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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Jun 27. 2018

호기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저건 뭐예요?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자~ 다 왔다~”

“에이~ 또 박물관이야?”

“여기가 얼마나 유명한 박물관인데~~”

“왜 유명해?”

“음, 그건 말이지.. 빨리 가자. 문 닫을지도 몰라”

 (박물관 입장 후)

“이거 봐~ 신기하지? 옛날 사람들이 사냥할 때 쓴 거래.”

“그냥 돌이잖아.”

“그냥 돌이 아니고 이런 걸 석기라고 하는데..”

“(어딘가로 달려가는 아이) 오! 저건 이상하게 생겼다”

“어디가~ 박물관에서 뛰면 안 돼”

“엄마 이리 와봐. 저거 뭐야?”

“이거부터 봐야지! 엄마 화낸다.”



#1 아이와 박물관에 가면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가끔 어떤 의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뭐라도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말이죠. 그래야 부모 노릇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요. 특히 박물관 같은데 가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총동원해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근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나도 잘 모르는 박물관인데 아이에게 설명해주려니 진땀이 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조사한 내용을 떠올리거나 유물 옆에 설명되어 있는 글을 슬쩍 읽어봐도 역부족일 때가 많아요. 운이 좋아서 해설하시는 분을 만나 설명을 들으면 아이가 지루하다고 징징댑니다. 어느 순간 보면 아이는 사라지고 어른들만 남아 고개를 끄덕이죠.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어떻게든 설명해줘야 할까요? 그게 아니면 아예 내버려두고 무시해야 할까요? 그냥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즐기세요. 내가 박물관을 먼저 즐기기 시작하면 아이도 박물관을 즐기게 됩니다. 사실 어른들도 박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박물관은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곳이라는 경험을 계속 해왔으니까요. 어른부터 재미가 없는데 아이가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박물관을 돌아보다 나에게 인상 깊은 것들을 찾아 자세히 살펴보세요. 나부터 흥미를 느껴야 박물관이 달리 보이게 됩니다.



#2 시작은 언제나 관찰!


첫 시작은 관찰입니다. 혹시 Frog라는 기업을 아시나요? Frog는 애플, 아디다스, 디즈니 디자인의 원조이자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최고책임연구원인 얀 칩체이스의 책 <관찰의 힘>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는데요.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서평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얀 칩체이스의 주요 업무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출퇴근길의 풍경, 휴대전화를 받는 모습, 주머니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일같이, 습관이 되어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모습들을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집요하게 관찰한다. 거기에 혁신의 단서가 있고, 그 관찰의 결과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사업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여태껏 해온 ‘관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설명하고, ‘관찰’이야말로 재미있으면서도 성과가 확실한 연구 방법임을 지적한다. 


무엇이든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게 되고, 그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움이 얻어집니다. 


그러니 일단 관찰부터 하고 볼 일이죠. 내가 알고 싶은 것, 내가 궁금한 것을 관찰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돌아보다가 이번엔 아이를 한번 관찰해보세요. 내 아이는 무엇을 관찰하고 있고 어떤 것에 흥미를 두고 있나요? 아이는 박물관을 순서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끌리는 대로 가서 보게 되고 신기한 게 있으면 조금 오래 보게 됩니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그때 비로소 물어볼 겁니다. ‘저건 뭐예요?’ 라고요. 지금 이 순간이 배움의 시작입니다. 아이가 꼬마 연구가가 되는 순간이고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아이는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길게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됩니다. 아이가 알고 싶을 때 호기심을 갖고 물어볼 때 반응해주는 게 핵심인 거죠. 물론 아이가 좀 자라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체계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그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3 가장 중요한 것 = 연구하는 자세


핵심부터 말해보겠습니다. 지식을 전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그건 바로 아이와 함께 연구하는 것입니다. 로봇공학자로 유명한 데니스홍 UCLA 교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아들이 아빠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아빠, 냉장고에 불이 켜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돼?"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대답 대신 데니스홍 교수는 아들과 함께 실험을 했습니다.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고 냉장고 안에 넣은 거죠. 그런 다음 어떻게 했을까요? 그렇죠. 같이 그 영상을 보며 냉장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본 거죠. 당연히 불이 꺼졌겠죠? 이건 왜 그럴까? 저건 왜 그렇지? 요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저건 또 어쩌다 저렇게 됐어? 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같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아이가 뭔가를 물어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순간 답을 해주기보다 다음 2가지를 떠올려보세요.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① 질문하기
② 함께 알아보기


질문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들죠? 

아이가 뭔가를 물어봤을 때 답을 자꾸 해주면 나중에는 결국 답만 찾게 됩니다. 답만 나오면 끝이니까 더 이상 생각도 안 하게 되고 자꾸 그것만 요구하는 거죠. 하지만 아이가 물어봤을 때 역으로 질문을 하면 아이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는 거고요. 처음 생긴 호기심이 다른 새로운 호기심으로 전환되도록 이끌어주는 게 좋습니다. 아는 게 있다고 너무 뽐내지 마세요. 어차피 지식은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시대거든요. 



만약 모르는 거라면 잘 모르지만 같이 한번 알아보자는 자세가 필요해요.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이는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거든요. 이게 처음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궁금한 게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 알게 되면 그때부턴 쉽습니다. 어른이 설명해주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궁금한 걸 해결해나가거든요. 그럼 그때부터 박물관은 신기한 것들이 많은 곳. 연구할 거리가 널려 있는 재미있는 곳이 됩니다.       


만약 아이가 호기심도 없고 연구 따위엔 관심도 없다면? 박물관 입구로 달려 들어가서 출구로 바로 나오는 아이라면? 좀 기다려줘야 합니다. 박물관을 처음 가 본 아이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처음엔 대부분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거든요. 그런데 여러 차례 박물관에 들리면서 억지로 설명을 듣거나 재미없는 경험을 수차례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이땐 박물관에 대한 흥미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자유롭게 박물관을 돌아보되 예의를 지키도록 이끌어주세요. 만약 그 거부감이 너무 심해서 들어가는 것조차 어렵다면 그냥 밖에서 노는 게 더 낫습니다. 놀다가 지쳐 물이라도 마시러 박물관에 들어가면 좋은 거고요. 그러다 뭐라도 하나 보고 나오면 더 좋은 거죠.       



#4 내가 만약 아이라면


이건 박물관이 아니라 어떤 여행지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아이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은 함께 가는 이들을 배려해야 즐거워집니다. 아이의 입장은 무시하고 어른 생각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기는 일에만 집착하면 다 같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저도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온갖 시도를 다해봤지만 그때마다 좌절을 경험했죠.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더군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권위를 내세워 혼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달래기도 했습니다. 잠시 효과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한계에 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알게 된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답이 나온다는 겁니다. 내가 만약 아이라면 어떨까? 여기서부터 출발하니 어려웠던 문제도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원할까요? 

잠시 아이가 되어 볼까요? 어른을 따라 박물관이라는 곳에 갔어요. 박물관이 처음이다 보니 여기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건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들어가 보니 신기한 게 참 많아요. 모양도 신기하고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계속 나와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이때 누가 이야기해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아요. 근데 너무 길게는 말고요. 뭐냐고 한 마디로 물었는데 열 마디 스무 마디로 대답하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 재미가 없어요. 막 지나가고 싶어요. 저기 신기한 게 있어요. 되게 이상하게 생겼어요. 조개 같은데 구멍이 뚫린 것도 있고 주전자에 이상한 동물을 달려 있는 것도 있어요. 어디에 쓰는 거죠? 저기도 신기한 게 있네요. 신나서 달려가 봤는데 뛰어다닌다고 혼났어요. 기분을 잡치고 나니 재미없어요. 그냥 이렇게 보는 것 말고 직접 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체험하는데 갔더니 재미있을만한 게 보여요. 해보니까 생각보다 재밌어요. 다른 것도 해볼래요.           



#5 새로운 교육의 목표


그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 맞춰주기만 하라는 이야기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지 무조건 다 들어주라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어른들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물관을 지식을 얻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신기한 걸 살펴보고 연구해보는 곳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아는 게 있다면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해주고요. 잘 모른다면 같이 한번 알아보는 거죠. 안내판도 같이 읽어보고 이건 뭘까? 저건 뭘까? 고민도 함께 하다 보면 이게 재미있는 놀이처럼 될 수도 있거든요. 아는 건 퀴즈로도 내보고 모르는 건 미션으로 수행하면서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즐겨보세요. 생각보다 박물관이 재미있는 곳이라 걸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성공입니다.       


결국 교육의 목표는 연구하는 방법과 태도를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지식을 전해주고 그 지식을 확인하는 작업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건 낡은 생각입니다. 시험에 익숙한 우리 세대의 착각인 거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또 이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습니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 

잊지 마세요.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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