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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ug 18. 2024

나의 '의'가 곧 나의 '죄'

속으로 무시하던 여자

너에게는 그런 것이 있어. 정죄하지 않아.
네가 순결하게 살았어도, 남이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정죄는, 없어.
세월이 흘렀기에 쓸 수 있기도 한 '꿈 일기'
마지막으로 [천사의 눈물]을 드디어 적으려다
의미심장했던 꿈은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하고
유학생 때 꾼 꿈을 하나 더 꺼내어볼까 한다.

생각지 않은 인물의 등장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 꿈이다.

부끄럽게도 그 이후 어떤 멋진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를 보는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겸손해졌다. 아마 필시,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보다 더 큰 죄인이 될 테니.


- 너에게는 그런 게 있어. 남을 정죄하지 않아.

 난 너처럼 살지 못했지만 너는 나 같은 사람을

 다르게 보지 않아. 그게 되게 좋은 점이야.


- 그건 맞아요.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 뭐, 막살았어도 놀랍지 않고..

 다만, 지금도 그런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겠죠.

 

주변에 목사님이나 훌륭한 인물들도 많았지만

동성애자, 마약류 시도자도 친구인  있있다.

경우에 따라 멀어지게 되기도 했으나, 미성년 때

임신시켰거나, 임신한 친구도 나에게 자백했다.


상담센터도 아닌데 뭘 믿고 스스로 이야기했을까.

또래에 불과했던 나는, 얘기를 듣기 전 기도했다.

'혹시 실수로라도 발설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술계라 그런지 자살 전 온 연락도 적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것인지 유독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만큼 잘 들어주고 품어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엄마로부터 일종의 '무언가'가 내려온 것은 같았다.


'그렇게 더럽게 살았다니'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은연중 그 있어서만큼은 믿고 자백해 오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무의식 속에서도 다 '영적'이다.


천주교에서 '고해성사'가 왜 강요 없이도 지속될까?

사람은 왜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자백하는 것일까?

알려지면 무조건 손해임에도 입을 여는 것은 바로

인간에게 '양심과 자백의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창조한 분은 하나님이다.

당신이 든 스마트폰도 저절로 생긴 적은 없었고

진화론자가 믿는 원숭이도 뿅 나타나진 않았다.


스마트폰보다 더 복잡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려면, 적어도 인간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여야만 그 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개미를 밟거나 무시할 수는 있지만

그리얕보는 개미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 점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지음 받았으므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목마른 갈증은

오직 그로부터만 채울 수 있다. 그의 자리이기에.

범죄 이후 하나님과 사람은 멀어졌으나 그의 아들

'예수'가 '화목제'로 왔다. 사람이 죄를 짓고 나면

기본적으로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신기하게도 그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고 나면, 전보다는 편해진다.


투자한 주식이 반토막 나서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와이프에게 실토하고 머리채를 뜯겼다는 한

투자자의 글을 본 적 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도 차라리 말하고 나니 이제 맘이 편합니다.

 머리채는 쥐어 뜯겼지만, 한강에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잘못한 사람이 나 아닌 타인이라면?


'내가 짓지 않은 죄'를 남이 지을 때, 정죄하지 않는

행위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상식에 해당함에도 불구,

다수는 그를 정죄한다. 나와 그를 다른 부류로 본다.


왜? 나는 절도를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저런 끔찍한 살인도 저지르지 않았고

저렇게 나라를 팔아먹지 않은 선량한 국민이니까.


아니, 아니다. 그들은 나와 똑같은 죄인이다.

쇠고랑 차고 감옥에 간 전과자도, 나도, 다 죄인이다.


이 글이 당신을 불편하게 해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예수는 죄가 없음에도,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정죄하지는' 않았다.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해준 것이다.



타인의 죄로부터의 자유


'남의 죄와 과거'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이유로는

첫째, 나도 죽을 죄인이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고

둘째 셋째의 이유로는, 이 꿈도 아마 포함될 것이다.


꿈은 한순간이었다. 드디어 꿈 이야기를 적자면....

(역시 쉽지 않구나. 글로 풀어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영으로 게 되었다.


꿈에서 그녀 심정을 들었는데, 마음이 아프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것으로 인해

실은 힘들 내용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녀 얼굴 여러 곳을 예쁘게 고친 한국인이었다.

과정이 어떠했든 인기가 꽤 있을 법한 외모였지만

의외로 한인교회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한 때

예배에 꾸준히 나왔으나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야기는커녕,  그녀와 인사할 생각조차 없었다.


들은 얘기가 많았다.


- 언니, 저 사람 외국인 OO랑 사귀는데요, 분명

 기숙사생이 아니거든요, 근데 기숙사에서 자요.


- 오늘 아침에도 그 남자 방에서 나오더라고요


- 옷도 러시아 여자들처럼 입고 돌아다녀요


- 여기도 OO애들이 그렇게 지저분하게 논대요



제일 싫어하는 여자 타입이었다.

아, 비록 내가 남자는 아니지만.. 여자라고 해도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내 주변에는 이미 좋은

친구들로 충분한데, 거기에 저런 여자를 얹어

지인 범주에 들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안 봤으면 모르는데 하필 그 방에서 나오는 걸

나도 봤다. 그렇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봤다.


그래서 인사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겠지만 그녀도 당당해 보였다.

바로 옆에 지나가도 눈길도 주지 않았고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듯, 그렇게 보냈다.


그녀의 목소리조차 들어 본 적도 없었고

나뿐 아니라 다른 한국 애들도 비켜갔다.


그녀와 사귀던 외국남은 전부터 나와 딱

인사만 하던 사이라 "안녕"하고 지나갈 때도

한국인 그녀와는 그 "안녕"조차 한 번 없었다.

외국남과도, 할 수 없이 하는 인사에 속했다.


'저렇게 살다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속이 깊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만큼 무시한 것이었다.


외국 남자 입장에서 나도 '같은 한국여자'의

범주 안에 들 사실마저 불쾌할 정도로 싫었다.


그녀를 흉본 적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거리낄, 미안할 것도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꿈에, 그녀의 존재가 멀리에 있었고

속마음이 나에게 영으로 전해왔던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네가 그런 시선으로 자기를 보고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취급해서

속으로는 사실 많이 힘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랬구나.

마음이 힘들었구나.

그럴 수 있겠다.....


교회에 나왔을 때에도 본 체 만 체 했던 나는

성경에서 예수가 말한 '회 칠한 무덤, 위선자'

지옥에 떨어질 '바리새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다면 한 발 더 나아가

손을 내밀어 그녀와 친구가 되어 많은 친구를

소개해주었을 텐데,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다만 조용히, 마음을 고쳐먹었다.


판단하지 말자. 정죄하지 말자.


그녀가 지은 죄와 내가 지은 죄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내 죄가 더 클 수도 있다. 성, 도덕적으로

죄짓지 않았어도 생각으로 한 것도 죽을 죄이다.

사랑하지 않고 속으로 무시한 것도 죽을 죄이다.

나는 그녀보다 더 큰 죄를, 수도 없이 짓고 산다.


그녀도 저렇게 살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바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한인교회에까지 스스로

찾아왔던 귀한 영혼이다. 남을 내 아래로 보는 건

신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반역행위만큼 위험하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실 때에, 그녀도 창조하셨다.


아마, 그 뒤로 나는 그녀를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 빨리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얼마 전에

꿈이 문득 다시 떠오르며 기억났다. 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신 앞에 간음한 죄인이다.


세상에서의 간음은 남녀가 뒤섞여야 죄가 되나

성경은 그것을 하나의 예로 알려주었을 뿐, 실은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우상숭배이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좋아할 때'

이로써 신에게 간음한 범죄자라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 영화대에 다니던 한 교회오빠가 꺼냈던

일화가 생각난다. 한 동네에 목사와 창녀가 살다

죽었는데 누가 천국에 갔을 것 같냐는 얘기였다.


- 글쎄요...?

- 창녀가 천국에 가고 목사는 지옥에 갔대요.

- 왜요?

- 왜냐하면, 그 창녀는 자기가 짓는 죄에 괴로워

 밤마다 울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했는데,

 그 목사는 주일에 설교했어도 혼자 있을 때마다

 매일 창녀 집을 바라보며 음란한 생각을 했대요.

 그래서 지옥에 갔다는 일화가 있어요.


죄를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반성'

좀 했다고 되거나, '음란한 생각' 했다고 불현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를 담고

표현한 이야기인지는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통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이 꿈을 통해,


'나의 의'를 세운다면 그것이 곧

'나의 죄'가 되어버림을 다시금 인식하고

'나도 용서받은 죄인이었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네가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 주겠노라, 하려느냐?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Matthew 7:1-5
예수께서 일어나사 그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보시고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녀가 이르되, 주여, 아무도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니라. John 8:10-1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Ga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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