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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Nov 01. 2020

하쿠나 마타타

오지여행의 시작은 케냐(6)

직장인쯤 되면 다 큰 성인이라 생각하겠지만 부모가 회사에 전화하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몇 달 전에는 갑작스레 아프다고 어머니가 대신 해당부서 부장에게 전화한 사원이 이슈가 됐다. S대를 나왔고 매우 똑똑한 후배였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시험을 보면 항상 3등 안에 들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얗고 손조차도 이뻤던 친구였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관계 속에서 공부만 했던 그에게는 크나큰 시련이었다. 한 번도 반항해보지 못한 그는 직접 본인 입으로 '못하겠다'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 이후에는 이년에 한 명 정도 이런 친구가 있었다. 회사와 집에 '힘들다' 말 한마디 못하고 가출한 후배도 있었으며(경찰이 가출신고받고 회사에 찾아왔다), 아버지가 대신 사직서를 낸 후배도 봤다. '헬리콥터 맘', '캥거루 맘'이라고 신조어를 만들어낸 언론은 과장은 아니었다. 부모의 과한 애정과 사랑. 리먼이 어쩌니 아랍이 어쩌니 트럼프가 어쩌니 세계 위기에 대해서는 전문가인냥 가타부타 이야기해도 막상 자신의 위기에 대해서는 대처하지 못하는 아이들. 조 씨나 추 씨 정도 돼야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줄 알지만 자세히 보면 주변에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괜찮은 케이스였다. 길 여사와 나는 취업이나 학업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나도 회사 - 집은 분리된 곳이었으며 회사 이야기를 집에 꺼낸 적도 없었다. 오부장과 길여사도 서로 통화할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줄 알았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는 같은 14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더디게 갔다. '뉴스룸'이라는 드라마를 한 시즌 다 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경력 많은 중년 앵커가 신입기자들과 아웅다웅하면서 서로가 변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신입기자들에게 막말과 호통을 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압권이었다. 나이든 상사와 신입사원이 오해와 이해를 하며 같이 성장하는 스토리. 요즘 이런 종류의 스토리가 많았다. 얼마 전 영화관에서 봤던 '위플래시'와 한때 야신으로 포장됐던 김성근 감독도 생각났다. "던질수록 강해진다. 아프면서 크는거다." 흔히 말하는 성장통. 오부장과 함께하는 이 시간도 먼 훗날 나에게는 성장의 시간으로 다가올까? 


휴대폰은 결국 고치지 못했다. 수도에 정말 괜찮은 아이폰 수리업자가 있다고 자신했던 케빈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상태로 들고 가는 게 더욱 리얼할 수도 있겠다. 덕분에 한국과 연락이 닿지 않아 오롯이 여행에만 집중했다. 후반부에 더 풍부한 경험을 했던 이유는 전자기기의 부재 때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갈굼은 각오했다. 그렇게 일요일 오후 늦게 한국에 도착했고 말없이 방에 들어간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커피 한잔 사줄게. 스벅 1층에서 보자'


메신저에 들어가자마자 반짝이는 한마디 문장. 오부장이었다. 헉! 갑자기 왜지?


"너는 모카지? 여기 라떼 하나랑 모카 하나요."


오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프린트물 여러 장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케냐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며칠 전에 일어난 공항 화재 사건뿐만 아니라 몇십 년 전 벌였던 인접국가와의 전쟁 사건까지. "니 사수가 너랑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되던지 나한테 이걸 들이밀더라." 상상력이 풍부했던 사수는 연락이 되지 않자 과거 사건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 사건들을 모아서 애가 위험한 거 같다며 오부장에게 가져갔던 것이다. 몇십년전은 우리나라가 더 위험했을 텐데.. 역시 사수 다웠다. 오부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덕분에 내가 어머니하고 전화했네. 훌륭한 분이시더라."


에프엠인 오부장은 직원 연락 두절 시 비상 프로세스에 따라 가족 연락망에 있던 길여사에게 전화를 했다. 걱정되는 톤으로 현재의 상황을 전달한 오부장에게 길여사는 성인의 자립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길여사는 정말 문제가 있었으면 어떻게든 연락이 왔을 거라며 이 정도쯤은 감당할 줄 알고 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했다.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과 밤에도 회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살포시 얹는 센스까지. 30년 넘게 학부모와 상담을 해본 교사의 짬이랄까. 너무나 완벽한 멘트였다.


"죄송합니다. 폰을 못 고쳐서."

"에이.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 무사히 와서 다행이다. 다시 일이나 열심히 하자." 


오부장은 어깨를 툭툭 치며 걱정 많이 했다고 더 잘해보자는 이야기를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이야. 갑자기 케빈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쿠나 마타타. 번역하자면 '근심 걱정은 다 떨쳐버려.' 정도가 될 이다. 캐냐 사람들이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말이라고 케빈은 말했다. 생각났다. 폰을 못쓰게 되자 수심 가득한 내 표정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보다는 긍정으로 풀어가라며 했던 말이었다. 길여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할까?직장인쯤 되면 다 큰 성인이라 생각하겠지만 종종 부모와 회사 사이에 연락이 오고 가기도 한다. 나는 의도치 않게 엄마 찬스를 쓰게 되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며 아프리카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선물을 돌렸다. 거품 살짝 얹은 아프리카에서의 여러 에피소드에 대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회사에서의 첫 여행은 이렇게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아 참! 오부장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됐을까?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케냐에서 샀던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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