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렬 총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기초연구방법론 화상강의에서이다.
당시 코로나 때문에 모든수업은 비대면으로 실시되고 있었고, 나는 수업따라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수님은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쉬는 시간도 없이 수업을 진행해주셨고,
나는 이미 포화되어 과열된 상태였기때문에 "이제그만~ 이제그만~"을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과 관계 없이 수업진도는 계속 나가고 있었지만,
수업시간 내내 느낄 수 있는 것은 교수님이 갖고 계신 학문의 즐거움이었다.
나도 학문을 좋아하여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이지만,
교수님의 수업을 겨우 따라가고 있던 나로서는 교수님은 넘사벽같이 느껴졌다.
교수님을 두번째로 만난 것은 연구비 정산일을 하면서다.
이때도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업무는 이메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가끔씩 전화통화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따뜻하게 여쭈어주시는 그 질문이 늘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만큼은 논문의 진도가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해 푸념을 털어 놓고야 말았다.
진도가 너~~~~무 안나가요 ㅠㅠ"
"다~ 시간 지나면 됩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수님 특유의 따뜻함과 느긋함이 드러나는 경상도 말투의 이 말씀을 듣고 생각했다.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이런 여유로운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누리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런 여유로운 마음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짐작하리라.
그러고 곧 다시 업무이야기로 들어갔지만, 형식적인 안부가 아니라, 진심으로 물어주는 마음,
그리고 상대의 걱정이 녹아내릴만큼 여유있고 확신있는 말씀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특히 논문 막바지에 지칠때 마다 그 말씀은 계속할 수 있는 영혼의 힘이 되어 주었다.
"다~ 시간 지나면 됩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수님을 세번째로 만난 것은 졸업축하 파티에서이다.
이때는 총장 부임을 2주 앞두고서였다.
우리들은 우리대학원에서 총장님이 선출되는 경사가 났다며 기쁘고 즐거워 했다.
이날은 나의 지도교수님이 우리대학원으로 임명된 후 처음으로 하는 행사였다.
행사장은 강남에 있었기에 엄청난 정체가 예상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늘 예상되듯 많은 VIP분들께서 좀 늦겠다는 연락을 주셨고,
결국은 너무 늦어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주셨다.
그리하여 이 행사에 참석한 VIP는 총장님 단독이 되셨다.
그렇지 않아도 부임전 여러 업무인계나 인사드릴 일로 바쁘실텐데 어떻게 이곳에 참석하고자 하는 뜻을 내셨을까?
40명이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빗 단체룸이었지만,
나는 당해 졸업생에 속했기 때문에 축하받기 위해 VIP석에 앉아 있었고,
졸업생들이 있는 자리로 안내를 받은 총장님은 결국 나의 옆자리로 안내받게 되어
운좋게도 나는 총장님 옆에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셨다.
식사는 곧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졸업생들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총장님은,
"나는 인자 내려올 길 밖에 없대이. 앞으로 많이 도와줘야 된대이"
라며 인사를 하셨다.
흔히들 대학의 '총장'이라고 하면 권위적이라 생각하기 쉽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요청 받을 것 같은데,
오히려 겸허하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 마치 성인군자같이 느껴졌다.
그러다 같이 VIP석에 앉아있는 우리대학원 대학원장님께 말씀하셨다.
대학원장님은 나의 지도교수로서, 이번에 처음으로 맡은 보직이었다.
총장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봐라. 나는 진짜 왔쟤? 내가 뭐때문에 왔는줄 아나? 우리 박도형 대학원장한테 힘이 되주려고 왔지"
여여한 총장님의 모습은 "인연에 따라 총장이 되었을뿐, 이 자리도 주위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거지,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니야."의 느낌을 주셨다.
자리보다 더 빛난 분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취임 후 1년이 다가갈 무렵, 인사 나누기 위해 근황과 고민이 담긴 메일을 드리자 바로 면담시간을 잡아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내 딸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세계로 나가라고 하겠다"는 말씀.
늘 그렇듯 따뜻하고 여유있게 말씀주셔서 더 다가왔던것 같다.
그래서 내 친구는 지도교수였던 총장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나 보다.
대학원 졸업축하파티가 열린 곳은 강남의 라그릴리아다.
행사참석으로 5번정도 가봤는데, 음식에 쉽게 물리는 나도 아직도 거기가 좋을만큼
스테이크와 샐러드, 파스타, 피자, 리조또 모두 평균 이상이다.
특히 매 시즌마다 special 메뉴가 나오기 때문이 질리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그쪽의 와인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행사마다 좋은 와인을 챙겨오는 분들이 있어서 호평은 받지 못했다.
코키지 차지는 1잔당 5,000원이다.
강남에는 단체석이 가능한 매장이 있는 곳이 드물어 늘 이곳에서 하게 되었는데,
정원은 40인석이다.
음식이미지출처: 라그릴리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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