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우리의 삶이 80억 전 세계 사람들의 누군가의 삶과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다 생각한다. 정말 뜬금없는 저 멀리 사는 이누이트 사람들과도 분명 닮은 점은 있을 것이다. 오늘 만나러 가는 고객을 볼 때마다 너무나 달랐지만 세렝게티 초원에서 만났던 마사이족이 생각났다.
마사이족을 만난 건 세렝게티 초원에서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삼일째 반복되는 비슷한 풍경과 하루종일 차 속에서 갇힌 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빙 게임에 우리는(나는 이때 스페인 커플, 미국, 호주 친구와 같이 총 다섯 명이서 사파리를 다녔다) 지쳐있었다. 그거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파리를 가면 사자, 표범, 치타, 코뿔소 같은 동물들을 쉽게 보는 줄 알지만 사실 그런 동물들은 볼까 말까였다. 우리 눈에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건 얼룩말, 가젤, 누 같은 초식동물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세렝게티 초원의 비둘기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며 깔깔 웃었으며, 가이드한테 코뿔소를 보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푸시했다. 아이 원트 리노..
"우리가 오늘 하루를 더 돌면서 코뿔소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아니면 마사이족 마을을 갔다 오는 건 어때? 입장료는 2만원 정도면 되는데."
가이드는 코뿔소는 세렝게티보다는 다른 지역을 가야 한다며, 확답을 줄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다른 제안을 했다. 밴은 하나였고, 우리는 다섯. 코끼리를 포기하고 마사이족을 보러 갈 것이냐. 이야기로 정해야 했다. 의외로 이야기는 팽팽했다. 논점은 코끼리가 아니었다. 관광품으로 전락한 부족을 꼭 봐야겠냐는 의견과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싶다는 의견이 나뉘었다. 스페인 커플과 미국, 호주 친구는 결론을 내지 못했고, 방향타는 나에게 왔다. 코끼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예감과 여기를 언제 또 와보겠어 무조건 봐야지 라는 마음이 교차하며 마사이 마을을 가자고 했던 것 같았다.
P, K, L 이 세 고객을 다 같이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이 세명을 알게 된 건 P 때문이었다. P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일을 하는 도중 허리를 피다 삐끗한 것이었다. 식탁 밑으로 컵이 떨어져 급히 줍다 탈이 난 것이었다. 통증이 지속되자 압박골절 진단을 받았고, 우리가 보험금 청구를 도와줘서 후유장해 500만원을 보험사에서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P가 손해사정 수수료 75만 원을 못 내겠다고 버티기 시작한 것이었다.
"계속 이러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할인을 전제로 소개받은 고객이 같은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었던 K와 L이었다. K는 음식 배달 중 넘어지는 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졌고, L는 청소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는데 일하고 집에 가는 길에 피로에 몸이 못 이겨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삐끗했다. 보험금이 크지 않은 소액 사건들이었다. 한건, 한건, 처리했으면 서로 돈이 거의 안 됐을 사건이었는데, 모으고 보니 좋게 풀린 경우였다. P, K, L은 같은 병원을 다녔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셋 다 어느 정도 연령이 있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딱히 가족이 없고 집이 의정부 근처였다는 점. 이런 것들은 이 셋을 친구로 만들었다. 오늘은 모든 사건이 종결된 기념으로 겸사겸사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었다.
사진은 기억의 아주 작은 편린만을 드러낸다. 몇 년 만에 열어본 마사이 마을 사진은 아주 단편적이었다. 행복하게 웃는 아이, 전통 춤을 추는 모습, 같이 환하게 웃는 모습. 난 왜 이런 사진만을 찍었지? 순간이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한 사진 속에는 내가, 아니 긴 시간 속에서 느꼈던 우리의 감정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덜거덕 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내딛고 먼지를 마시며 한 시간 정도 달리니 황량한 초원 사이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부족원이 차를 세우게 했다. 입장료를 받기 위함이었다. 잠시 멈춰있는 틈에 장신구를 그렁그렁 메단 마사이족 몇 명이 창문을 톡톡 두들겼다. 장신구를 팔기 위함이었다.
"문 열어주지 마. 창문 열어주면 주위에 기웃거리는 애들까지 올 거야."
문을 열어주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마을에 내려야 했으니까. 돈을 요구하고 무엇을 팔고, 마을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사진을 찍으면 다가와서 비용을 요구했고, 가만히 서 있으면 갖고 있는 물건을 팔려고 했다. 호객행위에 지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흙과 돌, 짚으로 지어진 집에는 당연히 전기는 안 들어왔으며 상하수 시설도 없었다. 집 안을 보려고 주위를 기웃거리자 꼬맹이들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파리가 붙어있고 옷은 해졌지만 아이 특유의 반짝거림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고,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키가 엄청 큰 성인 흑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손을 내밀면서.
마을을 나오고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스페인 커플과 호주, 미국 친구는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나눴다. 전통과 긍지, 문화를 잃어버려가는 소수 민족들. 그때 나는 내가 찍었던 사진에만 집중했던 것 같았다. 돈을 주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인위적인 사진밖에 남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는 아이, 전통 춤을 추는 모습, 같이 환하게 웃는 모습.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아 몇 장 남기지 않았다. SNS에 이런 사진을 올리면 지인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요즘 다시 이 손 하고 허리로 아파트 청소 다 하고 있지. 돈이 끊기면 안 되니까."
L는 오래 쉬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몸이 아직 성하지 않아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눈치 보인다 했다. P도 허리가 아파서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했다. 다른 일을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 참 어렵네. K는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진 이후로 배달 일을 그만두었다. 배달 자체가 돈이 안되기도 했고 교통사고의 잔상이 남아있는 듯했다. 뭐 정 안되면 언니랑 같이 청소나 해야 할까 봐. K가 L을 보며 말했다. 몸이 자산인 비정규직 노동자라 눈치 보여 산재처리도 하지 않고 빠르게 현장에 복귀하는 그녀들. 우리를 보며 씁쓸하게 말하면서도 종종 입꼬리에는 살짝 웃음이 머물렀다. 여기서 더 쉬면 월세 낼 돈도 없어. 뭐 어쩌겠어. 빌붙고 살려면 오래 쉬면 안 된다. 서로 중얼거리면서 주문처럼 외우던 말들. 이런 게 연륜이라는 거겠지.
경비원, 배달원, 청소 용역원들의 근무환경에 관한 기사를 종종 봤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쥐와 바퀴벌레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쉬어야 하고, 그 쉼 마저도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발들. 육체적 노동이 들어가는 일은 몸의 특정 부분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에 쉽게 고장 날 수밖에 없다. 특히 적절하면서도 쾌적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몸은 더 빨리 망가진다. 그래서 장해진단을 끊으러 오는 고객들 직업은 노동자들이 훨씬 많았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그 이후의 삶도 어렵다는 것이다. 실업급여받는 사람은 드물었으며 보험, 연금 등 열악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정부는 마사이족이 관광자원일 때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줍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마사이족은 더 이상 온전한 시민 취급을 받지 못하지요."
얼마 전, 르몽드 매거진에 마사이족 관련된 르포 기사를 봤다. [탄자니아 정부가 마사이족을 추방하는 이유 - 외국 관광객들과 부자 사냥꾼을 위한 이주정책]이라는 제목이었다. 농경과 조금의 수렵을 인정받았던 마사이족들은 엄청난 자본을 앞세운 석유 부자들의 트로피 사냥과 동물 밀매업에 방해만 되기 때문에 국립공원에서 추방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자 수년 전 여행지에서 만났던 마사이족과 일행,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생각났다.
어떻게 해야 이들은 여기서 버텼을까? 만약, 이들이 전통과 고립을 지키려 했으면 애당초 쫓겨났겠지. 입장료로 더 많은 돈을 받아갔으면, 그들이 탄자니아에서 조금 더 돈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면 그 땅에서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러면 관람객이 오히려 더 줄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야생동물의 사냥과 밀매로부터 들어오는 돈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기사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일행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실제,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은 사냥, 밀수 혹은 생존을 위한 식량원으로 마구잡이로 사냥되고 있다. 코로나가 심해져 관광산업에 찬바람이 불었을 때, 세렝게티에서는 돈을 벌지 못하는 직원들이 생존을 위해 그 동물들을 밀수나 부자들의 트로피 헌팅감으로 전락시켰다. 동물원의 열악한 복지환경을 보여주며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상 동물들이 살아갈 자연도 누군가가 돈을 벌어야 하는 땅 위에 생활하는 물건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 눈에서 멀어질 뿐이었다. 자본화된 땅에 낙원은 없다.
"여기 고객 한 명이 갈비뼈가 부러진 모양이야. 어떻게 안 되겠어?"
"갈비뼈는 여러 개 부러지거나 장기를 푹 하고 찌르지 않는 이상 보험금 받을 게 없어요. 겉으로 티도 안 나고.. 에헤이."
P는 요즘도 종종 정형외과 손님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소개까지는 상관없으나 돈으로 보답하는 경우는 문제의 소지가 있어 어렵다고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에이 그래도 나중에 또 뭔가 보답이 오겠지. 혹시 알아. 내가 일하다가 허리가 더 나갈지 어떻게 될지"
서울에서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집값, 고공행진하는 물가, 각박해지는 문화. 우리의 서울시민은 능숙하게 연마된 무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멀어지고 있는 주변인들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저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사실 우리가 크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결국 P는 최근에 손해사정이 정말 필요한 고객을 한명 연결해줬다. 나같은 사람은 아둥바둥 일하고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나야 버틸 수 있다며 P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참 특이한 사람이야. 오늘은 P에게 고맙다고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