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슬픔에 사로잡힌 직장인들을 많이 봤다. 업무 때문일 수도 있고, 조직 때문일 수도 있고,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고민 때문일 수도 있다. 우울감을 해결하지 못한 직원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장면도 많이 봤다. 직원과 가족에게 쌓여왔던 울분을 한꺼번에 터트리던 순간과 후에 나오는 미안함과 회한이 스쳐 지나가는 표정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뿐, 변하는 건 없었고 다시금 우울과 침울로 본인을 칭칭 감아두었다. 얼마 전에는 자녀를 낳고 이제 열심히 돈을 벌어야하는 옆팀 팀장이 사직서를 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감당이 되지 않아 집에까지 영향을 주는 내가 싫다는 이유였다. 감정이 태도에 영향을 주고 사람을 변하게 했다. 우울과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대처가 느리며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만 하려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손해사정사들과 같이 보험금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부쩍 우울과 같은 슬픔이 눈앞에 자주 머물렀다. 그래도 내성과 단단함의 근력을 단단하게 채우라고 시간을 주는 걸까. 시작은 실손의료비 같은 자잘한 것이었다. 판매시점에 따라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질병을 보장해주는 실비가 있었는데,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의 유무만 알려주면 됐다. 다음은 산재가 같이 엮여있는 문의였다. 산재여부는 이야기를 들어야 판단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직장 내 괴롭힘, 왕따, 과도한 업무 등 대부분 바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손해사정사, 노무사와 같이 의논하고 가부 여부를 판단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었으나 증거능력이나 앞뒤가 안 맞는 것들은 산재 인정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거절할 때마다 내편이 없다는 자조 섞인 멘트와 한숨은 가슴을 콕콕 찔렀다. 그런 밤들이면 내 멘트가 너무 강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손에 무엇이든 잘 잡히지 않았고, 가끔 꿈에 우울증에 걸린 고객들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능력과 경험이 쌓이자 감정들도 조금씩 뭉그러졌다.
꼭 받아야 할 것 같은 전화가 있다. 회의 중에 바쁘게 이야기하다 보니 오분 단위로 울리던 업무용 전화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그리고 남겨진 문자메시지. '어렵게 소개받은 번호인데, 혹시 보험금 찾아주는 곳 아닌가요?' 차곡차곡 쌓인 부재중 전화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회의실을 박차고 전화를 걸었다. "티비 광고를 보고 연락했어요. 보통은 보험 판매 광고만 많이 하는데, 판매도 하고 찾아준다고도 하고, 찾아준다는 문구는 처음 봐서요. 광고까지 하는 거 보면 진짜 잘하는 거 맞겠죠?" 얼마 전부터 이미지 제고를 위해 케이블 방송에 광고를 하고 있었다. 보팔이(보험 팔이) 이미지를 줄이고 싶어 하는 대표 의지에 따라 딱 10초 정도 보험금 찾아주는 센터가 있다는 멘트를 넣었는데, 이걸 보고 고객 전화가 종종 왔다. "네. 서류 팩스로 보내주시면 한번 보고 알려드릴게요." 대부분의 내용은 백내장, 도수치료, 피부주사 같은 보험사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비급여 항목들이었다. 어느 편의 손을 들던 고객과 보험사의 사나운 눈초리에 시달리는 계륵 같은 문의였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젊고 냥냥한 목소리는 왠지 도수치료와 피부주사, 그 사이의 의뢰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팩스기의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맨 앞장의 서류를 보는 순간 쉬운 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체검안서였다.
사망 : 목맴(의사)
사망 장소 : 자택(D.O.A)
숨이 붙지 않은 채 싸늘하게 병원에 도착했으면 사망진단서가 아닌 시체검안서를 발급해준다. 간단하게 쓰여 있는 두 단어를 통해 자살보험금 부지급 사건에 대한 의뢰임을 알 수 있었다. 자살은 내 의지로 목숨을 끊는 고의성이 들어간 행위기 때문에 사망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 자살에 대한 사망보험금을 받게 되는 경우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케이스다. 과도한 음주 또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상실에 의한 케이스. 즉, 술을 먹고 꽐라가 되든가 아니면 우울증이 심각해 나조차 컨트롤하지 못해서 벌어진 자살은 인정된다. 죽은 자는 어떤 사연이며 의뢰인은 어떤 관계일까. 시체검안서 뒤에 있는 판결문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자녀 셋을 둔 30대 망인은 건설 현장직이었다. 2018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 넘어지며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고, 1년 동안 휴업수당을 받으며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40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이 180만원 정도로 줄었으니 입에 겨우 풀칠 정도 했겠지. 문제는 완치 이후였다. 몸은 예전만큼 돌아오지 못했고, 당연히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생계의 압박은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 후에 벌어진 건 과도한 음주와 갚지 못하는 빚, 그리고 가정 폭력. 마지막은 스스로의 삶을 종결하면서 끝을 냈다.
[2019. 3. 6. 13:00 경 망인의 주거지 거실에서 넥타이로 스스로 목을 매 사망한 상태로 첫째 아들이 발견했다. - 판결문 中]
이 사건으로 의뢰인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돈은 두 가지였다. 공단의 산재보험금과 보험회사의 사망보험금.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사채에 대한 압박과 평소 행실이 부실했기 때문에 사망의 원인이 업무 때문임을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의뢰인은 업무상 사고가 모든 일의 시작이라 주장했다. 1심, 2심 모두 동일했다. 의뢰인의 손을 들어줬고, 망인은 산재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업무 중 사고가 없었으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테니까, 합리적인 판결이었다. 문제는 보험회사의 사망보험금이었다. 망인은 생전에 단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게 크게 작용했다. 즉,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 판결문에서 읽은 미망인의 증언으로 볼 때 망인의 행동은 우울증에 가까웠으나 보험사에 제출할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서 자살보험금이 다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살한 사람의 95%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즉, 우울증의 정도가 심신 미약을 일으킬 만큼 심한가의 여부를 따질 수밖에는 없다. 병원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울증의 정도도 몰랐다. 물론,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놀던 방에서 넥타이 세 개를 이어 꽁꽁 묶으며 천장에 걸고, 끊어지지 않는 단단함을 시험하며 목을 매단다는 건 무엇에 홀리지 않고 제정신으로 행하기 어려운 일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모든 건 다 증거가 있어야 했다. 사망보험금을 부지급한 보험사 공문에도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나 정황이 없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에 해당한다.]
"이 사건 어떨 거 같아요?"
엄팀장이 묻는다. 내가 손해사정사인가, 그냥 연결시켜 주는 월급 쟁이지. 참 나 원.
"사망보험금치곤 가입금액이 적어서(보험사는 가입금액이 적으면 논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주는 경우도 많다), 근거만 좀 맞춰주면 줄 거 같은데요."
"최근 법원 판례를 보니 전후 상황 자료를 보고 사후 우울증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해볼 만할 거 같은데요."
"그럼, 의뢰인 만나서 빨리빨리 진행하시죠. 사건 일어난 지 3년이 다 되어가네. 청구시효도 있으니 빨리 진행하시죠."
이 건은 우리가 맡은 사망 건 중 난이도가 낮아 보이기도 했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라는 것만 증명할 수 있으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는 건이었다. 최근 판례도 단순 전문가의 진단 상태만 보는 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인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환경, 경위와 방법 등을 다 고려해서 판단한 경우도 있었다. 의뢰인을 만나 다양한 증거(망인과의 카톡 내용과 가족의 증언 등)를 토대로 괜찮은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험금도 A사 5,000만 원, B사 5,500만원이라 보험사 입장에서는 큰 금액도 아니었다. 요즘은 외제차 한번 긁으면 1,000만원은 기본인 시대니까. 의외로 괜찮은 담당자를 만나면 잘 협의해 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전화상으로 묘하게 밝았던 미망인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판결문 군데군데 가정폭력의 흔적을 읽을 때마다 나조차도 힘들었는데, 삼 년의 시간 동안 어떤 사건이 그녀를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며칠 후 의뢰인은 큰 박스를 양팔에 가득 안고 찾아왔다. 주름살 깊은 얼굴과 푸석하고 헝클어진 머리, 군데군데 많이 보이는 흰머리는 의뢰인의 삶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자리에 앉아 의뢰인은 그동안의 과정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이야기했다. 남편의 진료 기록, 그 후에 벌어진 우울증에 증상들에 대해서. 정신적 스트레스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여성 긴급전화(1336)에 전화한 녹취와 자녀들의 증언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면 가슴이 내려앉았다. 글자가 문장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장면으로 상상되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이런 순간은 정말 반갑지 않았다. 사망사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표정이 무뎌지는데, 이럴 때만큼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좋았다.
[망인은 칼을 집어 들어 누군가를 해칠 것처럼 무서운 눈으로 가족들이나 허공을 노려보곤 해서 큰 아들이 위급상황을 대비해 야구방망이를 곁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스트레스를 우리한테 풀기 시작했죠. 손찌검, 기물 파손. 술 없이 잠을 못 자는 신세가 됐어요. 매일매일이 힘들었죠. 정신과를 가보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고집 세고 자존심 높은 사람이라... 더 힘들었겠죠.. 점점 우리 가족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이가 죽자 무언가.. 슬펐지만.. 슬펐나? 사실 슬플 겨를이 없었어요. 아이는 셋이었고,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기에.. 그리고 저도 처음에는 자살이라 생각해서 산재나 보험금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의뢰인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옆집에 사는 분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사람이었더라고요. 어떻게 하다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아니지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웠어요. 이런 걸 말하는 게... 말해도 되나 생각하다가도.. 결국 펑펑 울면서 다 말하게 됐죠. 근데 그때부터 잘 풀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분이 변호사도 알아봐 주시고.. 처음에는 돈도 없어서 변호사분한테 착수금 없이 부탁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는데.. 다음날 전화가 오더라고요. 서류를 보니까 해볼 만하다고. 승소하면 어차피 상관없으니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승소 판결이 나는 순간 판사분 앞에 가서 감사하다고 펑펑 울며 말했어요. 주위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생각했는데 내편이 돼준 거잖아요. 이런 걸 왜 계속 꽁꽁 가슴속에 쌓아뒀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더 먼저 말해볼걸. 그 후로는 너무 힘들게 안 살려고요.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죠"
"왜 그 변호사분과 이 보험금도 같이 해볼 생각 안 하셨어요? 이것도 사실 소송 가도 되는 건인데."
"그냥.. 보험사에서 보험금 못주겠다고 연락한 날, 보험금도 찾아줄 수 있다는 광고를 봤어요. 뭔가 홀리듯 연락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잘 풀리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에 의뢰를 하고 싶었어요. 고민하고 마음속에 묵혀두는 것보다 그걸 바로 인정하고 무언가를 찾는 것. 요즘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슬픔에 지는 게 슬픔에 이기는 거라고 의뢰인은 털어놓듯 말했다. 감정을 인정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털지 않고 꽁꽁 감추기만 한다면 절대 좋을 일 하나 없다면서 말이다. 미망인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최선을 다하겠다고, 믿고 맡겨달라고 대답했다. 큰 건이었다. 자살 련된 상해 보험금 사건은 수수료가 높은 대신 실패 확률도 높아 자살 사건만 모아서 전담으로 하는 손해사정사들이 있다. 한 두건만 해결하면 1년치 연봉은 버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네들끼리 공유하는 정보도 있다. 우리같이 모든 사건을 맡아서 하는 곳은 약간 불리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맡겼으니까... 꼭 이기리라! 나와 엄팀장은 이 사건을 우리가 맡게 되면 어떤 전략을 취하고 누구를 만날지 이야기해줬다. 의뢰인은 잘될 거 같다면서 최대한 빨리 끝내 달라는 말만 하고 계약서에 쿨하게 사인했다.
"거기 두 아저씨도 온갖 사람, 온갖 사연 만날 텐데 너무 묵혀두지 마. 병 됩니다. 병!"
우리는 사인한 계약서를 들고 차에 탔다. 엄팀장은 무리한 의뢰인의 요구나 어려운 사건을 맡아 스트레스가 쌓여 해소가 안될 때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변기 위에 앉아서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길수록 '많이 힘들구나'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오랫동안 나온 엄팀장의 표정은 마치 변비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좋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엄팀장의 일의 진척도도 낮고 서로 더 지쳤다. 당연히 고객들 불만은 쌓이기 마련.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잘 풀어내고 있는 걸까?
"저분 고단수네. 이야기 들었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주위 동료들한테 털어놓으면서 일해요."
"과장님 이 차 좋지 않아? 힘들면 누워도 돼~"
듣기 싫은 말에는 딴말하는 게 엄팀장 특기다. 우리는 의뢰인 건에게 호의적인 의사와 변호사를 찾아 유리한 소견과 법률자문을 받아 보험사와 접촉할 예정이다. 잘 되겠지?
요즘 부쩍 슬픔이 가깝게 있는 느낌이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이 모든 게 잘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