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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Aug 20. 2023

Catch me? If you can!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을 연이어 진행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날은 교통사고 사건, 즉 자동차 사고 문의가 많은 날이었다. 밤늦은 시간 운전자가 공사 팻말을 보지 못하고 교통 지휘를 하던 안전운행요원을 친 고객이 있었고, 고속도로에서 액셀을 밟으며 졸음운전하던 차량과 크게 충돌해 몸과 차 둘 다 많이 상했는데 무보험이라 난감해진 고객이 있었고, 비접촉 사고인데 상대방의 과잉 진료로 답답해하는 고객이 있었다. 


자동차 사건 접수는 고객이나 설계사의 일방적인 전화로 시작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큰 사고의 경우를 제외한 접촉사고는 일단 전부다 피해자라 주장했다. 그럴 때면 항상 블랙박스를 영상을 같이 봤다. 두세번 돌려보면 대부분은 과실비율이 감각적으로 추산되었다. 일방적인 100대 0 사고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고객은 억울해했다. "보험사에 이런 내용을 조리 있게 잘 주장해 보세요. 그럼 10% 정도 과실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네 건 정도 이런 잔사고 문의가 들어왔다. 어떤 시각에 따라 보고 이야기하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애매한 알쏭달쏭 사건들. 블랙박스를 보고 상담을 하다 보면 오전이 훌쩍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약간씩 다를 뿐 대부분의 차량 사고는 비슷비슷해서, 하다 보면 이 건 내가 본 것 같은데? 하고 과거 문의사항을 뒤져보기도 했다.


작은 차량 사고는 고객의 논리도 대동소이했다. 앞 차가 급정거하지 않았으면 부딪칠 일도 없다고 하거나, 워낙 교통이 거지 같은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사고 안 내겠냐고 말하거나..... 어이, 운전자 양반 안전거리 유지와 전방주시 태만은 무조건 가해자야. 그렇게 사고의 양상도, 고객의 주장도 비슷비슷한 교통사고였지만, 흥미로운 지점은 고객의 다양성에 있다. 연령도, 성별도, 사회적 직업도 다 다른 사람이었다. 온몸에 문신 좀 새기고 한때 껌 좀 씹었을 것 같은 형님도 있었고,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저씨도 있었고, 정장을 말끔하게 빼입은 금융인도 있었다. 매일매일 흙과 함께 살아가다 은퇴하신 할아버지와 갓 성인이 된 대학생, '내가 하루에 얼마 버는 사람인데, 합의금이 이것 밖'에 안 되냐, 고 소리치던 나름 유명한 사업가도 있었다. 뭉칠 수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교집합은 딱 하나 있었다. 손해 보기 싫다는 마음이었다.


과거에는 보험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기술이나 노력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 빼어난 말발이나 연기력도 필요했고, 사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면서도 노련하게 협상하는 기술 정도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유튜브와 네이버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2주 진단 합의금 많이 받는 방법만 검색하면 모든 걸 알 수 있다. 특히 유튜브는 전문가들이 각종 상황에 맞는 대처방안을 생생하게 알려줬다. 보험사에서 작은 사고에 50만원, 60만원 소액을 부르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조금 더 치료받고 생각해보고 답변드릴게요." 그야말로 보험금 청구의 평준화라 할 만하다.


보험금 청구의 평준화 현상은 이런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단순 사고에 도드라졌다. 정형외과에서 염좌 진단으로 하루 이틀 입원하고 200만원씩 받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언뜻 생각하기에 염좌라는 증상이 대단히 아파 보이지만,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누구라도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만 받으면 허리, 어깨, 목 염좌 정도는 흔하게 진단받을 수 있다. 조금 더 영리한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뇌진탕 진단까지 받아서 돈을 더 얹었다. 자동차보험료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사실상 잡지 못하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돈이 줄줄 새는 상황이 많았다.


이런 소규모 교통사고로 줄줄이 고객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한문철 TV에서 이렇게 말하던데요.'"

"보상과 배상에서 250은 받을 수 있다 하던데.."


단순 접촉 사고라도 어느 정도의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보험금 청구 평준화의 끝판왕이 나타났다. 바로 비접촉 사고였다. 비접촉 사고는 말 그대로 부딪힘 없이 일어나는 사고를 말한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차를 보고 서로 충돌 없이 넘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사건으로 정말로 다치는 경우는 손에 꼽기 때문에 대표적인 보험금 청구를 위한 고객의 모럴 해저드 사례였다. 이런 사고를 접하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입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두 달 전에 비접촉 사건이 있었다. 의뢰인은 전 회사 후배. 2년 만에 "대리님, 잘 지내시나요"라고 인사하는 카톡 메시지를 보며 청첩장을 주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대화창을 열자 블랙박스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후배 차량은 2차로에서 깜빡이를 켜고 급하게 1차로로 좌회전하려고 진입을 하고 있었고, 1차로에 있던 차량이 그걸 보고 급정거를 한 사건이었다. 충돌은 없었다.


-이게 뭐

-급정거해서 손목이 뻐근해서 병원에 가야겠데요

-보험 접수 원한데?

-네


영상을 돌려봤다. 좌회전 신호에 급히 깜빡이를 켜며 머리를 집어넣는 후배 차량이 눈에 선했다. 부딪쳤으면 8대 2 정도의 느낌이었다. 비접촉은 어느 정도 피해자의 과실도 묻기 때문에 7대 3 정도의 느낌이었다. 물론, 안전벨트를 하고 있다 생각하면 손목이 아플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보험 접수해야지 뭐..

-아니 그럼..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승자도 병원에 가겠데요. 이게 말이 되나요? 나이도 둘 다 이십 대 같았는데.. 접수 안 해주면 어떻게 되죠?

-경찰서에 가겠지.

-그러면요?

-보험 접수하라고 연락 올 거야 ㅎㅎ


12대 중과실 사건이 아니고선 경찰은 보험사의 해결을 원할거고, 가해자인 후배에게 접수를 권유할 것이다.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상대방이 악의적으로 나오면 맘 편히 보험 접수하는 게 최고야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결국 두 피해자는 합쳐서 200만원 정도에 합의했고, 후배는 내년에 자동차보험료가 30% 정도 인상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경험상 나는 알고 있었다. 젊디 젊은 20대 두 명은 그 정도로는 절대 손목이 아플 리 없고, 어디선가 보고 들은 내용으로 이 사건을 진행했을 거라는 것을. 보험사 직원도 똑같이 생각했겠지. 부디 똑같은 정반대 상황을 만나 본인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나중에 깨닫길 바란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거짓말에 대해 금기시하며 함부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해서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꽉 찬 지하철에서도 타인의 발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리에 타인의 핸드폰이 덩그러니 있어도 가져가지도 않는다. 법 이전에 도덕의 문제에기도 하며, 우리가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 공유해야 하는 일종의 문화인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상대방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거짓'으로 보험금을 많이 받으려는 행위는 만연하다. 매년 세금처럼 내는 자동차 보험료가 비싸다고 하는 무사고 경력의 친구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금씩 더 오르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그 일이 잊힐 때쯤 비접촉 사고의 주인공 후배한테 다시금 연락이 왔다. 일주일 전이었다. "과장님 이거는 어떻게 하면 되죠?" 대화창을 열자 블랙박스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지난번과는 다른 것이었다. 꽉 막힌 서울 길에서 거북이 운전을 하다 뒤 차가 콩하고 박은 것이었다.


-급정거도 없고 백 프로 뒤차과실이네. 잠깐 딴생각한 듯

-과장님 드디어 왔습니다. 제가 무얼 하면 되나요?


나는 알고 있었다. 후배는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 화풀이하듯, 지난번 사건의 복수를 이번에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픈 것도 없을 텐데.. 이 정도면 차에 흠집도 안 났겠다. 그냥 빨리 합의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뭐라고 남길까 고민하다 네 글자로 답변했다.


-드러누워


보험 사고 상담을 하다 보면 객관적 상황에 피해자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하여 요지경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리고 착실하게 보험료만 내서 투덜거리는 선량한 내 친구들도 피해자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언제든 드러누울 준비는 되어있다는 것을. 모두가 드러눕는데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한단 말인가. 


후배와 카톡을 마치고 옆을 돌아보니 엄팀장이 웃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자동차 접촉 사고가 들어왔는데 이 고객이 예전에 척추 디스크 수술을 했더라고. 땡큐지. 합의금을 좀 올릴 수 있겠어."


영화 Catch me if you can은 겨울마다 종종 찾아보는 작품이었다. 거짓말 같은 실화라 흡입력이 상당했고, 무엇보다 디카프리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속고 속이는 줄거리가 매력적이었다. 과거 질병을 자동차 사건과 연관 지으려는 엄팀장.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 푸는 후배. 이런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영화를 보다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때로는 거짓말을 믿고 사는 게 편해, 세상엔 속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으로 살아가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모두가 낑낑거려야 한다는 것을. 가해자였다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억울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리다 또 웃고 마는 세상이었다.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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