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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관리를 넘어서는 경험으로

후원자의 감정 곡선을 따라가는 여섯 개의 장면

by 짱고아빠

관리의 언어를 넘어, 경험의 구조로


후원자 관리라는 말은 대체적으로 명부와 데이터, 발송 리스트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을 기록하는 일이나 관계를 유지하는 일로 정도로 생각하죠. 실제로 예전까지만 해도 후원자 관리는 이런 기능만을 담당하는 효율적 측면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후원자 한 사람이 우리 기관과 만나는 순간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신뢰가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그 흐름을 디자인하는 후원자 경험 즉 후원자 여정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후원자 관리의 한단계는 끝나야 하는 일’이지만 경험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첫 후원 안내 전화를 마친 직후 그 사람의 이름이 명단에 적어두는 것으로 업무는 종료되지만 경험의 시선으로 보면 그건 관계가 시작된 첫 장면인거죠. 이 작은 차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꿉니다.


경험은 설계되는 일이다


종종 이런 메세지를 봅니다. 내용은 반박할 수 없게 정확하고 절차는 깔끔하지만 기계적인 응대 같은거요.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그 미세한 온도 차이를 기억해요. 그리고 이곳은 정확하지만 말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는 느낌을 받죠. 우리는 종종 진심이면 전해질 거라고 말하지만 생각보다 전하기는 쉽지 않아요. 진심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보다 조금은 세심한 설계가 필요해진 시점입니다.

영리기업의 사례이긴 하지만 A기업에서 고객 관리를 주로 엑셀로 했다고 해요. 구매 리스트, 광고 리스트, 사이트 유입 리스트는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구매 버튼을 눌렀는지는 확인이 안 됐던 거죠. CRM을 활용해 그래서 이들은 고객 여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72개의 고객 종류(부모+아이, 부부, 할아버지+손녀 등)와 103개의 캠페인 시나리오를 그려냈어요. 예를 들어 홈페이지에서 ‘40대 남성이 60대가 사용하는 제품(부모님 추정)을 구입했고, 다음 달에 같은 제품을 또 구입했다. 그런데 본인의 제품(40대 제품) 사이트는 보기만 하고 나갔다’는 식의 정교한 시나리오를 103개나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 이 고객종류와 시나리오를 조합하여 각각의 상황에 맞춰 자동화된 메시지와 추천을 보내고 필요할 경우 구매 고객 중 설문조사를 통해 조금 더 정확한 니즈를 파악하기도 했죠. 그 결과 매출이 200%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게 바로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힘이고 고객에게 또 구매하고 싶은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이런 설계가 필요합니다. 후원자의 감정은 감동과 감사만 있는게 아닙니다. 의심, 망설임, 지루함 같은 감정들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경험 설계의 목적은 ‘항상 좋은 기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감정의 곡선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일입니다.



후원자의 여정, 감정의 6단계를 따라가기

비영리 마케팅에서도 이러한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제 비영리단체와 CRM(고객관리) 플랫폼에서는 이를 ‘후원자 여정(Donor Journey)’ 또는 ‘후원자 생애주기(Supporter Lifecycle)’라고 부르며 이 흐름을 여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인지(Awareness), 관심(Interest), 고려(Consideration),
기부(Donation), 유지(Retention), 추천(Advocacy)


이 모델은 고전적인 마케팅 프레임워크인 AIDA(Awareness–Interest–Desire–Action)를 비영리 영역에 맞게 확장한 형태로, 월드비전과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같은 국제 NGO들도 최근 이 구조를 기반으로 후원자 경험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후원의 시작과 끝을 나누기 위한 구분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공감에서 신뢰로, 그리고 관계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틀입니다.


인지 단계에서 후원자는 우리를 우연히 만납니다. SNS에서 본 사진 한 장, 친구의 나눔 후기, 거리에서 마주친 캠페인 문구가 마음에 남죠. 이때 후원자의 감정은 공감입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단계에서는 감정의 과잉보다 메시지의 명확함이 중요합니다. “이 기관은 왜 존재하는가?”, “이 캠페인은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 공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주는 건 바로 이런 명료함이에요.


관심 단계로 들어오면 사람은 조금 더 알고 싶어집니다. 후원자는 이제 기관의 이름을 기억하고,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영상을 다시 시청하고, 다른 사람의 후원 후기를 읽어요.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세련된 홍보보다 이야기의 진정성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들려줘야 합니다. 이유가 진심이면 언어는 단단해지고, 단단한 언어는 신뢰를 만듭니다.


고려 단계는 감정이 행동으로 바뀌기 직전입니다. “내가 낸 돈이 정말 도움이 될까?”, “이 기관을 믿어도 될까?” 이런 질문은 매우 자연스러워요. 그래서 설득보다는 안심이 필요합니다. 후원 절차가 간결한지, 금액 구조가 명확한지, 문의에 신속히 응답하는지 같은 세세한 경험이 바로 관계를 결정합니다. 이 단계에서 후원자가 받는 인상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기관의 철학을 보여주는 신호예요.


기부 단계는 감정이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아이 이름이 화면에 뜨거나 ‘후원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찰나 후원자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으로 남겨야 해요. 환영 메시지, 감사 카드, 첫 보고서 같은 작은 장면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이 일의 일부가 되었다”는 확신을 심습니다. 이 시작의 감정이 관계의 첫 뿌리가 됩니다.


유지 단계는 감정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시점이에요. 일정이 반복되면 마음은 무뎌지지만, 의미는 더 깊어집니다. 이때 후원자는 효용보다 의미를 찾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나 뉴스레터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함께 만든 변화의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이 아이가 학교에 갑니다.” 이 한 문장이 신뢰를 유지시킵니다. 보고가 아니라 감사로 느껴지는 순간, 후원자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요.


마지막 단계인 추천은 관계의 완성입니다. 감동받은 후원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도 처음엔 망설였는데, 해보니 참 좋았어.” 그 말 한마디가 또 다른 후원을 만듭니다. 추천은 단순한 홍보 효과가 아니라 후원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기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 후원자는 참여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는 동료가 됩니다.


결국 우리는 후원자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여정을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감정의 단계를 지나가는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그 마음이 다음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게 돕습니다. 숫자와 명단 속의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와 감정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

다정한 태도 위에 세심한 기억이 쌓일 때 그것이 곧 좋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야말로 후원자가 우리와 오래 함께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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