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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24. 2020

자본주의적 미소

오지여행의 시작은 케냐(6)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사진이다. 순간을 기록하거나 멋진 장면을 공유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는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덕분에 사진은 여행에서 더더욱 필수가 되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바위산을 헉헉거리며 올라가서 물보다도 카메라를 먼저 찾고 그 긴박한 상황을 간증하듯 SNS에 올리는 민족 아닌가. '오! 제가 여기를 갔다 왔나이다!!' 등산과 캠핑은 인스타그램 때문에 핫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여행 에세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글이 베이스지만 사진 또한 빠질 수 없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사진이 보완해준다. 대부분은 80%의 글과 20%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다섯 페이지에 한 페이지 정도. 치킨을 시키면 따라오는 치킨무, 찐빵 하면 빠질 수 없는 앙꼬같이 에세이를 주문했을 뿐인데 사진이 스르륵 따라오는 거다.


"이 사진은 왜 찍었어?"


숙소에 도착한 후 쏘냐가 내 카메라 속 사진을 넘겨보다 질문했다. 마사이족 마을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흑인 꼬마 아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카메라를 툭툭 건드렸던 아이였다. 헤진 옷을 입고 파리가 눈에 달라붙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찍고 나서 보니 표정, 배경, 눈빛 등 너무나 완벽해 따로 보관하려고 분류해둔 사진이었다.


"자본주의적 미소야."


쏘냐는 시니컬하게 말했다. 외국인들이 다가와서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다 보니까 외국인만 봐도 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아프리카에는 많다며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져오는 사탕과 초콜릿 때문에 웃음을 짓는 거라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은 덤이었다. 


처음에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외국인을 봐서 반가운 게 아닐까. 하지만 인도, 남미, 스리랑카와 유럽, 미국 등을 다녀보니 느낀 게 있었다. GDP가 상대적으로 낮은 빈곤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아이들이 외국인들에게 훨씬 호의적이었다. 다가와 옷을 쿡쿡 눌러보기도 하고, 핸드폰을 빼앗아 셀카를 찍어보기도 했던 아이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적극적이었던 순간들은 내 손에 음식이나 돈을 쥐고 있을 때였다. 그럴 때면 손바닥을 피고 웃으며 다가와 무언가를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졸졸 외국인을 따라다니며 같이 사진을 찍은 후 돈을 요구하는 사례를 몇 번 봤다. 그들은 필요한 것들이 보이면 먹이를 요구하는 강아지처럼 졸졸 내 발걸음을 쫓아왔다.


자본주의 미소는 회사에서 나오는 억지 미소를 표현할 때만 사용하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쏘냐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짓자 "에이 올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라며 웃어주었다. 본인도 초심자일 때 안쓰러운 마음에 돈을 준 적도 있었고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오래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했다.


여행에세이를 읽다 보면 아이들의 웃는 사진이 등장하곤 한다. 특히 인도나 아프리카 등의 여행기에서는 두드러지게 아이들의 정면샷이 많다. 카메라를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나 작가까지 같이 셀카로 찍은 사진들. 부연 설명하는 글은 그 지역 사람들의 호의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다. '생각보다 덜 위험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많은 게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곳이었다. 등등 블라블라~~' 굳이 책으로 보지 않고 전문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 인스타그램만 가더라도 이런 광경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동화 속 나라처럼 묘사한 책과 사진들은 가보지 못한 독자에게 그 나라에 대한 편견을 불어넣는다. 요즘같이 서로의 모든 일상이 공유되는 세상에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멍하니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그들의 일상에 침투했다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돈을 벌기 위한 생계형 몸짓이었음을.씁쓸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르스트는 말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가지는 데 있다고. 9일의 여행을 돌아본다. 오부장에게서 쫓기듯 치여 이리저리 휘청이는 내가 있다. 단지 여기보다 더 힘들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던 내가 있었다. 푸르스트가 말한 새로운 시각은 지금의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Circle of Life, 자연의 변화, 자본주의적 미소까지. 비록 9일뿐이고 여행지만 돌아봤음에도 나의 시각은 다양하게 뻗어갔다. 여행이 이런 거라면... 내년에도 나는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떠날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가겠어?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인생은 길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여행은 나에게 이제야 시작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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