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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0. 2022

짜증날때

마흔 즈음에

키오스크 주문이 활성화되고는 구두로 주문하는 걸 불편해하기도 하는데, 가끔 의외의 난관에 봉착하곤 한다. 버튼 위치를 못 찾는 다던지, 페이지 넘기는 방법이 애매하다던가 할 때 말이다. 숙달 보다는 디자인의 문제겠지. 현대 장치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은 꽤나 어려워한다고 한다. 강의도 따로 있을 정도니 말이다.


어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3시쯤이었는데, 점심을 가볍게 먹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제일 먼저 켠 어플은 햄버거 어플. 할인율이 높은 메뉴를 검색하곤 매장으로 향했다. 어플로 주문할 햄버거 쿠폰을 먼저 찍고, 왠지 모자를 것 같아 메뉴에서 하나 더 골랐다. 세트를 시킨 것도 아니고 메뉴를 변경한 것도 아닌 단품 두 개를 고른 거였는데, 쿠폰 찍고 고르고 뭐하는 순간이 약간 번거롭게 느껴졌다. 결재하려고 하면 뜨는 팝업창을 닫는 일부터는 약간의 짜증도 올라왔는데, 카드결제를 하려는 순간 급격히 차올랐다. IC 결제가 실패해서 마그네틱으로 결제하려니 IC 먼저 시도하라는 팝업창이 연속해서 떴기 때문이다.


'했는데 안되니까 빨리 마그네틱 결제로 넘어가라고!'


속으로 외치며 몇 번 시도 끝에 결국 다른 키오스크로 이동했다. 다시 쿠폰 찍고 메뉴 고르고 결제창으로 넘어가는 단계 단계마다 점점 짜증이 쌓여갔다. 그리고 결제하려니, 똑같은 오류가 또 발생하는 것이었다. 키오스크 자체가 다른 모델이어서 오류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쓰는 이유에서인지 같은 오류가 발생했다. 결국은 직원을 호출했는데.


"여기 결제가 안되네요."


"아, 그럼 메뉴 불러주세요."


경험상 결제가 안 됐을 때 키오스크로 와서 결제를 도와줬던 터라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약간의 경직 시간이 생겼고, 직원은 메뉴 불러달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세트메뉴나 쿠폰만 사용했던 거라면 그냥 달라고 했겠지만 쿠폰 사용에, 메뉴에서도 할인 품목을 골랐던지라 그걸 일일이 말하기가 짜증 났다. 게다 마스크를 착용한 터라 직원과 나 사이 떨어진 간격으로는 대화가 한 번에 될 것 같지 않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주문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짜증 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원인을 따지자면 오류 자체는 키오스크에서 났지만 디자인하겠답시고 카드를 얇게 만든 카드사 문제가 크다. 요즘 갈수록 더 안된다.


애초에 사람이 주문을 받았으면 그렇게 짜증 날 일이었을까? 집으로 오면서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스스로를 되짚어 봤다. 장치가 안돼서 짜증 나는 건 그런대로 일이지만, 직원과의 대화에서도 짜증이 날만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직원에게 발생한 감정은 아니지만 짜증은 났으니까. 고민해 보니 결론은 소통의 문제였다. 키오스크에 오류가 발생했을 땐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을 해야 할 텐데 기계에 질문할 수 없었고, 직원에게 주문할 땐 이것저것 주문해야 하는데 원활한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내 답답함을 토로할 창구가 원활치 않았던 거다. 당연히 짜증 자체는 내 안에서 일었으니 내 문제가 가장 큰 거겠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상황을 나 때문이라고 돌리는 건 또 미련한 일이니까.


위로를 받는 것도, 심리 상담을 받는 것도 말로 이루어지는 만큼 배타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는 대화만 한 것이 없나 보다. 대상이 무엇이든 짜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종종 발생한다. 사람이었을 땐 대화로 해결됐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해소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장치 사용이 미숙한 어르신들은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는가. 짜증은 화로, 분노로, 혐오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니 코로나 시대 소통 부재로 인한 감정 과잉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엔 짜증날 일도, 짜증낼 일도 무척 많았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원하는 루트가 항상 정해져 있었고, 그것에 일치하지 않겠다 싶으면 시작도 전에 짜증부터 준비 했으니까. 세상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이후론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상대에게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분명히 합의점은 있을테니까. 그럼에도 메워지지 않는 틈은 그냥 그대로 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들이라 생각하는 이유도 있다. 짜증의 원인을 엄격히 따지자면 경로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그에 따른 각각의 해소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거의 대부분은 대화로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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