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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04. 2020

Circle of life

오지 여행의 시작은 케냐(4)

케빈과는 나이로비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내 핸드폰 돌려줘야 해!) 나는 마지막 여행지인 암보셀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암보셀리는 킬리만자로 산 앞에 있는 초원으로 케냐에서 두 번째로 많이 오는 사파리 장소이다.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날만 좋으면 킬리만자로산의 만년설을 보면서 초원을 달릴 수 있는 곳. 항상 물이 고여있는 습지가 많아 초식동물들과 다양한 새를 마음껏 볼 수 있다. 특히, 물을 찾아 킬리만자로산을 두고 케냐와 탄자니아를 이동하는 코끼리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눈 앞에 킬리만자로 산이 진짜 이쁘다. 헤밍웨이가 이 곳에서 사냥을 즐기면서 <킬리만자로 - 이 눈>을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암보샐리 국립공원에서 새 일행을 조우했다. 이번에는 호주 대학생 두 명이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암보셀리 사파리를 시작했다. 산 중턱에 있는 고원이라서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사파리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건 역시나 얼룩말과 임팔라였다. 흔히 사파리 여행기를 검색하면 사자, 치타, 표범 등의 사진이 얼룩말 등 초식동물 사진과 비등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손쉽게 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어렸을 적 배웠던 먹이사슬 표를 생각하자. 실상 최종 포획자인 대형 고양이류는 초식동물에 비해 정말 보기 어렵다. 사파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초식동물과 함께 보냈다. 멀리서 임팔라 무리가 보였다. 차를 경계하며 주위에서 풀을 뜯어먹는 그네들. 차가 움직일 때마다 먼발치에 있어도 고개를 찡끗 들어 혹시나 천적이 아닌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게 포인트였다. 


여행 오기 전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백통 렌즈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치타의 사냥이었다. 한 무리의 차가 일렬로 멈춰있는 곳에 케빈이 차를 멈추더니 "여기,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차가 많은 곳은 분명 육식동물이 있다는 뜻. 저 멀리서 치타가 느기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기 치타인 것 같은데. 주위에 먹이를 찾는 것 같아. 사냥할 때는 가까이 가면 안돼." 치타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토끼 한 마리가 보였다. 우리의 불쌍한 토끼. 다들 토끼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처로웠다. 치타는 한참 눈치싸움을 하며 토끼 모르게 살금살금 걸어갔다. 매우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그러다 갑자기 바람 속을 가르며 치타는 뛰기 시작했다. 


[먼지를 내며 달리는 치타와 도망가는 토끼]

치타의 순간 스피드는 압도적이었다. 마라톤에서 혼자 전력 질주하는 선수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며 뛰기 시작했다. 독보적이었다. "오, 와우!" 사람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감탄사가 이어진 이유는 토끼의 날렵한 드리프트 때문이었다. 치타가 따라올 때마다 토끼는 갑작스레 방향을 바꿨으며, 치타는 속도에 부쳐 몸을 돌릴 때마다 미끄러졌다. 치타의 인내심은 짧았다. 결국 토끼는 치타의 손길을 빠져나갔다. '언젠가 먹고 말 꺼야!' 치토스 광고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최고 시속 120km 전후라는 포유류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치타는, 속도에 올인하고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내심이었다. 치타의 지구력은 사자, 표범과 비교해봐도 저질이었다. 10초 정도밖에 못 뛰는데(약 300~400미터), 그 이상 지속되면 심장이 버티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초식동물들은 일찌감치 도망치면 치타가 쫓아온다 해도 거리 차이가 좁혀지기 전에 치타가 먼저 지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풀을 먹다가도 먼 곳에서 소리가 나면 경계를 하는 임팔라와 얼룩말들이 생각났다.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서울에 도착해서 회사 동기 방에 카톡으로 사냥 사진을 보내주며 치타가 토끼 한 마리 못 잡았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치타나 사자가 사냥을 실패한 걸 본 적이 없다는 멘트는 덤. 동영상 기능이 없는 카메라가 아쉬웠다. 하지만 내 눈이 봤고, 이대형도 가끔 홈런은 친다. 그날이 그날이었던 것이다. 


호주 대학생들은 차에서 여행 이야기를 쉼 없이 말했다. 우간다의 고릴라, 남아공의 희망봉,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여기서 만난 여행객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로 호응을 하자 호주 애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우간다에서 고릴라 보는 건 꽤 비싸다던데." "잔지바르에서 돌고래가 그렇게 잘 보인다며?" "야시장에서는 정말 랍스터가 꼬치로 나와?" 이런 질문들. 오지여행의 즐거움은 단순히 보는 것에 있지 않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에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의 경의로움을 기다리면서 느낄 줄 알았다. 치타가 토끼를 사냥하는 거나, 얼룩말이 마사이강에서 물을 마시는 장면.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으면 결과물을 보지 못하고 갔을 것이다.(실제 몇몇 팀들은 기다리다 지쳐 옮기고 말았다.) 내 동료들은 참을성있게 조용히 기다릴 줄을 알았으며, 동물들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감탄할 줄 알았다. 치타의 사냥 장면이나 얼룩말이 물을 마시는 장면을 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 봤다 하면 이 정도의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기다림 후에 감동은 더 찐한 것이니까. 그리고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수는 에버랜드 사파리에서 보는 것과 감흥이 다를 바 없을 거라 했지만 전혀 틀린 말이었다.


[진격의 코끼리. 자세히 보면 등 위에 흰 새들이 있다.]

머나먼 곳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누군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쿵쿵쿵쿵.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육안으로 뚜렷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였다. 한발 내딛을때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나며 무리를 이뤄 다가오는 코끼리 떼는 웅장했다. 우리는 향해 걸어오는 무리 떼에 압도되어 우리는 시동을 끄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하루에 약 300kg의 풀, 열매, 나뭇가지를 먹기 때문에 하루에 18시간을 먹거나 이동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눈 앞의 코끼리들은 아름다웠다. 무리 가운데에는 새끼를 숨기고 움직이는 모습에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상아가 이쁘고 길게 잘 뻗어있었다. 코끼리 등에는 흰 새들이 코끼리 등의 벌레를 쪼아 먹고 있었다. 편하게 벌레를 먹으며 천천히 물가까지 이동하는 서비스를 받는 하얀 새들. 책에서만 배웠던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코끼리에게 암보셀리는 가장 안전한 곳이야."


마이클은 아프리카에서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상아 사냥(밀렵)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끼리를 죽이고 상아만 뽑아가는 무자비한 밀렵꾼들. 상아가 나지 않는 코끼리만 적자생존한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했다. 다행히 국립공원에서 철저히 보호하면서 개채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다행이구나. 여기서라도 재밌게 보내렴.


[얼룩말 시체를 먹는 독수리들]


돌아오는 길. 사자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얼룩말 찌꺼기를 독수리들이 먹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누군가는 운 좋게 사자의 사냥 장면을 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하이에나의 축제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의 마지막 단계인 독수리들의 식사시간을 보고 있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태양과 박테리아의 차지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문득, 라이온킹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Circle of Life의 삶.


사파리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케빈은 케냐인에게 사파리란 단순히 여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자연의 신비함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했다.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국립공원 내 자연의 질서를 절대 침해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책과 영상으로 배우기만 했던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별거 아닌 그것을 사파리는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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