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살다 보니 뚜렷해진 삶의 기준

사회적 동물, 노력 그리고 구분과 틈

by 감정수집

삶의 기준을 정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고착되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없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기게 됐다.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괜한 기준으로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름대로 세 가지 기준을 정하게 됐는데. 억지로 정했다기보다는 살다 보니 점점 뚜렷해져 남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 노력, 구분과 틈 이렇게 세 가지인데, 일찍이 어르신들이 말하던 것과 단어는 같을 수 있지만 의미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각각 설명해 보겠다. 어떻게 삶의 기준이 되었는지도 같이 작성했다.



사회적 동물

인간을 막연히 동물로만 여긴다면 삶은 단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지구의 생존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인간에게 막대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의무 말이다.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내가 어떤 형태로, 어디에 그리고 얼만한 크기로 존재하는지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완성되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집요하게 묻는 과정에서 깨닫게 됐다. 마음을 어떠한 생김새와 크기로 규정한다고 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좋아했던지라 내 마음의 형태는 진즉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서는 어떻게 해도 크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섞이고 나서야 내가 물질에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을, 삶의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역시나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있고서야 무엇이 부족한지, 나의 무엇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된다.



노력

노력이 경시되고 밈으로 소비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길은 노력뿐이다. 노력은 단순히 목표를 향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을 이해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쉬운 길만 찾아서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 인고와 고뇌의 시간만이 즉흥적인 자극을 넘는 고차원적인 생각이 되고, 스스로를 발견하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 길러진 힘으로 노력을 뛰어넘는 또 다른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노력'은 긴 시간 뇌과학과 창의성 분야를 공부하게 되면서 남게 된 기준이다. 긴 시간이라 표현한 건, 집중적이게 학습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학습해 왔고, 비교적 근래의 연구내용도 학습했다는 걸 의미한다. 공부를 해보니 노력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뇌의 특정 부분을 발달시키는 물리적 결과를 남긴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그 기억이 아마 무척이나 강렬했다 보다 지금처럼 이렇게 머릿속에 남아 기준이 된 걸 보니.



구분과 틈

인간이 가진 특별난 능력을 하나 꼽자면 나는 '구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분을 통해 세상을 다양한 범주로 나누고 정의하며, 지식을 체계화하고 나아가 사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만큼이나 현대 사회의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것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구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방법일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틈에 설 줄도 알아야 한다. 인간관계의 틈에서는 모두 볼 수 있고, 지식의 틈에서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구분은 명료하고 효율적이지만 고압적일 수 있고, 틈은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새로울 수 있다.


'구분과 틈'.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틈이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딱히 삶의 기준은 아니었다가 구분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함께 남아있게 됐다.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양하게 훑으며 학문이란 것을 나누는 패턴이 구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데 그것은 어릴 적 탯줄을 끊는 행위로부터 익히기 시작한다. 어머니와 나의 구분, 배설물과 나의 구분, 도덕적 행위의 구분 등 말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만든 모든 것을 구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구분을 단순히 인식하지 어떤 것은 구분이고 어떤 것은 구분이 아닌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분이라는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구분하는 행위 보다도 구분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틈에 서서 구분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장단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으니까.




삶의 기준은 중요하다. 평온한 삶을 위해서라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고민해야 할 것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일찌감찌 잘라내면 되니까. 그러나 인간이니까, 이왕 태어났으니까, 일방적이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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