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까지 '나만 잘 살면되지'라는 생각에 쩔어 있던 나는, 내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는 삶,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을 확신할 수 없어 많이 답답했었다.
그때 배우게 된 것이 '함께 사는 삶'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5년째 살고있는 나를 돌이켜 보니,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29세에 이룬 것이 하나 없어 보였고, 눈만 뜨면 가격이 오르는 집을 장만하기는 까마득하게만 보였다. 전문가가 되어 세계평화에 일조하겠다는 나의 꿈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든 일상에서 아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아이를 키우면 아이라도 남지. 한없이 지치게 만드는 회사일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맞선도 몇번 봤지만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이 없으니 아이가 생길리 만무했다. 이건 정규직으로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내 커리어는 한없이 부족해보였고, 일단 뭐를 하든 미국에서 박사학위는 따야할 것같은데, 많은 업무와 업무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와중에 집에만 오면 쓰러질 것 같은 내게 박사학위를 위한 도전은 버거웠다. 내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졌다.
대학교 3학년때에,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국가로부터 월 생활비로 100만원씩 받는 덴마크 학생들과 공부하며, 부모의 재력이 아니면 유학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집 걱정, 커리어 걱정은 곧 나에 분석과 비난으로 이어졌고, 이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이때 생계걱정없이 나의 평화라도 먼저 찾기 위해 찾은 곳은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정토회였다.
이때 법륜스님께서 운영하시는 평화재단에서 활동하며 연사초청 포럼에 참여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두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을 자신의 우월한 속성 덕분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성공담을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부자가 아니거나 성공을 못하는 것은 상대가 잘 못했거나 어리석었기 때문, 혹은 자신만큼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충분히 좋은 조건에서 더욱 편안한 삶을 택할 수 있지만 불편해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길을 택한다. 일단 마음이 따뜻하여, 사람을 성공자과 실패자로 나누지 않고 모두에게 소중히 대한다. 자신의 성공담보다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한다.
내가 자란 환경에서는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단하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도 그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삶을 들었을 때 먹먹해졌다.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삶이지만, 너무 아름답고 위대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세현 장관님은 두번째 유형의 분이시다. 강의하실때에는 굉장히 냉철하시고, 무뚝뚝한 모습이셔서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반도평화포럼 10주년 행사의 실무를 맡으면서 식사할 일이 종종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따뜻한 분'이란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아내를 무척 사랑하시고, 북한 간부와 협상을 하면서도 장막을 치고 이야기하는 분이 아니라 일단 인간적으로 열어두고 굉장히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 해오신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때 상대가 누구이든, 일단 열어두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법을 배웠다.
장관님께서는 업무상 자동차가 제공되어 탑승하는 것이 아니면 자가용 이용을 꺼리시는데, 조금이라도 더 걷는 것을 생활화 하기 위해서다. 같이 걸어다니면 길에서 벤치에 앉아있더라도 일어나서 중절모를 벗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이름 모를 노신사들을 만나곤 했다. 옆에 있던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받긴했지만, 마치 덕이 높은 벼슬아치가 지나가면 '나으리~'하면서 인사를 하는 백성들을 만나는 사극의 한 장면에 있는것 같았다.
'얼마나 덕이 높이시면 안해도 되는 인사를 저렇게 정성들여서 하실까?'
감탄이 되었다.
인사를 받는 장관님의 모습도 멋있었다. 인사를 하신 분이 왼쪽에 계셨기에 걸어오는 길에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아래로 흔들면서 '허.. 나는 별거 아닌 사람인데, 어서 편히 앉으세요. 인사해줘서 고맙소'의 느낌을 주셨다.
하루는 식사 가자면서 한반도평화포럼 10주년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사무국으로 찾아오셨다.
마침 사무국에는 나밖에 없었고, 그렇게 찾게 된 곳이 종로구 내수동 벽산 광화문 시대 지하에 있는 대장금이다.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에 있는 밥집이기 때문에 광화문을 많이 다닌 사람들도 지상으로만 다녔다면 본 적이 없는 식당일 것이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dladlfks/223474748980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복도에 플라스틱 의자가 줄을 서 있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11시 반쯤에는 도착해야 웨이팅 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장관님과 나는 12시가 넘어 도착한 터라 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려도 여기가 호텔 식사보다 나아.'
하시며 오전에 소공동 롯데호텔 본점에서 행사를 마치고 오찬을 두고 오신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매장은 크지 않은데 음식이 늦게 나오는 편이라 웨이팅도 긴 편이다. 다소 난잡해보이는 인테리어지만 곳곳에 읽을거리들이 꽤 있다. 사장님의 리즈시절 사진이며, 청와대로부터 명예로운 선물을 받은 모습도 있다. 갖가지 좋은 식재료를 쓴다고 소개가 되어 있다. 특히 도정해서 바로 지은 쌀을 쓰기 때문에, 우리는 밥이 남으면 싸오는 습관이 있었다.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사장님이신데, 손님에 대한 존중이 엄청나시다.
구성메뉴이다. 모두 맛있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은 황태미역국!
장관님께서도 즐기신 황태미역국. 국물이 무척 진하다. 그리고 미역은 무척 부드럽다.
장관님께서는 '여기 음식이 맛도 있고, 속도 편해' 하셨다.
그리고 음식점 사장님께서 부지런히 서빙을 하며 너드레를 보이는 농담도 간간히 받아주셨다.
갓 도정한 쌀로 밥을 짓는데, 밥을 고봉으로 주신다. 밑반찬도 많은 편이다. 두번째반찬부터는 마음껏 가져다가 먹을 수 있다. 한번은 밥이 너무 좋다고 싸가겠다고 했더니 비닐에 밥을 담고 가면 안된다며, 샤넬 반지가 들어있을 만한 샤넬 미니 종이백에 밥을 담아주셨다. 이렇게 사장님 재치가 넘친다.
호텔식를 제치고 찾게 하는 이곳의 미역국, 샤넬 반지보다 귀한 이곳의 쌀밥을 맛보고 싶으시면,
경복궁역 인근, 서울 경찰청뒤 혹은 서울정부청사 뒤에 있는 대장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