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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22. 2023

때론 마음의 해체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생각보다 별로였던 작품이 특정한 사건을 통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겐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이 그랬다.


[데몰리션]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내밀한 감정에 대해 관객에게 최대한 울림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었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와이프를 잃고 마음 아파하는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를 그려낸 부분이 그랬다. 교통사고 전, 데이비스 삶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우 규칙적이었으며, 유리와 금속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민 깔끔한 집을 보면 '좋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해 남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아내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들은 무언가 그의 삶이 변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내의 장례식에 슬픔을 표현하지 못할까 봐 미리 우는 연습을 하고, 출근 후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는 장면. 장례식 다음날 아침, 위로의 표정을 보이며 회의에 들어온 직원들에게 일로써 다그치는 장면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슬픔에 가득 찬 장인어른은 데이비스를 불러 추억과 회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데이비스는 칵테일 가격과 바의 분위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저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미쳐갔다. 집을 부수고, 회사 화장실을 해체하기도 했으며, 달리던 기차를 세우기까지 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겠지. 그리고 중간쯤 영화를 끄고 곰곰이 생각했다. 슬픔에 대한 방어기제가 극심해지면 저렇게까지 가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영화가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했다. 그게 벌써 삼 년 전이었다.


얼마 전 엄팀장의 부탁으로 한 의뢰인 집에 같이 방문했다. 보통 의뢰인 집까지 찾아가는 건 보험금의 금액이 큰 사망사건이나 의뢰인이 불가피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후유장해건이 많았다. 엄팀장이 보내준 파일을 읽어봤다. 역시나 사망건이었다. 60살 정도 된 여성의 죽음이었고 의뢰인은 딸이었다. 딸과 같이 집에서 밥을 먹다 밥알이 기도에 막혀서 사망한 사건이었다. 떡 같이 단단해서 기도가 막히거나 낙지가 기도에 달라붙어 숨 멎는 사건은 봤어도, 밥을 먹다 사망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119 구급지를 살펴봤다. CPR을 시행했고, 주위에 밥알이 튀었다. 응급차 속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걸 상상해 봤다. 눈앞에서 죽음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사망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큰 이상은 없었다. 정상적인 상해사망 건이었다. 의뢰인의 문의가 무엇인지 만나야 알겠지만 폐렴을 크게 앓았거나 질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정도는 해볼 수 있었다. 보험사에서는 밥 먹다가 죽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기존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주장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너무나 우연하고 급격한 누구나 보기에도 뻔한 상해사망건이었다.


"어머니는 여기서 쓰러지셨어요."


의뢰인과 사망 서류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곳은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인 부엌이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만 지운다면 아주 깨끗한 부엌이었다. 먼저 싱크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도마와 컵들이 눈에 띄었다. 무난하게 단색인 컵들과 곳곳에 껴있던 스타벅스 머그컵들. 시티 머그컵은 랜드마크를 잘 표현해서 이런 상황에서도 그곳이 떠올랐다. 단색인 컵은 어머니, 시티 머그컵은 의뢰인의 취향을 반영한 것 같았다.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그릇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싱크대 뒤쪽에는 수세미, 고무장갑, 각종 클리너 등이 차곡차곡 순서대로 잘 쓸 수 있게 놓여있었다. 완벽한 정리정돈이다. 아마 여기서 같이 밥을 먹다 어느 순간 목이 막혔을 거고 어 어 하다가 119를 불렀겠지. 열흘 정도가 지난 지금, 그 당시의 긴박감을 지금으로선 느낄 수 없었다. 언젠가 저 물건들은 주인 따라 남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겠지. 


질긴 고기반찬 없이 계란말이와 나물, 그리고 그냥 맨밥이었어요. 목에 걸릴게 하나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죠. 꺼억-꺼억하길래 바로 119를 불렀어요. 그때까진 몰랐죠.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그때 잘하면 돌아가시겠거니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도 죽을 수 있나 두렵기도 하고, 사실 아무 생각도 안 났고, 제발 살았으면 했던 생각이 아무래도 제일 많았겠죠. 그렇겠죠? 사실.. 잘 생각이 안 나요. 너무 빨리 모든 걸 처리해야 했어서.


의뢰인의 어머니는 결국 병원까지도 살아가지 못했다는 것은 [시체검안서]라는 서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임종이라는 시간은 식탁 위에서부터 구급차 사이의 시간뿐. 의뢰인은 자연스레 병원에 가자마자 장례를 준비했다. 조문객과 친척들,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 장례의 순간들은 심연의 감정의 근원에 닿는 좁은 문을 닫게 만든다. 화장을 하고 감사의 문자를 돌리며 바로 꺼내본 것이 보험증서였다. 


상해사망 10,000만원

질병사망 800만원


반드시 상해사망 보험금을 받아내야 했다.


"수수료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 벌써 세 번째 손해사정사를 만나는 겁니다."


의뢰인의 말에서는 피로감이 묻어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한 명, 지인 소개로 한 명, 그리고 설계사 소개로 한 명.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이상 아마 우리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겠지. 이럴 때는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더 하는 것보다 금액을 말하고 매조지는 게 중요하다. 수수료는 보험금 청구의 난이도,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데 경쟁이 붙을 경우 일종의 경매시장처럼 변해서 난이도와 관계없이 수수료가 확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엄팀장은 다른 손해사정사의 제시액을 알 수 없어 머뭇거린다.


"4.4% 어떠신가요. 착수금은 없고요. 상해사망 보험금 받게 되면 그때 주시면 됩니다."


 "지금 까지 들어본 수수료 중에서는 가장 싸네요."


수수료를 확인한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상해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것을 증빙할만한 자료(목격자 증언, 응급차 기록지 등)와 주치의 소견 등을 정리해서 보험사에 들이밀었다. 고객의 미결 의뢰를 반복해서 위임받아 처리하다 보면 내용만 들어도 결과가 예측되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이 그랬다. 우연적인 외부의 상황들이 겹쳐 한 사람을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이런 사건을 상해라고 결론짓지 못한다면 보험금 제대로 받을 사건 하나 없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 뿐.


일기예보와는 달리 그날부터 삼 주 동안 강추위가 이어졌다. 출근길은 말도 못 하게 추웠고, 잠시 해가 비치는 낮에 좀 나아지나 싶으면 시나브로 바람이 쌩 몰려와서 온몸을 때렸다. 의무로 강권하는 마스크가 되려 고마운 시절이었다. 날씨 탓에 병원도 잘 안 가는지 상담 문의도 뜸해졌다. 문의가 너무 자주 와도 피곤하지만, 안 와도 걱정스럽다. 온종일 전화 한 통 없다가 저녁에 엄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그때 만났던 사망 고객 한번 더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 있나요?"


"보험사 조사자가 연락을 하는데 받지도 않고, 만남도 거부한다나 봐요. 정확히 말하면 거부는 아니고.. 연락이 안 된다네요. 그래서 일이 막혀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연락은 해봤고요?"


"전화를 안 받아서 문자를 남겨놓긴 했는데.... 가까우니 그냥 한번 가볼래요? "


공기가 변했다는 건 의뢰인과 지난번 이야기를 나눴던 부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온갖 잡다한 냄새 때문이었다. 싱크대에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게 쌓여있는 닦지 않은 식기와 음식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식탁 위에는 각종 사진이 가득했다. 음식, 풍경, 고인의 여행 사진등 다양한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지 이유는 가늠이 안 됐다. 의뢰인은 헝클어진 머리를 위로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락이 오는지도,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도 몰랐네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야기하는 의뢰인, 코를 꿰뚫는 악취와 널브러져 있는 온갖 사진에 나와 엄팀장은 당황했고 말을 잊지 못했다.


"보험사 조사관 연락을 안 받으면 진행이 어렵거든요."


보험금 청구 금액이 높으면 각종 서류를 제출해도 진술서, 경위서 같은 서류를 직원들은 꼭 요구한다. 본인들도 부담이 되겠지. 진술서는 참고적인 성향이 강해 각종 증거자료와 크게 차이 없이 진술하면 오케이 되는 자료였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게 어려울까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니까요. 정말 질병이 있던 거 아닐까요. 제가 놓치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핸드폰 사진을 다 출력해서 한 장씩 보고 있었어요. 볼수록 모르겠더라고요. 왜 이렇게 됐는지, 뭘 좋아했는지, 심지어 이렇게 생긴 게 맞는지..."


사진을 보며 죽은 이에 대해 생각한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색적인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한 사진들, 최근에는 트로트 콘서트를 다녔던 사진들이 눈에 밟혔따. 명랑하고 아름답게 살던 사람이다. 이런 사진들 속에서 의뢰인이 고민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을까? 설령 찾는다 한들 그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슬픔의 근원에 다가가는 행위는 개인마다 천양지차라 공감 포인트를 잡기가 어렵다. 펑펑 울면서 자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없이 침묵으로 슬픔을 견디는 사람도 봤다. 누군가는 이렇게 뒤늦게 슬픔을 맞이하며 방황하기도 했다. 슬픔에 대한 어설픈 통찰과 공감은 누구나 항상 서툴 수밖에 없고 심지어 관계에 독이 돼 갈 수도 있다.. 친한 지인의 슬픔도 다가가기 어려운데, 그 사람이 고작 한번 본 의뢰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건 해결을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의뢰인의 집을 나왔다. 


그날 밤, 데몰리션의 뒷부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파괴적인 행위를 하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 내면 속의 슬픔에 다다른다. 아내의 부재에 대한 근원적인 본인의 마음을 직면하고 온 그는 이상 행동을 멈추고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끝난다. 나는 그의 슬픔에 다다르는 행위와 변하는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데이비스의 행위를 통해 슬픔이란 감정은 단순히 눈물로만 표현될 수 없는 거대한 무엇임을, 그것을 직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주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고객은 일을 다시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이주 뒤, 고객의 보험금은 정상적으로 지급됐다. 상해사망으로 인정된 것이었다. 하간 다갈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부디 슬픔을 잘 직면하면서 다양한 느낌을 마주하길 바란다. 


얼마 후, 비슷한 사건이 들어왔다. 의뢰인의 아버지가 간 암판정을 받고 다음날 바로 사망한 경우였다. 임상적으로만 추정한 간암 판정에 대한 암 진단금 지급 여부가 문제였다. 멀쩡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암 판정을 받고, 그다음 날 장례를 치렀던 고객은 그 시간들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을 다잡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는 말을 하면서 책과 영화 한 편을 추천해 줬다.


"우연하게도 아침의 피아노라는 에세이와 데몰리션이라는 영화를 추천받아 봤어요. 많은 힘이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일이 폭풍처럼 닥치면 슬픔이라는 감정자체를 느낄새도 없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후에 몰아치더라고요. "


이런 사건만 보다 보면 지칠 것 같다는 걱정 아닌 걱정까지 곁들였다.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좋은 작품이죠."


황망하게 지인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것이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런 지인을 보며 어설픈 통찰을 늘어놓으며 빨리 거기서 빠져나오라고 훈계하곤 한다. 타인의 슬픔이란 감정을 내가 겪었던 여느 감정과 다를 바 없이 생각하여 빨리 떨쳐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마음을 해체하고 거기까지 다가가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위로할 수 없으니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나 인생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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