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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job : 회사원 , 나는 이대로도 정말 괜찮은걸까

26세, 취업준비를 하던 사회초년의 어떤 소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면 job 항목에 언젠가는 꼭 '직장인'을 체크하고 싶어했다. S사, H사, C사. 직장과 생업과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시키는대로 일 잘하고, 돈 따박따박 주면서도 부모님이 지인들에게 자랑할만한' 기준으로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다. 12년간의 학창생활과 1년간의 재수생활, 5년께의 대학 생활의 결과물일거라고 생각했다.


30세, 27세에 '뼈를 묻겠다' 다짐하며 입사한 첫 직장에서 일을 하던 그녀는 시니어가 되며 대행 업무가 자주성이 부족하다며 하던 업을 차근히 그만두었다. 벌이의 중요성이 생각만큼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본인이 원하는 전문성이 무엇인지 윤곽을 감각하며 꼭 감겨있던 눈을 어스름히 떠 보았다.


그리곤 8개월을 쉬었다. 2시 언저리 낮잠기운을 벗어내려 카페인을 들이붓던 직장인에서, 한낮의 요가와 손수 만드는 점심식사의 맛을 알았고, 지금의 즐거움을 유지하기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 없을 때 삶이 얼마나 고독해지는지도 깨달았다.


31세, 두 번째 직장이다. 그렇게도 부르짖던 업무의 자주성과 원하던 전문성에 세 발짝 가까워짐을 느낀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건 당연하다. 내부 고객사, 이상하게 꼬인 네트워크와 업무 구조, 명분과 실리의 먼 간극, 아메리카 스타일이라며 앞땅을 추구하라 하지만 그 누구도 앞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보수적이고 고압적인 인사 시스템. 원하는 걸 얻었다며 마냥 꼬리를 흔들기엔, 그 전엔 알지 못했던 상처의 영역이 가히 억세다.


요 몇번 회사에 관한 글을 많이 올려댔다. 내 삶에 주어진 시간의 36%씩이나 차지하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더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마음 반, 하소연 반의 이유로다. 사업주의 궁극적인 마인드 <내껀데 니가 뭐래>는 나를 흑화시켜 이해해보자면 십분 이해가 되는 멘트고, 30년식 꽤 나이를 먹은 나도 바꾸기가 참 어렵다. 그 아슬한 공존 속에 나의 세워진 날을 어슷하게 깎아내며 일을 해내자니 다음 영역에서의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 40대에 이르면 내 이름을 담아, 혹은 내 전문성을 세워 job란에 직장인이 아닌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만 나는 그 때도 '난 뭘까'라며 툴툴 하소연하는 누군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든다.


어린 시절, 허술하디 허술했던 직업 교육에 지금에야 분하다. 직업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나 중요하다.

그 때 교육에서 업이란 분명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칭했다. 그때 사회적 정의에서는 맞았을 지 몰라도, 절대 틀렸다. 자아실현은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이룰 수 있다. 저명한 음악가가 연주회에서 악기를 연주하는게 특기를 발휘한 밥벌이의 수단일지 몰라도 그의 자아 실현은 사랑이 될 수도,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직업은 취미가 될 수도 있고, 특기가 될 수도 있고, 단지 단기간의 밥벌이 수단도 될 수 있다.

개인이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직장인도, 농부도, 청소부도, 대기업 총수도 내 삶에 fit한 직업이 될 수 있는것. 나는 이 단계 없이 직장인을 선택해버렸고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 그 단계를 거쳐내야 했기에 회사와 업에 그리도 입이 튀어나와있던 것이다.


중세시대는 누군가의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거나, 집사를 하거나, 유모 일을 하면 '정원사' '집사' '유모'라고 직종을 명확히 밝혔다고 들었다. 20세기에는 마케터, 영업자, MD,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더 세분화된 전문직들이 모여 한 회사의 실무를 꾸려가는데 이 모든 영역이 마치 0대감집 노비마냥 회사원으로 통칭되는 것이 애닲다.





첫 직장에 근무할 때 그 누구보다도 입이 튀어나와있던 어떤 인턴 친구가 있다. '사수가 툴툴툴, 부장이 툴툴툴, 업무가 툴툴툴.' 하루종일 속상한 이야기만 하던 친구였다. 성정이 착해 싫은소리나 힘들다는 소리를 당사자에게는 차마 못 하던 이 친구를 보며 저리 힘든데 왜 소리를 내지 않을까 하며 궁금했다.

 

그는 어느새 굴레를 벗어 모임 사업도 해 보고(안타깝게도 사업변경), 공간 사업으로 영역을 바꾸면서 햄버거 푸드트럭을 하겠다며 버거를 준비하는 중이다. 모든 비즈니스를 3인칭으로 들여다보면 대단한 것도 있겠다만 영글지 못한 어딘지 아쉬운점이 보이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단단한 자존 아래 덜 성숙한 자신의 줄기를 조금씩 채워가면서, 숙성하지 못할 가지는 조금씩 바꿔가면서 또 옆에 또 다른 나무를 심어가며 넓은 숲을 만들어가고 있다.


돌아보면, 그가 첫 직장의 당사자들에게 직접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착한 성격상 맞지 않거니와, 그와 맞지 않는 화를 내었을 때 스스로에게 느껴질 어색함만큼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첫 직장이 그는 잠시 거쳐가는 나무라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기에, 현명한 그는 굳건히 박힌 가지를 흔들지 않았던거라.


코로나 시대가 끝난 뒤, 어딘가를 여행할 그가 입국신고서의 'job'에 과연 무엇을 쓸 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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