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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Jun 13. 2018

아이와 여행, 다시 시작하기 :
여기 가고 싶어요!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된다.
하여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영원의 조각들.
그 아름다운 조각들을
너와 함께 새기려는 게 그리 큰 욕심일까.

-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중에서 -

   

     

봉씨네 가족은 이번 주말에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지겨웠던 겨울이 끝나고 이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이미 집 주변엔 개나리꽃이 만발해 있네요. 운전만 할 줄 알았지 여행에 통 관심 없는 봉아빠는 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살기 때문에 도움이 안 됩니다. 봉엄마라도 나서야 이번 여행이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봉엄마는 컴퓨터를 켜고 어디를 갈까 검색해봅니다. 네이봉에 ‘봄 나들이 추천’이라고 치니 생각보다 정보가 적네요. 이게 아닌가 싶어 이번엔 ‘봄 여행 추천’이라고 입력해 봅니다. 그랬더니 각종 여행정보와 블로그, 매거진들이 주르륵 나옵니다. ‘그렇치! 요거구나!’를 속으로 외치며 이것저것 관심 가는 데를 클릭합니다. 그렇게 여행지 검색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8살 난 우리 봉이가 옆에 와 묻네요. 


“엄마, 뭐해?”

“으응~ 이번 주에 여행 어디 갈까 찾고 있어”

“에이~ 나 배고픈데~”

“엄마가 이거 찾고 나서 간식 만들어 줄게”

“오옷! 그럼 빨리 해~”

“어디 보자. 봉이는 어디 가고 싶어?”

“난 몰라 엄마가 알아서 해”

“간식 먹기 싫은가 봐?”

“어디부터 찾아볼까?”


봉엄마와 봉이는 함께 여행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우연히 봄 축제를 알리는 화려한 동영상을 하나 봤는데요. 봉이가 아주 집중해서 보네요. 그러다 갑자기 외칩니다.


“엄마! 여기 가고 싶어! 여기 가자!”


#1 여행의 시작은 기대!


여러분은 여행 계획을 어떻게 세우나요? 

요즘은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들이 참 많습니다. 계획을 잘 세울 수 있게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여행 책도 있고요. 교통편과 숙소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예약 사이트도 있지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여행 계획 앱까지 있습니다. 사실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여행 블로그 같은 곳을 찾아다니면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행 도사들이 제공하는 여행 계획 비법을 전수받으면 누구나 꼼꼼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죠.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여행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면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될까요? 어른들끼리 하는 여행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땐 한 가지 더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 기대는 자동으로 생기는 거 아니냐고요? 물론 계획을 세우다 보면 기대는 생깁니다. 예전에 갔던 여행이 좋았다면 말이죠. 만약 여행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갖고 있거나, 여행 경험이 별로 없다면 어떨까요? 가기 싫은 여행에 억지로 끌려가거나 아무런 기대감 없이 떠나게 됩니다. 그럼 시작부터 여행은 꽝입니다.


#2 동기 부여의 3요소


사회심리학자 빅터 브롬의 기대 이론에 따르면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이끄는 동기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동기(Motivation) = 기대 × 수단성 × 유의성


동기, 즉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여행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동기는 기대, 수단성, 유의성이라는 요소로 구성됩니다. 기대는 다 아시죠? 수단성은 행위를 통해 보상을 얻을 주관적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갔을 때 그 여행이 즐거울 가능성이라는 거죠. 아이가 생각할 때 여행이 즐거울 가능성이 너무 낮으면 여행 가고 싶을까요? 유의성은 행위를 통해 얻은 보상에 부여하는 가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보상에 점수를 매기는 거죠. A라는 아이는 여행의 즐거움에 10점을 주는데, B라는 아이는 여행의 즐거움에 90점을 준다면 누가 더 여행 가고 싶어 할까요? 당연히 B라는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이렇듯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또는 여행을 준비하도록 이끄는 동기는 ‘여행에 대한 기대’, ‘여행이 즐거울 가능성’, ‘여행의 즐거움에 부여하는 점수’로 이루어집니다. 

이 셋 가운데 부모가 아이와 함께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요소는 ‘기대’입니다. 가능성이나 점수는 아이가 과거 경험에 비추어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요소라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는 다릅니다. 부모와 아이가 여행을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기대감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3 기대를 불러오는 상상의 마법


그럼, 기대감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기대를 가지는 건 대체로 상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이번 여행이 어떨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기대를 가지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상상도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막연한 상상은 그냥 어떨까 하고 잠시 떠올려 보고 느끼는 정도지만, 구체적인 상상은 실제로 여행을 간 것처럼 만들어 줍니다. 상상은 곧 기대감으로 연결되는데요. 막연한 기대감 또는 구체적인 기대감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여행을 간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실망하게 됩니다. 막연하다는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실제보다 더 부풀려서 기대하기도 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죠. 


반면 구체적인 기대감을 갖고 여행을 떠난 아이는 좀 더 현실적인 기대를 합니다. 동물원에선 이게 재미있을 것 같고, 놀이공원에선 저게 재미있을 것이라고 범위를 좁히는 거죠. 그럼 재미를 느낄 확률이 높아집니다. 구체적인 기대감은 여행이 끝날 때 더 빛을 발하는데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아이보다 훨씬 자세히 여행을 평가하도록 이끕니다. 여행 가운데 이건 이래서 좋았고, 저건 저래서 별로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요. 막연함에 대한 반응은 ‘좋다’, ‘싫다’로 나뉘지만, 구체성은 하나하나 짚어서 항목별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설명하도록 만들어주거든요. 그러니 여행을 준비할 때 아이가 구체적인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좋습니다.



#4 구체적 상상과 가상 여행


구체적인 기대감을 얻으려면 이번 여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봐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상.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저는 아이를 창의력 학원이나 상상력 학원 같은 데 보내기보다 생활 속에서 꾸준히 상상하도록 이끄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가상여행을 떠나보세요. 딱 10분 정도만 진짜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아이와 함께 상상해보는 거죠. 일부러 긴 시간을 내기는 힘드니 아이와 놀 때 놀이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안방에서 출발해 작은방으로, 작은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부엌으로 옮겨 다니며 가상 여행을 하는 거죠. 방마다 여행지 사진을 붙여두면 더 좋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여행 갈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이 옵니다. 아이와 함께 여기서는 뭐하고 놀지, 저기서는 어떻게 놀지 미리 정해두면 실제로 여행지에서 할 일 없이 헤매는 상황도 피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아이도 이렇게 몇 번 놀이처럼 해보면 이번 여행을 기대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럼, 이제 아까 그 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귀염둥이 봉이가 엄마한테 ‘여기 가고 싶어! 여기 가자!’라고 외친 건 축제 동영상을 보고 상상했기 때문이겠죠? 이 순간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마 ‘꿈 깨~ 저건 그냥 홍보 영상일 뿐이야. 현실은 피곤한 거야.’라며 핀잔을 주는 부모는 없겠죠?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내뱉으면 ‘동심 파괴자’ 내지는 ‘상상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게 될 겁니다. 아이가 상상하는 순간 그 상상이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 축제에 가면 뭐하고 싶어?’, ‘어떤 게 제일 재미있어 보여?’, ‘저기 갈려면 뭐 타고 가야 될까?’ 같은 질문은 막연함을 구체적인 생각과 기대로 바꿔줍니다. 그렇게 질문으로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고, 가상여행도 미리 떠나 보세요. 이런 활동을 거친 다음 아이와 함께 여행 일정을 짜고 준비물을 챙긴다면 훨씬 쉽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기대하세요! 

다가오는 날짜를 헤아리며 아이와 함께 설렘을 함께 해보세요. 유명한 장소에 멋진 차를 타고 효율적인 계획에 따라 손쉽게 입성한다고 훌륭한 여행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마음껏 상상한 다음 두근거리는 마음, 설레는 마음을 나눠가지며 여행의 첫 발을 내딛을 때 비로소 멋진 여행, 특별한 여행이 시작됩니다. 


[봉쌤의 Tip]

만약 아이가 적극적이고 여행지를 조사할 수 있을 만큼 컸다면 집에 가족 여행사를 하나 차려보세요. (그렇다고 진짜 창업에 나서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OO투어’라고 이름을 짓고 블로그도 하나 만들어보세요. 이 여행사는 아이가 운영하는 여행사인데요. 진짜 여행사처럼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발표하도록 하는 거죠. 아이가 이번 여행을 이끌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게 이 활동의 목표입니다. 약간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적극적으로 나서 여행을 계획하고 이끌게 되면 구체적인 기대감은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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