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으로 남는 브랜드의 조건
좋은 기관은 많지만 기억되는 기관은 드뭅니다. 우리는 수많은 캠페인과 홍보를 쏟아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이름은 몇 되지 않아요. 기억에는 구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오래 기억하지 않아요. 하지만 감정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반복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언어와 이미지를 우리는 브랜드라고 부릅니다.
브랜드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은 시각, 메시지, 경험이에요. 이 세 가지가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될 때 사람들은 그 기관을 신뢰하고 감정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첫째, 시각적 아이덴티티는 기관의 얼굴이에요. 로고, 색상, 폰트, 이미지 톤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는 종종 캠페인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합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과 같아요. 사람들은 일관성을 통해 신뢰를 느낍니다. 복지관 현판의 색감, SNS 썸네일의 폰트, 뉴스레터 제목의 문체가 일정할 때 사람들은 이 익숙함을 브랜드를 이어갑니다. 시각적 통일성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지속성을 만드는 장치예요.
둘째, 메시지와 톤앤매너예요. 브랜드는 언어의 습관이에요. “우리는 늘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 “어떤 어조로 말하는가?” SNS, 뉴스레터, 행사안내문 등 모든 채널에서 일관된 어휘와 문장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그 기관다운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그 기관의 말투가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메시지의 힘이에요.
셋째, 경험이에요. 브랜드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경험에서 완성됩니다. 후원 전화를 받을 때의 목소리, 행사장에서 마주친 직원의 표정, 기관을 떠올릴 때 드는 감정이 바로 브랜드 경험이에요. 사람들은 정보를 기억하지 않아요. 감정을 기억합니다. 한 번의 자원봉사라도 따뜻한 인사 한마디, 진심 어린 환영의 표정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기관을 잊지 않아요.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좋은 경험은 단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좋지 않은 경험은 단 한 번으로 모든 기억을 바꿔버릴 수 있죠. 그렇기에 경험은 브랜드의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얼굴이에요.
월드비전에서 매년 열리는 꿈엽서그리기대회처럼 같은 메시지를 다른 세대가 반복해 경험할 때 브랜드는 세대 간의 기억이 됩니다. ‘그 엽서를 나도 그렸었지’라는 개인의 기억이 곧 기관의 자산으로 남는 거예요. 파타고니아가 매년 다른 제품을 내놓으면서도 ‘환경’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이유도 같습니다. 시각, 메시지, 경험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순간 후원자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몇 세대의 기억이 부정적이라면 그 세대가 중심이 된 시대에는 그 브랜드 파워가 확연히 줄어들테니까요. 흥미로운 일이지만 브랜드는 논리보다 감정의 언어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먼저 “좋다”고 느끼고 그 다음에 이유를 찾아요. 같은 이유로 “나쁘다”는 인상을 먼저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이유로도 이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브랜드의 일관성은 잘만든 일회성 디자인이나 캠페인이 아닌 모두가 동의하고 사용하는 시스템 즉 구조에서 만들어집니다. 감정의 기억을 오래 유지하려면 감정이 흐르는 통로가 일정해야 하죠. 그래서 조직에는 기억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반복 가능한 체계가 필요합니다. 직원 모두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이 뒤따라야 해요.
얼핏 복잡할 것 같지만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첫째,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기관의 핵심 키워드를 정하는 것입니다. 3~5개 사이가 적당한데 비영리기관이라면 ‘아동, 희망, 함께’ 같은 것들을 중심 키워드로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째, 모든 직원이 기관을 소개할 때 사용할 ‘한 문장 소개’를 만드는 거예요. 슬로건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아동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하는 기관입니다” 이런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정체성을 명확하게 전하죠.
셋째, 시각적 아이덴티티(로고, 색상, 폰트)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로고, PPT, 포스터 같은 세세한 것들까지 모두다요. 각자가 다른 디자인을 쓰면 브랜드의 얼굴은 금세 흐려집니다.
메시지의 일관성은 신뢰로 이어집니다. 모든 조직의 구성원들이 같은 말, 같은 표정, 같은 감정으로 세상과 관계 맺을 때 브랜딩은 훨씬 강력해집니다.
브랜딩은 단순히 홍보가 아니라 기관이 세상에 던지는 ‘자기소개서’와 같습니다. 그것도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자기소개서요. 그래서 저는 캠페인을 기획할 때마다 이렇게 질문해요. 이 캠페인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할까? 영상이 멋짐? 예쁜 홍보물? 어떻게 하면 이 기관은 뭔가 다르다고 꼭 응원하고 싶다고 느끼게 할까?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좋은 일에 참여하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에요. 사람들은 화려한 캠페인의 문장보다 현장에서 느낀 친절한 직원의 말투를 더 오래 기억합니다. 결국 브랜드는 어떤 자료가 아니라 사람들이 느낀 감정으로 존재하죠. 오프라인 행사의 경우 이 부분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 외주스텝, 자원봉사자 등 캠페인의 옷을 입은 모두는 같은 태도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브랜드는 내부의 진심이 얼마나 같은 톤으로 세상에 전달되느냐의 문제예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리 기관의 자리를 좋게 만들어주는 일, 그것이 곧 브랜딩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