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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ug 24. 2024

2살 조카의 꿈

'돌아가는 길'

내용은 모른다.
조카가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부모인 동생 부부가 나보다 잘 알아듣는 것은
분명하나,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도
구사하는 시기이므로, 내용을 물어본다 한들
제대로 들을 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고모"라고 말한 덕에 알게 된 것이다.



아이 사랑


나는 아이를 참 좋아한다. 혼자 낳을 수는 없으나

아이를 동경한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어머니가

무한한 사랑과 존중과 희생을 감당하셔서인지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울 자신은 늘 있었나 보다.


양육이 쉬울 리 없겠지만 큰 사랑을 받아온 자녀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 '살면서 받아온 대로'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초딩친구와 부모님 뻘 친구를 두면서,

그들을 '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늘 자연스러웠다.


조카를 향한 마음이 나뉠 곳 없이 몰릴 듯도 한데

친정언니 아닌 '시누이'의 입장이라, 한국 정서상

'어떤 방해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가까이 살지만, 몇 년간

그 집에 간 횟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겠다.



첫 번째 픽업


어린이집 픽업을 대신 간 날, 내가 누구인지 기억

못 할 가능성이 커서, 기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본 순간 조카는 먼 산 보듯 한참을 멈춰있었다.


마침 폰 배경이던 조카의 사진을 보여주며 고모

사진 속 선글라스를 사주었음을 열심히 어필했고,

중고 자동차형 유모차에 모셔가면서, 놀이터에서

사내아이처럼 모험을 보여주는 조카에게 끊임없는

칭찬과 감탄을 보냈다. 땀 뻘뻘 흘리며 시중들다

손수건으로 코를 닦아주자, 시소를 타다 멈추고는

약간 거만한 제스쳐로 고개를 들며 나를 내려봤다.

무슨 뜻인지 몰라 쳐다보자, 자신의 코를 손으로

가리켰다. 와서 코 닦으라는 뜻이었다. ㅎㅎㅎㅎ


정성이 닿았는지, 웃으며 몇 시간을 함께 놀았다.

(엄마의 부재로, 아마 생존본능도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픽업


두 번째 픽업 때는 조카의 친구도 함께였다.


그날도 흘린 코를 닦아주었는데, 그 친구 엄마의

"어머, 고모 말은 잘 듣네요? 보통 때 코 닦아주려

하면 싫다고 거부 하던데"라는 말에 으쓱했으나,

한 시간 뒤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급변하더니

모두를 거부하며 엄마를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아 방언으로 기도했다.

어떤 부분의 해결이 필요한지 영으로 깨닫게 되어

기도해 주고, 올케에게 간단히 전달하고 돌아왔다.


그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봐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가는 것은 조심스럽다 보니,

약속한 물총을 산 지 한 달이 넘었으나 그냥 내내

가지고만 있었다. 조카는 날 또 잊었겠지 싶었다.


몇 번 보지도 못했고

더 어릴 때 며칠 봐준 적 있지만 기억할 리 없으니.

욕심 낼 입장 아니고

마음을 비우기로 한 지 오래라 그냥 그렇게 지냈다.


다만 이렇게 기도한 적은 있다


하나님, 조카와 제가
영이 통하도록 해 주세요.


글쎄, 이유가 뭐든 그 얘기는 두어 번 했다.


그러 잊은 어느 날, 그러니까 오늘 아침,

동생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보통 그렇듯 친동생의 전화는 용건이 있다.


가족사진방에 올라온 올케의 카톡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모' 꿈을 꿨다며
고모를 찾았어요



나를 기억해 주는 것만도 고맙고 놀라운데,

무려 내 꿈을 꿨다고..?



그때 깨달았다


꿈은, 사람이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어린 조카가 연달아

꿈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몇 번 못 본 고모를 꿈에서 보고 깨어나자마자 찾는 조카


'하나님이 나를 설득하시는구나'


바로 깨달아졌다.



마음을 찢고 돌아오라


아침에 본 구절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

엊그제도 "옷이 아니라 네 마음을 찢고 주께

돌아오라"는 말씀을 상당히 명확하게 주셨다.


하나님이 듣지 말라고 했던 것도 외면한 채

가수 N 내한 소식에 옛 기억을 꺼내 검색하고

'아, So sick! 이거였지!' 세 번 듣자 이틀 내내

그 가요가 내면에 들려오며 상태도 sick이었다.


엄마를 위해 한 끼만 굶고 기도의 날을 채우라는

말씀에도 오히려 저녁마다 배달을 꼭 시켜버리고,

다른 것으로 날 만족시킬 수 없음을 다 알면서도

쓸모없는 것들로 나름의 대리만족을 시도해 보던,



나를 설득하고 계셨다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네 얘기를 듣고 있다.

나는 너를 계속 불러왔다.


마음의 방황을 멈추고 나에게 돌아와라.

너의 마음을 나에게로 돌이켜 돌아와라.

나는 네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너의 마음을 주 앞에 쏟아 주께 고하라.


그리고 이사야의 말씀을 주셨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이제 진짜 혼자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결국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나는 늘

그에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언제쯤 우리 사이를 거닐던

그 사랑에 다다를 수 있을까.


내일 조카에게 물총을 주러 다녀와야겠다.



위의 글은 미리 써둔 글이고, 조카에게

다녀왔다. 나를 기다린 것이 맞는가 싶게

수줍고 어색해했지만, 물총을 쏘자마자

즐거워하며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믿는구석(엄마)이 있어서인지 멀찍이서만

놀던 조카가,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바로

"고모 어디 갔어?"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내심 깜짝 놀랐다.


나는 올케의 손을, 올케는 딸의 손을 잡고

성경을 한 편 읽어주기 시작하자 여태껏

왁자지껄 놀았던 조카가 조용하게 듣다가

큰 목소리로 "아멘! 아멘! 아멘, 아멘!!"을

외쳤다. 벌써부터 영이 통하는 동역자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최연소 동역자를 주셨다.

조카가 크면, 꿈을 기억하는지 물어봐야지.

고모에게 과분한 폴더식 인사법을 구사하는 에티켓의 경지

전에는 네가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았으므로 너를 통해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내가 너를 영원한 뛰어남과 많은 세대들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또한 이방인들의 젖을 빨며 왕들의 젖가슴을 빨고 또 나 주가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능하신 이인 줄 알리라. 다시는 낮에 해가 네 광체가 되지 아니하고 달이 네게 밝은 광채의 빛을 비추지 아니하며 오직 주가 네게 영존하는 광체가 되고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라.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하리니 주가 너의 영존하는 광체가 되며 너의 애곡하는 날들이 끝나리라. 또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토록 그 땅을 상속받으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 어린 자 하나가 천 명이 되고 작은 자가 강한 민족이 되리라. 나 주가 그의 때에 그 일을 속히 이루리라. Isaiah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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