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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22. 2020

지구온난화와 인위적인 세상 속에서

오지여행의 시작은 케냐(5)

킬리만자로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산을 둘러싼 풍경이 장관이었다. 산 꼭대기에는 흰 눈이 보였고(아프리카에도 만년설이 존재하는 산이 몇 개 있다.) 밑에는 호수와 푸르른 녹음이 끝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언덕 위에서도 큰 동물들은 육안으로 확인 가능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코끼리였다. 가족끼리 다니는 코끼리는 호수에 뒹굴거나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 참 보기 좋다. 샌드위치와 바나나뿐인 허~~ 한 점심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었다.


[멀리서 보이는 킬리만자로 산]


"킬리만자로 산 너무 아름답지 않니?"


혼자서 청승맞게 산을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을까, 쏘냐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응! 정말 이쁘다. 아프리카와 눈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아."

"그러게, 저 산 정상에 올라서서 만년설과 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바라보는 건 어떤 의미일까."

"킬리만자로 패키지가 6박 7일 정도 되더라고. 가볼까 고민했는데 막상 휴가는 짧아서... 그냥 사파리 투어로 바꿨어."


 "킬리만자로를 꼭 가려면 2020년 전에 가. 저 눈은 지금도 조금씩 녹고 있고, 2020년 이후에는 저 눈을 볼 수 없을 거야."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빠르게 만년설은 녹고 있으며, 해가 지날 때마다 기온은 현저하게 올라가고, 많은 동물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부근은 겨울에는 면적이 커졌다가 여름에 조금씩 녹으며 수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구온난화는 이곳의 푸르름을 점점 삭막하게 하고 있었다. 수천 년간 지속되어왔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5년 내에 다 녹을 예정이며, 케냐 동물의 숫자도 다양한 이유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의 눈에는 그곳은 완벽한 동물들의 낙원으로 보였지만, 지속적으로 그곳을 지켜왔던 이들은 '킬리만자로의 눈물'이라고 작금의 상황을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킬리만자로 산은 지금 꼭 가봐야 한다고 했던 걸까. 내 마음속의 위시리스트를 하나 더 새겨 넣었다. [2020년, 킬리만자로 산 등반하기]. 호주 애들이 단체 사진을 찍자 하여, 종업원들과 같이 산을 등지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해를 마주 보고 사진을 찍었더니 표정이 다들 어그러져있었다. 마치, 영화 [원더우먼]이나 [암살]에서 주인공들이 마지막 미션을 하기 전 단체사진을 찍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비장한 아우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우리가 지킬 것이다!! 우아아아아!!!!


다음날, 새로운 가이드 마이클은 국립공원 근처에 살고 있는 마사이족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마사이족이라 하면 인문학 수업 어딘가에 나왔던 키는 유난히 큰 빨간 천으로 몸을 감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방방 뛰어다니는 사람들 아닌가! 우리나라는 왠지 모르게 마사이 슈즈로 유명한 단어.(그거 아는가? 마사이족은 맨발로 생활한다는 것을..) 얼룩말도 누우도 비둘기같이 느껴지는 지금! 타이밍은 제격이었다. 호주 대학생들과 함께 오전에 잠깐 사파리를 보고 마사이족을 보러 떠났다.


차가 도착한 곳은 흙으로 지은 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점토 흙과 동물의 분뇨를 발라 벽을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메꾼 집들. 암사동 선사 유적지를 복원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사이족은 우리가 내리자 반갑게 인사했다. "하쿠나 마타타! " 가이드에게서 돈(일종의 관광료다)을 받은 후 우리 앞으로 길게 늘어서 환영행사를 시작했다. 온몸을 빨간색 천으로 두르고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시부족의 전사같이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방방 뛰며 주문을 외우듯 노래를 불렀다. 그들 뒤에서 강하게 내리꽂는 그들이 의식을 더욱 신성하게 느끼게 했다. 전투 가기 전, 출정식 같은 느낌이랄까.


"우가우가 우가 자카!! 우가우가 우가 자카!! 이머랴ㅣㅂ더ㅣㄹ버랴 갸얼비댜 긱더립러ㅣㅈ러ㅑ"


알 수 없는 스와힐리어(혹은 다른 아프리카어)로 신나게 노래를 마친 그들은 짚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음.. 뭘 하는 거지? '딱딱' 돌 두 개를 한동안 두드렸을까. 불꽃이 확 튀면서 짚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어가며 그 짚을 번쩍 들며 우리에게 보여줬다. 옆에서 마이클이 짝짝 박수를 쳤다. '뭐지 이 인위적인 상황은?' 이윽고 마사이족은 우리를 마을 안으로 이끌었다. 여성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이렇게 관광업 또는 소나 양을 키우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집에서 살림을 하는 구조였다. 흙으로 된 집은 창문 하나 없었다. 안에는 전기조차 없어서 어둠과 벌레만이 가득했다. 나를 보며 방긋 웃는 꼬마의 눈에는 눈곱 끼듯 파리들이 달라붙었다. 식기도 더러웠고 마시는 물은 오염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슬퍼지는 마을이었다.


[불을 피우는 마사이 족 사람들]

"마사이족은 원래 국립공원 안에서 사냥을 하고 가축을 키우는 부족이었어."


옆에서 호주 대학생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국립공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수세기 동안 내려왔던 사냥이 금지당하고 공원 인근으로 쫓겨나 이렇게 근근이 살고 있는 마사이 족. 마사이족에게 사냥은 삶이자 문화였다. 대책 없이 사냥을 막자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 했다. 남은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밀렵 감시꾼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케냐 정부는 겉으로는 생태계 보호를 외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트로피 헌팅'. 사냥한 동물을 상업적으로 거래하지 않고 기념품으로 전시하는 사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밀렵과 다른 점은 누군가에게 파느냐 내가 갖느냐의 차이. 부유한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 많은 돈을 내고 사자, 코끼리 등을 사냥하고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는 이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들은 트로피 헌팅이 오히려 야생동물 보호에 이바지한다고 말한다. 트로피 헌팅을 허용해 큰돈을 버는 만큼(한 마리당 3,000~6,000만 원),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야생동물의 개체 수를 늘릴 거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매년 살해당하는 사자만 5,600마리. 누군가는 생태계 보호라는 이름 하에 정체성과 전통을 잃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을 내고 즐거움이라는 유희를 얻는 세상. 정말 야생동물 보호를 원한다면 그냥 기부를 하기를.


가는 길에 꼬마애 눈에 붙어있던 파리들이 잊히지 않았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을까? 21세기.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는 쓸쓸히 퇴장하고 있었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정체성을 잃는 마사이족이. 누군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려왔지만, 세상 곳곳에 사는 많은 수의 누군가들은 무관심 속에 살아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집과 회사만 다니기 바빴으니까.

[해지는 암보샐리의 모습]


몇 군데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석양이 질 무렵에 암보샐리 숙소에 도착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암보샐리. 청승맞게도 킬리만자로의 산과 나무의 실루엣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쏘냐와 나는 말없이 숙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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