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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Feb 12. 2023

죽은 자의 흔적, 치우는 자의 마음

 

이른 아침 커피를 주문하고 업무시간이 도래하지 않은 8시 50분쯤 전화가 걸려 왔다. 근무시간 전에 들어오는 전화는 급한건일 확률이 높았다. 전화를 받자 설계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종신 보험 가입한 지 10년이 넘은 고객이 지난주에 사망했는데, 보험회사에서 조사가 나온다고 해요.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왜 나오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신보험은 사망이 주된 보장이기 때문에 가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계약의 사망 건에 대해 조사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바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고 끝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것이다. 이상할 것 하나 없다는 말을 하는 설계사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본인도 좀 이상한 걸 느꼈겠지.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보라는 듯한 느낌이 들어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진단서와 고객분 증권을 일단 보내주세요. 한번 보겠습니다." 설계사가 상황을 십분 넘는 시간 동안 전화로 설명해도 막상 서류를 받아보면 그 설명과는 딴판인 경우도 있었고, 단 일분이 안 되는 통화로도 적확하게 상황을 표현하는 설계사도 있었다. 서류로 보는게 제일 편하다. 이분은 아직까지 나에 대한 신뢰감이 없는 듯 말할 듯 말 듯 끊었다.


몇 시간 뒤, 팩스로 진단서와 증권이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논란이 보이는 진단서였다. 


S22.4 늑골의 골절

S32.0 요추의 골절

S22.2 흉추의 골절


고객의 사망 경위는 늑골 골절. 상해사건이었다. 문제는 사망 날짜였다. 골절은 20년 3월, 사망은 21년 9월. 사망시각이 골절 후 1년이 지나서였다. 즉, 그 1년 동안 크고 작은 병들이 쌓이며 악화되어 사망한 것이다. 예전에 한번 앓았던 폐렴과 기저질환이었던 당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논란이 되는 담보는 재해사망 2천만 원이었다. 사망의 원인이 늑골 골절이라고 하면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고, 골절이 아닌 당뇨나 폐렴 등이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망의 최초 원인을 따지자면 늑골 골절이었고, 가장 큰 원인을 따지자면 당뇨와 폐렴이었다. 골절로 사망하는 경우 골절과 사망 사이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이 고객의 사망원인은 당뇨나 폐렴 등이었다."라고 보험사는 주장하며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조사를 나오는 것이었다. 


사망의 원인이 상해냐 질병이냐는 보험사와 고객의 흔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통상 질병보다 상해 보험금을 높이 가입하기 때문에 보험사는 되도록 상해와 질병이 비슷한 원인이 되는 사망 사고는 질병사망 건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혈액암 환자 고객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치면서 피가 멈추지 않아 사망한 사건을 맡았었다. 보험사는 질병(혈액암)으로 인한 기여도가 높아서 질병사망을 우리는 미끄러짐의 기여도가 높아 상해사망을 주장했었다. 2억이냐 4억이냐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이 건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보험금 접수한 거 취소하시죠. 그럼 재접수할 때까지 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에 위임하시면 재해사망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서 다퉈보겠습니다. 그 후에 청구하시면 지금보다는 나을 겁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 급여는 성공시에만 지급하시면 됩니다. 착수금도 없고 다른 손해사정사보다 수당도 낮을 겁니다."


긴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고객 입에서 바로 오케이가 떨어졌다. 


'흥! 이미 내용은 다 알고 있었구먼. 모른 척 하기는' 


며칠 후, 손해사정사를 태우고 양산 요양병원으로 출발했다. 늦은 밤부터 내리던 폭우는 우리가 출발한 새벽보다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잘 되겠죠?" "고객도 만나보고 주치의 만나봐야 알죠. 그리고 잘 되게 해야죠."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고객 입장에서 서서 보험금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손해사정사라는 직업은 정의의 사도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고달픈 직업이다. 실패하면 수당이 없고, 성공해도 고객과 수수료 다툼이 많고(보험금 받고 수수료 못주겠다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보험사라는 대기업을 상대하는 건 만만치 않다. 법의 테두리에 벗어난 빈틈만 보여도 보험사기라는 이름의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보험사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손해사정사와 고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정적과 침묵의 시간이었다. 정적을 깨는 빗소리가 무거운 마음을 녹여줄 따름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두 달을 여기서 지내셨어요."


문을 열자 죽음이 지나간 공간을 디퓨저와 페브리즈로 억제한 느낌이 역력했다. 죽은 자의 흔적이 있는 곳은 몇 번을 보더라도 가슴이 무거워진다. 나조차도 들리지 않는 숨소리를 마음속으로 꾹 들이쉬고는 한걸음 발을 내디뎠다. 깨끗하고 정돈된 침대와 깔끔한 책장, 그리고 얼마 전까지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는 침대 앞의 티비는 지금 누군가 누워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고인은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며 생에 희망을 가졌을 거라 생각을 하니 숙연해진다. 


책장에 책 몇 권을 발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지켜준 책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당신이 옳다>


<내 생애 단 한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마음에 위로가 되고 따스함이 전달되는 책들이다. 아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자녀들이 책을 사고 읽어줬겠지.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좋아했는지 유독 많이 보였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주며 자녀들과 할머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누워있는 할머니, 그리고 서로가 문장을 읽고 들으며 보내거나 티비를 보냈던 시간. 사고를 당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망자는 눈에 보이지 않아 진단서, 상황, 유가족을 만나는 상황이면 상상력이 시도 때도 없이 덮친다. 죽은 자는 흔적으로 자기소개를 할 뿐이었다. 여기서의 마지막이 부디 웃음 나는 즐거운 꿈이었길 바란다.


"의뢰를 할지 말지 망설였습니다. 사망보험금 1억은 무조건 나오는 거잖아요. 재해사망 2천이 문제 되는 건데.. 어머니가 폐렴과 당뇨가 원래 있어서 아프셨거든요. 그래서 받는 게 맞나 싶다가도.. 사실 넘어지지 않으셨으면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진 않았을 거예요. 그 생각하면 받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가장 큰 고민은 2천만 원이 꼭 필요한 돈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의 서류를 뒤지고, 보험사와 다퉈야 하는데 돌아가신 고인을 욕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했다.


"요즘은 100세 시대가 되면서 다양한 병을 동시에 앓다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어떤 사건이 원인이냐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보험사와 고객은 치열하게 싸웁니다. 보험사는 보험 가입할 때는 마치 다 줄 것 같이 하다가도 진단서에 틈 하나만 보이면 붙잡고 늘어집니다. 이 건 같은 경우 소송까지 갈 일도 없고 저희가 주치의 만나고 의료 자문 넣고, 손해사정서 쓰고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두세 달입니다." 


대표적인 분쟁 사례인 코로나 백신 사망 건을 예로 들며 이야기했다. 사망의 원인이 기저질환인지 백신인지 여부에 따라 정부 배상책임금, 사망보험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몇몇 사건들이 소송 중이었다. 백신 사례뿐만 아니라 기존에 처리했던 것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고객을 위로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우로 손해사정사를 쓰고 보험사와 다투고 있겠지. 보험사와 고객의 보험금 소송건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기 때문에 합의로 가기 보다는 지거나, 혹은 이기거나 하는 all or nothing인 사건들이 많았다. 그래도 근거가 서로 공정하게 비슷하다면 이왕이면 대기업보다는 죽은 망자를 도와주는 게 맞지 않을까? 망자의 가는 길이 유가족에게는 꽃길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난 저렇게 미안한 듯이 이야기하는 고객이면 꼭 이기고 싶더라."


서울로 올라가는 길, 손해사정사 엄팀장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대부분의 고객은 더 많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악착같이 수수료를 깎으려 하거나(비용 절감) 상황을 과장하는(이익 극대화) 경우가 많았다. 어제 만난 고객은 비접촉 교통사고였는데 예전에 끊은 허리디스크 서류까지 가져오며 당당하게 우리에게 "1,000만 원"을 외쳤다. 그런 고객을 만날 때마다 엄팀장과 나는 지끈거리는 현타와 싸우며 "이러다 보험사기로 역고소당해요."라고 고객을 슬슬 달랬다. "팀장님 그래도 이번에 고객 성향이 좋아서 기분이 좋은가 봐." 유가족의 선한 마음은 우리에게 따스하게 전해졌다. "과장님도 대법원 판례 봤죠. 그걸 근거로 차근차근 준비하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에요.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고객도 나쁘지 않고 할 만하네요." 신난 엄팀장은 한마디 덧붙인다. "과장님도 주위에 아는 사람도 많고, 거기서 그러지 말고 손해사정사 한번 해봐~"


참 나, 진상 고객 한두 번 상대하나. 월급쟁이가 편하지.


세상에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로 인해 마음 졸이거나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손해사정사들은 이 경계선에 있었다. 죽음의 흔적을 더듬으며 담당 주치의를 만나고 의료 자문을 받아 나가며 보험사가 오기 전에 고객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법의 테두리 내에서 증거를 바꿔놓는 사람들. 내일은 또 어떤 고객이 어떤 의뢰를 줄까. 앞으로도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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