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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16. 2022

용기

마흔 즈음에

어릴 적 한때 용기라 생각했던 건 객기였고, 오늘날 용기는 행여 오지랖이 아닐까 두렵다. 설사 명확히 용기가 필요한 때라 여겨지는 순간이 발생하더라도 여차저차 따지느라 움츠러들기만 하면서 말이다.


요즘따라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사람이 부러운데, 쉽게 발생하는 일상의 사건들에서 용기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서다.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던가, 차별을 받는다거나, 불의의 행동을 봤을 때 스스로가 왜 기분이 나쁘고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잘못됐는지 빠르게 눈치채니까. 물론 부당함의 대처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경우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다 시간이 가버린다. 이해했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이야기를 꺼내면 다 지나서 들춰내는 사람이 되고 말기에 입을 닫고 만다.


순간 감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정도의 사건엔 의외로 장점이 되기도 한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어떻게 대처할지 정리하게 되니까. 이런 건 용기가 필요하다기 보단 조금 악착스러움이 필요한 일이겠다마는.


사회적으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정부의 부조리함을 외치거나 직장의 내부 비리를 밝힌다던가 하는 일이겠는데, 내게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나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예나 지금이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그런 일에 물들지 않고, 적어도 그곳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해결할 용기는 없지만 가능한 떳떳한 사람은 되자라는 생각이다. 보고도 용기 내지 않는 것이 떳떳함은 아니나, 적어도 잘못된 것이라는 언지는 할 테니 말이다.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잃을 것 없다는 데에서 나오는 용기는 있지만,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지 말자는 비겁함도 마음 한켠에 도사리고 있다. 선택적 용기는 좀 비굴해 뵈지만, 불의에 용기를 갖는 일은 선망의 대상이지 완전히 솔직한 속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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