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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19. 2023

흔적 찾는 사람들

삼 년간 감당할 수 없는 사연들이 스며들었다. 급작과 우연이 겹쳐 다가왔던 고객과 손해사정사를 연결하는 일을 한지 벌써 삼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영혼 없이 '그렇군요' 하며 넘어가다가도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뒤늦게 감정이 넘쳐버려 마음을 잠식하는 일이 많았다. 보험 사고 고객을 만나는 일은 결국 어딘가 다친 사람들일 확률이 높아 의뢰의 수락여부와 상관없이 사연을 듣다 보면 감정이 소비되었다.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그런 감정들에 대해 이별의 감정과 비교하곤 했다. 시간 지나면 잊히는 건 매 한 가지 아니겠느냐 라는 논지였다.  


나는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별이라 부르는 헤어짐에 대한 감정은 빠르고 직관적이었으며 확연하게 마음을 헤집어놓고 사라졌다. 강렬했으나 지속적이진 않았다. 물론 완료 시제로 남아서도 종종 특정 장소나 음악 영화 등을 볼 때 슬픔, 회한, 후련함 같은 감정을 주긴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 뭘 어쩔 수 있을까. 고객들의 사연은 헤어짐의 감정과는 달랐다. 이야기의 얼궤가 처음부터 딱 맞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5000 피스 조각을 맞추듯 겪어보지 않은 일을 머릿속에서 곱씹으며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대입해야 했다. 느리지만 촘촘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직업적 특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도울 수 있는 직업이면 모르겠으나 뒤늦게 조각을 맞추며 수습하는 일이다 보니 혼자 곰곰이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보험을 잘못 가입한 건 아닌가? 약관 내용대로 잘 처리했나? 치료 과정 중에 고객이 잘못한 건 없나? 글로 쓴 사건들만 본다면 우리가 해결하는 건이 꽤 많아 보일 수 있으나 가능성이 없어 거절하는 건이 훨씬 많았다. 얼마 전에는 전립선 비대증이 심해진 고객이 유로리프트 수술을 통해 전립선을 묶는 수술을 했는데 보험금을 거절당했다. 수술시간이 짧아 입원 수술비로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입원을 인정하지 않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건이 많아지고 있는데, 고객에게 유리한 다양한 자료를 내밀어도 보험사에서는 절대 안 준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사건은 소송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다툼이 있는 금액이 적다 보니 포기하는 고객이 많았다. 우리도 포기를 권유했다. 우리를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고객은 그러고 나면 맥이 빠지며 한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겠는가, 잊어버리자 하면 그만이었지만. 미안함, 아쉬움, 슬픔 등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양재천을 생각했다. 그래, 양재천. 태어날 때부터 쭉 보며 자라왔던 곳. 그곳을 걷는다는 건 어릴때부터의 추억이 촘촘히 박혀있는 시간들을 걸음을 내딛으며 소환하는 작업의 일종이었다. 단순히 천이 흐르고 풍성한 초록 가지들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걸 보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선, 그런. 나에게는 소울 로케이션 같은 곳이었다. 봄, 가을이면 양재천을 따라서 퇴근했다. 지금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걸어서 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와사비를 먹기도 하고, 실내 콘도에서 텐트를 치기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미는 동료들 속에서 버티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였다. 양재천을 걸으며 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회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봄, 가을 각각 한 달 남짓되는 기간 동안 걷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 나의 다리를 밑에서 올려주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게 누군가 하면 꾸준히 걸어온 나의 흔적, 과거의 그림자들, 체력과 지구력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이 단축되고 몸이 가벼워졌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고객의 사연들도 한 꺼풀 벗겨지는 발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산책의 날들이 쌓인 속도감 있는 봄과 가을의 막바지를 사랑했다. 


양재천에서 중간쯤, 집에 가기 위해 나오면 항상 솔샘 만화방을 들렸다. 25년을 버텼고 강남에 남은 유일한 만화책 대여점이지만 항상 한산했다. 철 지난 사업모델. 내가 보는 만화책이라고는 열혈강호, 원펀맨, 원피스뿐이라  빈손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만화책 시장은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라 예전 같았으면 두 달에 한 권 정도는 나왔을 신간도 짧게는 분기, 길게는 반기에 한 번꼴로 나왔다. 자주 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가 보내온 시간들과 같이 늙어가는 사장님이 있었다. 


사장님과 공통점은 많았다. 첫 번째로는 같은 아파트에서 시공되자마자 쭉 살았다는 것. 85년도에 세워진 이 아파트는 외환은행 조합원들에게 우선 분양되었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두 번째 공통점도 생겼다. 우리 집 어르신과 같은 회사를 다녔고 심지어는 같은 부서에서 잠깐이나마 일했다는 사실. 세 번째는 둘 다 서점을 컨셉으로 한 대여점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만화방과 매거진 클럽. 책 판매보다는 대여로써 돈을 버는 수익구조도 비슷했다. 만화책방을 들리면 항상 사장님과 수다 한판 떨었다.


이야기 주제도 다양했다. 세월을 관통하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금융, 보험에 대한 이야기. 각양각색의 보험 사건 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셨는데 아무래도 나에게 있을법한 이야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 덕분인가. 최근에는 사장님이 지인의 교통사고 건을 연결해 줘 해결했다. 마지막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끝냈다. 최근 주제는 양재천의 터줏대감이던 동네서점이 문 닫은 이야기였다. 단순히 책 판매뿐만 아니라 독서모임, 매거진 발행 등 책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가게였다. 수익모델이 빈약한 서점 특성상 임대료만 올라도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소울 로케이션의 시작은 양재천이었지만 그 끝은 솔샘 만화방이었다. 


-안녕하세요. 솔샘책대여점입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3년 8월 22일 자로 폐업 예정이오니, 신분증 지참하시고 선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올해 8월 초, 가을이 슬며시 찾아오고 있다 생각하며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과 양재천 근방의 카페에서 가을에 커피나 한잔 하자고 연락할 때였다. 실망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나는 급한 마음에 만화방을 찾아갔다. "올해부터 임대료를 50%를 올려버려서 버텨봤는데 어쩔 수 없었어." 아프지 않을 때까지 하고 싶다던 사장님의 의지를 꺾어버린 건 임대료였다. 그날 이후에 매일 집에서 들르다시피 했다. 평상시와 똑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까지만 해도 영영 없어진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빽빽했던 만화책이 군데군데 빠지기 시작했다. 회원들이 추억이 있는, 그리고 구하기 힘든 작품을 사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 구매해야 할 것 같아 손가락으로 책장을 훑었다. 문득 한 작품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고1 때까지는 늘 첫째줄에 겨우 165cm였으니까...


-사장님 혹시 H2 저한테 파실래요?


-그건 이미 예약됐어. 다음 주에 가지러 올 거야.


-터치는요?


-같은 사람이 예약했어.


-몬스터는요?


-그거는 아직 안 팔렸지.



25년을 지켜온 솔샘 만화방의 마지막. 그때의 대화와 웃음들, 종종 생각날듯 하다.



가게 전체를 가린 공사용 가벽이 세워진 것이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잘 모르겠다. 9월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 가벽이 사라지고 훤히 드러난 곳에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만권이 넘었던 책들은 다 통째로 누군가 가져간 모양이었다. 내가 알던 배경이 통째로 헐려 넓게 퍼져 있었다. 군데군데 공사 자재들과 자재들을 실은 트럭과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 아무렇게나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흙더미과  자재들이 보였는데 마치 무덤 터를 도굴한 듯 휑하고 음산했다.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 갔을까. Coming soon이라고 쓰여있는 플랜카드로 시선을 돌리니 조만간 햄버거 가게가 오픈한다고 쓰여 있었다. 매봉역에는 햄버거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있나. 근처에만 이미 네 군데가 있는데... '여기는 강남에 아직 유일하게 남아있는 만화책을 대여해주는 노포 같은 곳이지.'라는 말들만 이 길에 머물게 된 것이다. 오래 알던 사람과 헤어진 것처럼 슬펐다. 


25년간 이 골목을 터줏대감 같이 지켰던 만화방의 과거를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지구가 기온이 계속 올라 점점 더 삭막해지고 아웅다웅 사람들 간의 다툼이 많아지는 현실보다 더 아득하게 슬퍼지곤 했다. 눈앞의 이익이 대의보다 우선이라는 말을 슬픔에 적용해도 꼭 같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마지막 사장님의 모습. 책을 포장하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모습.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인부들. 흙더미. 이글이글 환하게 타오르는 햄버거집의 플랜카드. 


어떤 마음을 준비할 새도 없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지만, 선명하고 명확하게 솔샘 만화방을 어제 본 듯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내가, 종종걸음으로 그곳을 들리는 걸로 퇴근길을 마무리했던 풍성했던 감정이, 그립고 허전하다는 감각 속에 아른아른 존재했다. 생각해 보면 준비할 시간은 어느 정도 있었다. 사장님과 이야기하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과 만화책방이 임대료가 비슷하며 건물주가 5년째 금액을 크게 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점에 관대한 건물주들이 종종 있다. “우리는 임대로가 20%만 올라도 접어야 해” 농담 삼아 이야기했는데 50%면 말 다했지. 건물주도 요즘 같은 물가에는 임대료 안 올리고 버티긴 어렵겠지. 우리는 벌어질 일을 예측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느긋하게 가을이 찾아오려나 싶을 정도로 비, 더위, 서늘함이 변덕스럽게 반복되었던 9월 중순 퇴근길의 양재천 마지막 부분, 다른 건물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의 폐허를 보며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시죠? 햄버거가게는 조금 늦게 들어오나 봐요. 아직도 공사 중이네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같은 아파트인데 한 번을 못 본다, 이제는 여행 다니며 남은 삶을 재미나게 보내겠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은 대화 말미에 어느 순간이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 마지막 메시지를 받고 나서 아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본인도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했으면서 그저 먼저 간 사람의 응원이겠거니 생각했다. 문자를 마지차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있어 소중하고 중요했던 부분들이 속상한 면적으로 툭 떨어져 나가면서 동시에 눈부셨지만 내 옷을 입은게 아닌거 같았던 열렬한 솔로 무대 위에서 내내 외면하고 있던 여러 물음에 응답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10월. 햄버거가게가 들어왔다. 축화 화한과 문 밖에 전시되어 있는 깨끗한 메뉴판은 누가 봐도 새 가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BEST!! [아보카도 버거] 바람에 날리지 않게 고정된 메뉴판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메뉴였다. 아보카도 버거가 시그니처인가. 옆에 풍류랑도 아보카도 버거로 승부하는데. 오픈 효과인지 사람들은 꽤 많이 있었다. 부수고 파내고 세워지는 과정을 해부하듯이 들여다본 후 이렇게 또 다른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이상하고 미안하게 자유로운 안도감이 들었다. 무언가 없어지면 무엇인가 채워지는 곳. 사라지는 슬픔보다 채워지는 만족이 더 큰 곳. 그게 바로 서울이었다. 


나도, 고객들도, 그리고 오랜 세월 지켜온 솔샘 만화방도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낡고 누군가에게 잊히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빛이 지나가버린 텅 빈자리를 나만의 방식과 속도로 마음에 담는 것,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그 자리의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것, 그러면서도 뒤처지지 않게 발걸음을 맞추는 것, 그러다 슬픔과 우울의 심연에 치일 때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기록하는 것. 


10월 중순. 밤이 되니 날이 쌀쌀해졌다. 걸어서 퇴근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다. 차가워진 공기만큼이나 정신도 바짝 깨어 오히려 주변을 더 자주 살폈다. 노을 지는 하늘, 갈대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종종 너구리도 보였다. 걷다 보면 머리는 비워졌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많은 것들이 없어졌지만 무언가가 또 솔솔 채워지겠지. 


길을 걷고 집에 가던 중 엄팀장에게 문자가 왔다. 


- 호진이 후유장해건이 잘 풀렸네요. 두 달 만에 보험금 지급 완료.


돈이 몸의 아픔과 마음의 상실을 대신해 줄 순 없겠지만, 살아가는데 필요조건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는 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겠지.


아마 당분간 계속 이렇게 지낼 것 같았다. 무언가 응답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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