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이슈 이기는 하지만 학폭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운동선수부터 연예인, 현직 공무원에서 유튜버 까지 온갖 보도와 찌라시가 난무했다. 몇 해전 불어닥친 '미투'처럼 학교폭력은 '학투'가 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피해자의 고통이 공감되는 학투들이 많았다. 하지만 몇몇 이야기 들은 남 잘되는 거 보기 싫은 마녀사냥식의 학투도 분명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학투들을 보며 학교폭력에도 세대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 국민학교 학생이었다. 80년대 초반생으로 90년대에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 학교는 야만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 반은 68명이었다. 책걸상이 부족해 학교 창고에서 땔감으로나 쓸만한 오래된 책걸상을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이면 교실 중앙의 난로를 떼기 위해 손발을 비비며 석탄을 받으러 다녔다.
90년대 국민학교 교실 풍경
넘쳐나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저학년을 대상으로는 한 교실을 두 개 학년이 나눠 쓰는 오전반 오후반 수업을 하기도 했으며, 그 많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세워두고 훈화 말씀하시던 교장선생님의 공감능력은 지금 생각하면 참혹할 수준이었다. 학교가 이런 환경이다 보니 교사들은 교육을 한다기보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행정적 절차에 착오가 생기지 않는 것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권은 위력적이고 또 폭력적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경험한 첫 학교 폭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 의한 것이었다. 그 전에도 손바닥이나 종아리, 엉덩이나 허벅지를 대빗자루로 맞는 것은 다반사였지만 선생님으로부터 맞은 기억이 폭력으로 각인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퇴직을 얼만 남기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은 운동선수를 하려다 군부독재 시절 교사가 됐다고 했다. 2교시만 되면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켰던 그는 교실 안에서 해장용 라면을 끓여 먹고 자연스럽게 담배까지 피워대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옛날이었으면 애들 교련복 입혀서 원산폭격시켜야 하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 담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자기 집 이삿날에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남자아이들에게는 짐을 나르게 하고 여자 아이들에게는 청소를 시킨 일은 애교에 불과했다. 학교 운동회 전에는 비 오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반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운동장에 망치와 못으로 플라스틱 잔디 모양 트랙 구분선을 박게 했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빗속에서 국민학교 5학년생들이 맞춘 특렉선이 제대로 일리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용납은 없었다. 우리는 쫄딱 젖은 채로 엎드려 뻗쳐를 한채 대빗자루로 엉덩이를 맞고 그 일을 다시 해야만 했다.
무슨 이유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얀색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간 날 나는 이 선생님으로부터 머리끄덩이 잡힌 채 주먹과 발로 사정없이 맞았다. 12살 아이에게 운동선수 출신 50대 후반 남자 교사의 완력은 대단한 것이었고, 내 하얀색 체육복은 코피로 얼룩졌다. 폭행이 끝나자 그는 나에게 5천 원짜리 한 장을 던져 주고 나가서 담배를 사 오라 했다.
교사 개인의 인성문제도 있었겠지만 이런 폭력이 교사의 합법적 체벌로 용납되던 그 시대는 분명 '야만의 시대'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달라지지 않았고, 돈을 내고 다니는 학원 역시 폭력에 가까운 체벌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환경 가운데 법과 교칙보다 가까운 힘의 위력을 터득했고, 폭력에 의해 세워진 교권은 다시 폭력에 의한 학생들 사이의 위계로 자리 잡혔다. 폭력과 야만의 되물림이 교사에서 학생으로, 학생에서 학생으로, 그리고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졌던 것이다.
HOT의 '전사의 후예'와 정우성, 유오성 주연의 영화 '비트'등 당시 문화 콘텐츠는 모두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교실뿐만 아니었다. 교실 밖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최고의 아이돌 HOT는 학교 폭력이 주제였던 노래 '전사의 후예'로 데뷔를 했고, 최고 흥행 영화였던 정우성 주연의 '비트', 장동건 주연의 '친구'도 교복을 입은 채 싸움을 하던 청소년들이 어떻게 조직폭력배가 되는지를 보여주던 스토리였다. 지상파 드라마라고 다를 것 없었다. 장혁 주연의 드라마 '학교'역시 학교 폭력과 왕따 문화를 그대로 보여줬으며, 도서 대여점에서 예약까지 하고 빌려 읽던 만화책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짱', '진짜 사나이' 등 모두 학교 폭력이 주제였던 스토리였다. 당시의 우리는 그런 폭력을 낭만으로 생각하고 동경하기도 했다.
학투 이후 다시 학교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러 주장과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지금의 교육제도를 유지하는 한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학교폭력을 없애는 것보다 학교를 없애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학교폭력의 수위와 야만성의 농도는 낮아질지 몰라도 학교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투'로 이들의 트라우마를 다 극복할 수는 없다. 10년 전, 20년 전 학교 폭력을 저지른 몇몇을 폭로하고, 지탄하고, 망신 주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학교폭력이라는 근본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는 모든 폭력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 간의 폭력을 넘어 아직도 남아있는 교사의 폭력, 그리고 성적별로 줄 세우는 차별이라는 폭력과, 교육제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까지 그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
나에게 첫 학교 폭력을 선사했던 그 담임선생은 이제 80대 후반의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되돌아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용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선생도 전쟁과 가난이라는 더 야만스러운 시대를 나름 힘겹게 살아왔을 것이라 여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학교폭력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떤 앙갚음을 하기보다는 다만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도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가해자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죄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