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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Jul 11. 2018

아이를 믿으면 보이는 풍경 :
정말 해도 돼요?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믿음이 그것을 실현시킨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저기 매표소가 보이네.”

“엄마, 내가 표 사도 돼?”

“응?”

“나도 해보고 싶어. 표 사는 거”

“그럼, 사와 볼래?”

“정말 해도 돼?”

“그래. 돈 줄 테니까 엄마, 아빠 표도 같이 사와”

“응. 응”

“잘할 수 있지?”

“응. 응”

“대답이 너무 쉬운 게 어째 불안하다?!”

“응. 응. 빨리 돈이나 줘”     



#1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


아이들과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이니 당연히 아이들도 저를 모르고 저도 아이들을 모릅니다. 서로 잘 모르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친해지고부터는 슬슬 불안감이 밀려오네요. 아이들 행동 하나하나가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저러다 혹시 다치면 어떻게 하지? 싸우면 어쩌지? 저걸 할 수 있을까? 애들한테 이건 너무 힘들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막 떠오르네요. 결국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줍니다. 아이들 여럿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 해주려니 결국 녹초가 되어버렸죠. 몸도 마음도 지쳐서 나중엔 아이들하고 여행 같은 건 하지 말자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지쳐 있는 저에게 캔 커피 하나를 선물이라면서 주더라고요. 휴게소에서 샀다면서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캔 커피를 마시는데 문득 이건 어떻게 사 왔을까 싶었어요. 그 이후로 아이들의 행동을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요. 해주던 걸 관두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죠. 안전띠 매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물건을 사거나 어딘가로 찾아가는 것, 다툼이 일어난 후 자기들끼리 화해하는 것까지. 제가 아이들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도저히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해내버리는 아이도 있어요.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러 대형마트에 갔을 때였습니다. 점심 먹고 자유 시간을 잠시 가졌는데요. 돈 내고 타는 4D 입체영상 앞에 아이들이 줄을 섰죠. 근데 한 아이는 이미 돈을 다 써버렸답니다.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 입체영상을 관리하는 주인 분과 협상을 시도하더라고요. 자기가 4D 안경을 손님들에게 나눠줄 테니까 1번만 태워 달래요. 주인분이 한참을 웃으시더니 오케이 하셨죠. 



#2 아이를 믿는다는 것, 어렵지만 뿌듯한 일


물론 아이들마다 이런 능력의 차이는 심합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으니까요. 어떤 아이는 협상은커녕 돈도 제대로 못 내서 당황하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정서적으로 지지받은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믿고 옆에서 기다려주면 결국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믿지 못해 이것저것 다 해주다 보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지요.     


그런데 기다려주고 지켜보라고 하면 오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지켜보라는 게 완전히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뭘 하든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자세로 무시하면 방치하는 게 되거든요. 이건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기다려주고 지켜본다는 건 아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살피는 겁니다. 약간의 도움으로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처음엔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도움의 양을 조금씩 줄여나가면 결국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겠죠. 


아이를 믿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믿고 끝까지 나아가면 아이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뿌듯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예민합니다. 지켜보는 어른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아이도 덩달아 불안해집니다. 잘할 수 있는 것도 실패하게 되고 계속 그런 경험이 쌓이면 실패를 무서워하게 되죠. 어른들의 표정을 바꿔야 합니다.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면 아이도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믿기로 결심했다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응원해주세요.      



#3 믿음을 보여주는 시선과 표정


로젠탈 효과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심리학자인 로버트 로젠탈은 레노어 제이콥슨이라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함께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18개 학급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지능력 평가를 실시했는데요. 그 결과를 토대로 상위 20%의 학생을 뽑아 교사들에게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머리 좋은 아이들을 선발해 교사들에게 알려준 거죠. 그 후 1년 뒤에 다시 평가를 실시했는데 선발된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향상되었고, 성적도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사들에게 알려준 그 상위 20% 아이들은 평가결과와 관계없이 무작위로 선발된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교사들의 인식이 아이들의 인지능력과 성적에 영향을 준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능력이 달라집니다. 믿음을 갖고 바라보며 지지해주는 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 법칙』이라는 책을 보면 로젠탈의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더 소개되어 있는데요. 이 실험에선 교사가 학생들을 평가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녹화해 학생들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단, 소리는 나오지 않도록 해서 실제 교사가 뭐라고 하는지는 알지 못하게 했죠.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이 영상만 보고도 금방 교사가 어떤 평가를 하는지 알아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만 보고도 긍정적인 평가인지 부정적인 평가인 안다는 거죠. 저도 아이들과 여행을 하면서 이걸 느꼈습니다.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아이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분위기도 달라진다는 걸 자주 직감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밝은 표정을 준비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거운 분위기로 여행을 다녀오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4 믿음을 표현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가짐


밝은 표정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여기에 하나 더. 아이에게 믿음을 표현하는 말과 행동을 시작해보세요.

‘나는 널 믿어’라는 말 한마디는 아이들의 눈빛을 달라지게 합니다. 믿는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면 아이의 행동도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할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관계의 터닝 포인트가 만들어집니다.     


아이에게 믿음이 필요한 순간.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솔직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말로만 널 믿는다고 외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거죠. 솔직함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야 그걸 온전히 아이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시작하면 끝내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이에게 믿음을 표현하는 일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널 믿고 있다는 걸 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아이는 더 진심에 민감합니다. 어른의 마음가짐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믿음이 필요한 순간, 우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다음 솔직하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사랑을 담아 다가서면 좋겠습니다.



#5 아이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또 어떤 반응을 보여도 ‘내가 널 믿었는데, 이럴 수 있니?’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믿기로 했다면 그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 믿는다더니 그 믿음을 무기로 상처 줄 생각인가요? 그게 진심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아이가 믿음을 져버렸다고 해도 끝까지 믿어주는 것. 결국 마침내 믿고 있음을 아이가 스스로 믿게 될 때 진짜 믿음이 완성됩니다.      


가끔 내 아이는 아무래도 못 믿겠다는 분을 만납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한데 믿는다는 게 꿈 같이 들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믿어야 합니다. 믿고 아이에게 맡겨야 할 때는 반드시 옵니다. 어떻게 보면 부모 자식 간에 믿지 못한다는 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믿어야 한다면 그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아이들을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들이 믿을만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믿어야 그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가 성장하고 아이도 부모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가능성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고,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일입니다.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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