내밀었다.
그래서 본 글자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인 줄..ㅋㅋㅋㅋ
울어도 됩니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서도 어딘가 슬픈 이야기인데 웃기구나~
뭐랄까, 이름을 볼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단,
이상형이지만, 내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는 그
'의지로 인한 강한 노력'이었다고 해야 맞겠다.
다른 승객에게 하는 것 봤더니 반 쯤 따르던데
쥬스를 따라줄 때마다 내 컵에만 정말로 가득,
조금만 더 따르면 넘쳐서 흘릴 만큼까지 채워
따르면서 말, 행동, 눈빛, 모든 것으로 충분히
호감을 드러내던 그 5시간 동안, 솔직히 말해
만일,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서울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반드시 이 남자를 따라갔을 것이다 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래서 더 큰 위협을 느꼈다 보니 괴로웠다.
무려 치고 들어오는 성격까지 갖췄다 보니..
못 해서 괴로운 것보다, 할 수 있어도 안 하며
참아내는 것이 조금 더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만일, 만나자거나 연락처를 교환하자 했다면
이상형은 반드시 수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자마자 서로가 첫눈에 반했으니까. 심지어
부모님 패싱하고 이대로 같이 포르투갈 가서
살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빨간 비상벨 100개.
나라별로 시간대는 다르지만 조금 더 있으면
내 생일인데, 두바이에서 이 남자를 따라가면
무려 생일에 만난 이상형. 선물인가 ㅋㅋㅋㅋ
창문으로 오는 햇빛보다 따가운 눈빛을 피해
필사적으로 온갖 안간힘 쓰고 최선을 다하여
나를 다그치며 내내 견디느라 사투를 벌였고
고문을 끝까지 견뎌낸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안녕을 고하며 뒤돌지 않고 헤어졌다.
그토록 오래 되었는데도 흐리고 강렬히 남은
아마도, 마지막 이상형이었다.
사진 찍자면 같이 찍고, 찍는다면 포즈 취해줬을
인물이지만 나답게, 몰래 뒷모습 한 장만 남겼다.
그래서 얼굴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아 다행인 듯.
지금 적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웃기라고 적었고,
이제 곧, 아예 적지도 못할 것 같아 추억을 남김.
INFP들 중,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용기를
못 낸다는 말이 있던데 이유는 공감되지 않으나,
(고딩때는 INFJ였음, 뭐 큰 의미 없지만 아무튼)
플러팅에 재능 없는 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이번 생은 이미 오래전 안녕히. 남들을 응원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