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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Apr 12. 2023

일본의 사과가 통하지 않은 이유

 인터넷 검색창에 '일본 과거사 사과'라고 치면, 꽤 많은 글이 뜹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일본이 단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거나, 아니면 '일본이 이미 사과했는데, 한국이 무리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역대 한국 정부의 대응을 타박하는 듯한 내용이 나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은 사과를 하긴 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요. 하지만, 그 사과는 한국에 통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지금껏 해온 사과보다, 훨씬 더 많은 망언들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과 많은 한국인들이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한 것도 비단 일본 정부가 배상 책임엔 모르쇠 전략을 썼기 때문만이 아니라, 왜곡 발언이 쏟아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정부가 2018년까지 집계한 주요 발언 자료만 봐도, 일본 정치지도자나 당국자의 왜곡 발언은 과거사 반성 발언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외교부가 '2018 일본 개황'에서 정리한 자료를 날짜별 (행사별)로 보면, '과거사 반성 발언'은 71건, '왜곡 발언'은 177건으로 집계돼있습니다. 아마 주요 발언만 추린 것일텐데도, 정부가 공식 집계한 것에서 두 발언의 횟수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직접적으로 '사죄' 또는 '사과'라는 표현이 담긴 발언은 19건으로 집계되는데요. (참고로, 문맥상 사과로 볼 수 있는 발언은 더 많습니다.) 이마저도 1990년대, 일본 역대 정권에서 그나마 전향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던 몇몇 정권에서 주로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그나마 전향적으로 평가 받았던 역사 인식은 노태우 정부 시기인 가이후 총리부터 호소카와 총리, 무라야마 총리와 오부치 총리 등으로 이어져오다 아베 정권에 들면서 흐름이 끊겼습니다.


 과거 일본 총리의 주요 사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읽으시면 아마 격세지감이 느껴지실 겁니다.  

 

 "과거 한 시기,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일본)의 행위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솔직히 사죄를 드린다." ㅡ 가이후 총리, 1990년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 우리나라(일본)의 침략 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것에 대해 새로이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 ㅡ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1993년 8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한반도의 여러분이, 예를 들어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고, 타국어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창씨 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종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고자 한다." ㅡ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1993년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책을 그르쳐서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제국의 사람들에 대하여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 가져온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 대하여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ㅡ 무라야마 총리의 특별담화 일부, 1995년 8월 15일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ㅡ 1998년 10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중 일부 

 

 앞서 보신 것처럼, 가이후 총리는 식민 지배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호소카와 총리는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를 처음 쓴 것에서 나아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입은 피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사죄했습니다. (호소카와 총리는 이 여파로,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암살을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처음으로 정식 각의 결정을 거친 사과였고, 한일 파트너십 선언문은 한국어로 '사죄'라는 기록을 담아낸 첫 문서였습니다. 피해자와 한국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 정부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역사 인식을 이끌어낸, 뜻깊은 외교의 결과물이었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런 사과들을 무색하게 만든 일본 지도층의 왜곡 발언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특히, 과거사 중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에 대한 왜곡 발언이 많았는데요. 몇 가지만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읽다보면 속이 답답해질 수 있으니, 주의세요.


 "위안부는 당시의 공창(公娼)이었으며, 그것을 현재의 눈으로 보아 여성 멸시라든지 한국인 차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ㅡ 나가노 법무대신, 1994년 5월 언론 회견에서 (며칠 후 발언 철회하고 사임)


 "태평양전쟁은 침략하고자 해서 한 전쟁은 아니었다. 아시아 제국에 폐를 끼친 반면, 그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고, 교육도 보급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지배를 받은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훨씬 문자해독률이 높다." ㅡ 사쿠라이 환경청 장관, 1994년 8월 출입기자 대담에서  (며칠 후 발언 철회하고 사의 표명)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 한일합방은 무효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국제협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ㅡ 에토 총무청 장관, 1995년 10월 기자간담회에서  (20여 일 후 발언 철회하고 사임)


 "군이나 관헌이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고 간 '위안부 사냥'과 같은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경제사정 등을 감안한 광의의 강제성은 있을 수 있으며, 고노 담화의 계승은 이러한 강제성의 정의가 바뀐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ㅡ 아베 총리, 2007년 3월 기자단 질의 답변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증명하는 자료는 사실상 없었다. 후손들에게 불명예의 짐을 계속 지도록 할 수는 없다." ㅡ 아베 중의원, 2012년 8월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관련) 사기꾼이 쓴 책을 일본 언론이 보도하면서 강제동원이 사실처럼 알려졌다." ㅡ 아베 자민당 총재, 2012년 11월 일본 기자 클럽 주최 당대표 토론회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다" ㅡ 아베 총리, 2013년 3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아베 내각으로서 소위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것은 아니다" ㅡ 아베 총리, 2013년 3월 참의원 예산위에서


 "일본군 '위안부'에는 일본인 여성도 있었다. 일본 여성은 스스로 '나는 위안부였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부끄럽다. 한국 여성은 그렇지 않다. 거짓말만 한다. 인종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전혀 달라 부끄러움이라는 개념이 없다. 종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려 하고 있다. 어디까지 부끄러움을 모르는지 뻔뻔스럽다." ㅡ 나카야마 중의원, 2014년 3월 지방강연회에서


 "기다리면 한국 쪽에서 접근해 온다고," "종군위안부 문제는 3억 엔이면 해결돼." ㅡ 아베 총리, 2015년 6월 총리 관저 기자클럽에서 비보도 전제 친목회에서


 "관동대지진시 조선인과 중국인 등 학살 사건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는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되지 않은 바, 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은 없다." ㅡ 아베 총리, 2017년 5월 참의원 질문주의서에 대한 답변서에서


 어떠신가요? '사과를 했던 곳과 같은 나라 얘기가 맞나' 싶지 않나요. 물론 사과를 한 인사들과 왜곡 발언을 일삼은 인사들은 다릅니다. 정치 성향도 다르고, 정권도 대부분 달랐죠. 그러나 이들 모두가, 발언의 무게감만큼은 똑같이 무거운 지도자, 당국자들이란 점에서, 피해자들과 많은 한국인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일본 측의 기존 사과조차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일본이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배상 책임에는 나몰라라 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일본이 "정말 미안한데, 이미 예전에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 배상해줄 순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여겼던 거지요. 


 이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달리 식민 지배를 합법으로 간주하는 시각과 깊은 관련이 있데요. 것과 연관 있는 내용 전편 글 <단어 'already'가 쏘아올린 한일 갈등'> 담았으니, 혹 궁금한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핵심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습니다.



 


※ 참고 : 외교부, 『2018 일본 개황』, 나무와 숲,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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