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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Apr 03. 2023

너무 쉽게 나온 말

feat. 인왕산 화재

 어제는 벚꽃 보러 갔다가, 산불 보고 온 날이었다. 모처럼 가족들과 벚꽃을 보러 서울 홍제동의 안산 자락길을 찾았는데, 건너편 인왕산에서 불이 난 것을 직관 것이다. 머님이 싸김밥이 너무 맛있다며, 먼 산 배경으로 사진 찍겠다고 요란을 떨 와중에 연기가 눈에 띄었다. 붉은 화염과 잿빛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헉. 산불이다. 란 나는 부리나케 119에 전화했다. 대기자 수가 65명이지만 끊지 말고 기다리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 65명이 죄다 산불 신고를 하려는 건가? 일단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봤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인왕산에서 불이 났다는 재난 문자가 있었다. 소방당국에서도 대응에 착수했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제야 한숨 돌리며 김밥을 입에 넣.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먹고 있었는데, 김밥 너머 산불을 보고 말았다. by 아삼삼


 두두두두. 잠시 , 소방 헬기 2대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헬기들은 기다란 줄 끝에 물을 실은 버킷을 매달고서 인왕산으부지런히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니, 문득 가루를 다리에 매달고 날아가는 꿀벌이 생각났다. 물을 싣고 가는 모습도 그렇지만, 난데없는 산불로 휴일 고생 중인 이들이 새삼럽게 꿀벌럼 보였. 누가 방화를 한 건지, 실화를 한 건지, 아니면 건조한 날씨 탓에 자연 발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필 등반객도 많 휴일에 산불이 나 애꿎은 분들만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비록 불 끄는 게 그들의 당연한 업이라 도, 이 와중에 꽃 구경하는 게 하릴없는 내 일과라 해도, 치솟는 연기와 바삐 오가는 헬기를 옆에 두고 봄을 즐기자니 마음  치가 않았다. 


쉴 틈 없이 바쁘게 날아가던 헬기들. 이건 처음에 봤던 소방 헬기가 아니고 지원 나온 군용 헬기 같다. by 아삼삼


 그 때였다. 어디선가  소리가 다. "하이고! 이제야 기껏 2대가 왔다갔다 하네. 하여간 공무원 놈들, 엄청 미적거린다니까!" 리가 하도 커서 무의식적으로 그 쪽을 쳐다봤다. 60대로 보이는 남자 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방 헬기다. 내겐 꿀벌처럼 보였던 존재가 그 분에겐 태만한 존재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같은 걸 보고 다른 생각을 는 건 흔하디 흔한 자유이지만,  말은 기가 불편했다. 너무 쉽게 나온 말처럼 들렸던 탓이다. 이미 저만치 앞으로 간 가족들을 박자박 걸어가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 말 한마디가 내내 거슬렸다. 하늘로 쭉 뻗은 메타 세콰이어 길을  때도, 흐드러지는 벚꽃 아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 말이 음 속에 얹혔다.


 

이렇게 예쁜 메타 세콰이어 길과 벚꽃나무 길을 거닐고 있었는데... by 아삼삼


 내 마음이 불편했던 건, 그 분의 말이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 나는 평소에도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많이 보만 ㅡ 그리고 가족들조차 나와 다른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ㅡ '말을 쉽게 한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특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일 때는 더욱 그다. 그 말로 겨냥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가 그를 손바닥 꿰듯 훤히 알고 있다는 확신과 내가 절대 틀릴 리 없다는 , 그리고 른 어떤 예 있을 수 없다는 . 이 모든 것들이 찰흙처럼 단단히 뭉쳐져야만 나올 수 있는 게 '너무 쉬운 말'이었다.


 게다가 헬기가 기껏 2대만 왔다는 그 분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헬기 행렬이 줄지어 왔기 때문이다. (자락산을 오가는 도중에 내가 본 것만 10대가 넘었다.) 그리고 설령 그 분이 화재 대응 전문가여서 초반에 헬기 몇 대가 띄워진 모습만 보고 "엄청 미적거린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반면교사 사례가 귀감 사례로 탈바꿈할 순 없었다. 전문가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자세가, 부족한 근거를 준거로 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니까.  


소방 헬기와 산림청 헬기, 경찰 헬기까지 부지런히 화재 현장을 오갔다. by 아삼삼


 애당초 아무 생각 없이 꽃놀음만 즐기려던 내 바람은 산불과 함께 날아가버렸지만, 수확 하나는 있었다. 맨날 뭘 넣을까만 고민했지 어떻게 뱉을 지는 딱히 고민 던 내 입을 돌아봤다는 것. 때로는 내 기분이 별로라는 이유로, 그저 나와 가깝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뱉었던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봐도 별로고, 생판 모르는 남이 듣기에도 별론데, 하물며 가까운 이들이 듣기엔 오죽 별로였을까.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려고 브런치에도 글을 남겨본다. 이렇게 붙박이처럼 박제해놨으니, 앞으로는 말도 마음도 좀 곱게 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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