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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May 16. 2018

이번 역은 아이와 싸우는 여행 :  왜 말을 안 들어?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이
항상 나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우리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 작자미상 -



“왜 말을 안 들어?”

“엄마가 사준다고 해놓고 안 사줬잖아”

“다음에 사준다고 그랬잖아”

“다음에 언제? 지금 사줘, 지금 사 달라고”

“너 정말 이럴래? 아빠한테 혼 좀 나야 정신 차리겠어?”


경주 불국사 앞. 엄마와 아이의 대화입니다. 이쯤에서 아이가 ‘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아버지한테만은 말씀 전하지 마셔요’라며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엄마, 거짓말쟁이!’를 외친 아이는 사달라고 계속 떼쓰다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웁니다. 결국 아빠 손잡고 기념품을 사러 갔다 왔지요. 엄마는 길게 한숨을 쉽니다. 아이 때문에 생긴 분노가 아빠를 향합니다. 도끼눈을 뜨고 째려봅니다. 아빠는 ‘왜 불똥이 나한테 튀냐’며 한마디를 하고는 차문을 쾅 닫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차문을 쾅 닫습니다. 그렇게 가족은 다음 여행지로 향합니다.


여행하다가 싸움이 생기는 건 흔한 일입니다. 평소에 집에 가만히 있을 때도 싸우는데 밖으로 나가 이런 곳 저런 곳을 함께 다니다 보면 싸울 거리가 넘쳐납니다. 정말 먼지처럼 사소한 일 하나로 옥신각신 하게 됩니다. 엄마라고 아이와 싸우고 싶겠습니까? 엄마도 아빠처럼 비겁하게 기념품 사주고 점수 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지켰으면 하는 걸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는 거지요. 어릴 때는 그렇게 귀엽고 말도 잘 듣던 녀석이 이제 좀 컸다고 ‘이거 해 달라, 저거 사 달라, 요건 하기 싫어, 그건 할 거야’라고 말하며 속을 뒤집습니다. 부모 속도 모르면서 말이죠. 이렇게 싸우고 나면 아이가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일단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죠. 엄마는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속상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착하게 말도 잘 듣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만 왜 이럴까 싶죠. 아이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화가 납니다. 남편은 도움이 안 됩니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요? 아이는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짜증이 났습니다. 이번에는 꼭 갖고 싶은 걸 얻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말을 안 듣습니다. 다른 집 엄마들은 사 달라고 하면 척척 잘 사주는데 우리 엄마는 왜 이럴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필살기인 울면서 짜증내기를 시작합니다. 아빠는 피곤합니다. 쉬는 날 운전까지 해야 하는데 아이는 말을 안 듣습니다. 그 덕분에 아내는 화가 났습니다. 피곤하니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맞춰줘야 되겠는데 오늘은 아이가 세게 나오니 아이한테 맞춰줍니다. 상황이 잘 해결되었는데도 아내가 째려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째려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해요.


가만히 보면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화가 납니다. 이 순간 엄마는 한숨으로 화를 승화시키고 아이는 울음으로 아빠는 투덜대면서 화를 삭입니다. 다들 그렇게 이 순간을 맞이합니다. 화가 난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것. 이것입니다. 그 순간 이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좀 더 나은 선택이 분명 있거든요.



저도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화를 낸 적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원하는 활동에는 관심이 없을 때,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않고 마음대로 할 때 저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아이들은 잠시 기가 죽을 뿐이고 오히려 제가 더 속상했습니다. 그리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며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죠.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속상함도 사라집니다. 기계처럼 화냅니다. 화내는 것에 능숙해지면 그게 아이를 대하는 기술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줘야 된다고 믿기도 했죠. 사실 그건 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니깐 화가 난 거죠. 화내면 쉽고 빠르게 해결되니까요.


내가 화를 내서 상대방이 말을 들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죠. 서로 화를 내면 그게 싸움이 됩니다. 싸움은 서로 고집을 부리고 그 고집으로 상대방을 이기려는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여행 중 길을 걷다 좁은 길에서 누군가와 마주쳤습니다. 나는 왼쪽으로 지나가려 합니다. 상대방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 순간 계속 왼쪽을 고집하며 상대방에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다면? 상대방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소한 순간에도 하나만 고집하고 그 고집으로 이기려는 마음은 누군가와 충돌할 수밖에 없죠. 싸움의 과정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상처가 반복되면 원수가 되고요. 최악의 경우 매 순간 서로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가족이 탄생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내지 않고 싸우지도 않고 참으려니 속이 타들어갑니다. 어떻게 해서 참는다고 쳐도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건 교육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요?



#1 먼저 1분만 멈춰보세요.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을 확인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우리는 말조심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늘 무심코 이야기하고 반응합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선 후회하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남 탓으로 끝냅니다. 이걸 막으려면 순간을 이해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린다는 건 주로 명상을 할 때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의 멘토라 불리는 법륜스님도 알아차리기에 대해 늘 강조합니다. 알아차린다는 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첫 단계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화가 날 때 우린 스스로를 잃어버립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처럼 당황하게 되죠.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우린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진 아무것도 못 합니다. 알아차려야 지난 기억을 더듬든지 분실신고를 하든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죠.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리를 뜨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일단 멈추고 확인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화내고 싶을 때 잠시만 멈춰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확인해보세요. 내가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게 정말 화내는 건지 1분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세요. 1분이면 됩니다.     


그다음은 순간의 선택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요. 우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좋은’ 방법보다 ‘쉬운’ 방법을 택하려 합니다. 쉽고 빠르게 상황을 반전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이 ‘화내기’, ‘짜증내기’, ‘울기’입니다. 아이 앞에서 울 순 없으니 대체로 화내거나 짜증을 내는데요. 효과는 있지만 누군가는 상처받는 방법입니다. 그럼 좋은 방법이란 뭘까요? 이걸 알아내려면 약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2 좋은 선택을 위한 준비와 계획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지혜는 평소 깊이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얻어집니다. 

아이와 싸웠던 엄마가 원한 것은 화내는 게 아니라 부모답게 아이를 가르치고 싶은 겁니다. 이 순간 좋은 선택을 하려면 화내는 것과 교육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 눈 떠야 합니다. 서천석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화내기와 교육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첫째, 준비하고 계획한 것인가? 교육은 무엇을 이용해 어떻게 가르칠지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둘째, 아이의 입장에 서 있나? 아이를 위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화는 결국 내 감정을 못 이겨 터뜨리는 것입니다. 진짜 아이의 발전을 위해 말하는 것이라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아이를 교육하기 위한 좋은 선택을 하려면 준비와 계획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필요하죠. 그러니 성급하게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계획도 없다면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먼저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좋은 선택이 가능할 겁니다. 만약 준비하고 계획한 것이 있다면 그게 아이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보고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설마, 화내는 걸 준비하고 어떻게 화낼지 계획하는 사람은 없겠죠? 지혜로운 선택은 감정싸움보다 좋은 방법을 함께 찾는 쪽으로 상황을 이끌어갑니다. 앞의 상황을 재구성해볼까요?



“엄마 나 이거 사줘”

“저거 사고 싶구나? 엄마는 다음에 사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사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

“응. 엄마가 전에 다음에 사준다고 했거든”

“아, 그랬구나. 엄마가 다른 거 생각해뒀는데 어떤 건지 한번 들어볼래?”

“정말?”


정말 이렇게 될까요? 그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에 집중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그 순간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보세요. 사소한 행복이 그 순간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아이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충분히 생각해보고 아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급한 마음을 달래 보세요. 아무리 현명해도 조급하면 실수가 생깁니다.



#3 순간의 행복을 위해


대신 그 순간을 즐겁게 만드는 활동이나 웃을 수 있는 말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또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희생시키지 마세요. 미래의 행복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지금 당장 행복한 게 진짜 행복입니다. 가족끼리 유머를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재치 있는 유머, 뜻밖의 말 한마디가 웃음으로 꽃피면 순간의 행복이 우리 안에 깃듭니다.     


여행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순간을 알아차리고 선택에 집중하고 행복을 찾는데 달려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감탄하고 웃어보세요.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눠보세요. 웃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텐트를 무너뜨리고 밥을 태우는 실수조차도 아름다운 순간의 한 조각이 되어 기억 속에 남겨질 겁니다. 낯선 공간을 헤매면서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아이와 함께 하는 삶, 아이를 이해하는 이야기들로 내 세계를 가득 채우는 일입니다. 멋진 순간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제 이야기가 절대 화를 내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때론 화를 내기도 하고 다투면서 서로 정을 쌓습니다. 화내고 사과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이어진다면 화를 내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니까요. 다만 자꾸만 화를 내고 이게 반복되면 서로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작은 지혜가 그 순간 행복하게 눈 뜨길 기대합니다.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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