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병인양요, 기억나시나요?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지요. 이 병인양요는 조선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퇴한 사건으로도 기록돼있습니다. 조선으로서는 최초로 외세를 물리친 사건이었기에, 쇄국정책을 더 강화하는 계기도 되었지요. 그런데, 프랑스 입장에선 이 사건이 비단 '패배'의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교 문서를 보면 '외교관이 똥볼 찬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거든요.
그 주인공은 바로 벨로네(Henri de Bellonet) 청나라 주재 프랑스 공사대리였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만든 당사자이지요. 벨로네 공사대리는 중국으로 탈출한 리델 신부로부터 1866년 7월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조선에서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프랑스 본국에 그 내용을 보고하는 한편, 청나라를 향해서는 이 문제에 개입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청나라가 이를 거부하자, 벨로네 공사대리는 '청나라가 조선의 종주국임을 포기했다'면서 본국의 명령도 받지 않고 이런 선포를 하게 됩니다.
"조선의 국왕이 우리의 불행한 동포들에게 손을 가한 바로 그 날이 그 통치의 마지막 날이다. 조선 국왕은 그의 멸망을 스스로 선언하였다. 며칠 후 우리 군대는 조선을 정복하러 나아갈 것이며, 우리의 존엄한 황제만이 조선과 주인이 없는 그 왕좌를 처분할 권리와 권한을 갖고 있다."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프랑스의 한 외교관이, 그저 혼자 마음 내키는 대로 전쟁을 선포하며 조선 국왕의 폐립을 선언했으니까요. 이런 그의 '급발진'에 놀란 청나라는, 조선이 선교사를 학살한 연유를 조사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프랑스의 원정 계획을 말렸지만, 벨로네 공사대리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그리고는 즉각 자신의 동료인 로즈(G. Roze) 제독에게 본인이 직접 조선 원정을 지휘할테니, 프랑스 함대의 지휘권을 이양할 것을 요구했죠. 한마디로 외교관이 군인에게, 군 통솔권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로즈 제독은 당연히 기가 찰 노릇이었겠죠. 현지 사령관인 자신에게 의중도 묻지 않고 대뜸 조선에 전쟁을 선포해서, 오히려 조선으로 하여금 전쟁 준비 태세를 갖추게 만들었으니까요. 게다가 조선 국왕 폐립 선언에 이어 프랑스 함대의 지휘권까지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니, 황당해했을 법 하죠.
아니나 다를까, 로즈 제독은 벨로네 공사대리에게 그가 독단적으로 행한 모든 외교적 행위가 월권이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 원정을 떠나더라도 그 지휘권은 벨로네 공사대리가 아닌, 현지 사령관인 자신에게 있다면서, 자신이 직접 원정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은 벨로네 공사대리뿐 아니라 자신의 조직인 해군부에도 직접 보고했지요. 그러나 해군부는 로즈 제독의 보고를 받고서는 주저했습니다. 해군부가 로즈 제독에게 답변한 문서를 보면 그 조심스러운 투가 읽힙니다. '조선 해안에 관한 정보들이 불충분하니 원정 계획에 매우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로즈 제독 당신이 거느린 병력만으로 쉽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면 승인한다', 이렇게 조건부 승인인 듯한 뉘앙스를 담았거든요. 그런데 로즈 제독이 이 회신을 들었을 땐 이미 조선 원정을 떠난 후였습니다. 한마디로 벨로네 공사대리와 마찬가지로 로즈 제독도 먼저 일을 저지르고서 후에 보고한 것이나 다름 없었죠. '답정너'처럼요.
물론 그 당시에는 프랑스 제독들이 전투를 개시하고 본국으로부터 뒤늦게 추인받는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국교를 수립하지도 않은 미지의 나라를 향해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전쟁부터 선포한 것, 그것도 자국 관료들끼리 의기투합해도 모자랄 판에 투닥거리며 싸움박질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옳은 일은 아니었죠.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이고 집안싸움으로까지 번진 프랑스의 조선 침입은 끝내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1866년 8월 10일 병인박해를 빌미로 한강의 양화진까지 왔다가 물러났던 프랑스군은 다시 전함 3척과 포함 4척, 병사 1천여 명을 동원해 조선을 침략합니다. 그렇게 9월 16일에 강화를 점령하고 한강을 봉쇄한 뒤 통상조약을 강요하며 조선을 협박해왔지요. 그러던 중 10월 3일 로즈 제독이 보낸 해군대령 올리비에의 부대 150여 명이 정족산성을 공격해왔습니다. 양헌수 장군은 미리 군사 5백여 명을 성문에 배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치열한 전투 끝에 적 6명을 사살하고 많은 병력에 부상을 입히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해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했습니다.
자국의 패전 소식을 접한 프랑스 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프랑스 정부는 벨로네 공사대리와 로즈 제독 두 사람이, 아무런 훈령도 받지 않고 경솔하게 움직인 것에 분노했습니다. 프랑스 외상(외교부 장관)은 벨로네 공사대리에게 말도 안되는 월권을 행사한 것에 "심각하게 경악했다"며 "(벨로네가 취한) 선언과 명령들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간주"하겠다고 밝히고, 그를 소환해 징계를 내렸습니다. (사실 벨로네 공사대리가 징계를 받게 된 과정에는, 로즈 제독이 그의 월권 행위를 낱낱이 고하면서 비난한 보고가 유효했습니다. 역시 집안 싸움이지요.) 그리고 벨로네 공사대리뿐 아니라 로즈 제독도 직권 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 의회에서 조선에 대한 군사 행동을 문제 삼자, 프랑스 정부는 겉으로는 조선 원정이 성공한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결국 로즈 제독을 복권시키고 벨로네를 스웨덴 주재 공사로 영전시키게 됩니다. 이것도 참 황당한 전개지요?
※ 참고 : 「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 김용구, 문학과지성사, 2001/5/10.
<병인양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병인양요>,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