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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May 23. 2018

다음 역은 아이와 고생하는 여행 : 이것도 못 해?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사람의 선택에 있다.

- 조지 엘리엇 -



“아빠, 같이 가아아~”

“얼른 와라~ 늦었어~”

“너무 힘들어. 여기 왜 왔어!”

“야. 이것도 못 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아이 몰라. 나 이제 안 가!”

“맘대로 해!! 그럼!”     


여기는 단양, 온달산성에 오르는 길입니다. 산성은 산꼭대기쯤에 있겠죠?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힘든데요. 귀여운 여자 아이가 짜증을 내면서 올라옵니다. 아빠는 성큼성큼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며 재촉합니다. 아빠의 말 한마디에 결국 아이는 안 간다고 선언해버리네요. 좀 달래다 지친 아빠는 그럼 마음대로 해라며 아이를 두고 올라가버립니다. 아이는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옆에 있는 키 작은 나무의 잎을 손으로 뜯어댑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짜증이 사라진 아이는 이제 무섭습니다.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아빠 같이 가’를 외칩니다. 아마 처음엔 이 아빠와 딸도 서로 손을 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올라왔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여행은 고생스럽습니다. 어딜 가든 집 밖으로 나서는 활동은 고생스럽기 마련이죠. 게다가 여행은 대체로 처음 가보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기 때문에 고생을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여행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고생이야 덜하겠지만 그럼 여행이 재미가 없죠. 다 아는 걸 그대로 실행하는 것만큼 김새는 일도 없습니다.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데요. 이것 참. ‘적당히’라는 말만큼 어려운 게 또 없지요. 적당히 알아보고 적당히 여행하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소리가 됩니다. ‘적당히’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도에 알맞게’라는 뜻과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라는 뜻이 있습니다. 적당한 준비와 계획이란 얼마나 치밀하게 했고 얼마나 허술하게 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맞는 준비와 계획을 요령 있게 세우는 거지요.       


#1 아이를 위한 준비와 요령


이건 아이 입장에서 이번 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는데서 출발합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 미리 가상 여행을 떠나보세요. 마음속으로 여행의 장면을 그려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아이의 입장이 되어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거죠.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런 일을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전해 볼만한 어려움이라면 그 상황에 대비만 하면 됩니다. 대비책만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죠.     



저도 가끔 아이들과 함께 온달산성에 오르곤 합니다. 30분 정도 걸리는 산행길이지만 꽤 힘듭니다. 그래서 한여름이나 한겨울을 피해서 일정을 잡는데요. 그런다고 갑자기 산행이 쉬워지는 건 아니더군요. 온달산성을 보려면 올라가긴 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덜 힘들게 올라갈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제 입장에선 그냥 중간에 몇 번 쉬었다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랬더니 아이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릅니다. 저만 연약(?)한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나쁜 선생님이 되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산행이 힘들기도 하지만 무척 지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루함을 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봤죠. 힘들고 지루한 아이들에게 몇 가지 미션을 주었습니다. 30분을 10분씩 나눠 3번의 미션을 주었더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온달산성 산행이 놀이처럼 여겨진 아이들은 힘든지도 모르게 올라갔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션을 주었다는 점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는 건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아이에게 힘든 여행을 즐겁게 즐기는 요령을 알려주는 게 목표지요. 이렇게 대비책을 세우고 그 방법으로 여행을 즐겁게 즐기도록 이끌 수 있다면 고생하더라도 뿌듯한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릅니다. 조금 지나니 숨이 찹니다.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어른도 힘든데 아이는 당연히 힘들겠죠. 아이는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순간, 힘든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려보세요. 마음을 헤아리는데 필요한 건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시나요? 사랑은 표현이라고 하죠? 제대로 표현해야 오해가 안 생깁니다. 습관적인 대답, 그냥 기분대로 툭 내뱉는 한 마디는 상황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마음을 헤아려 공감하는 한 마디, 긍정적인 격려가 힘을 줍니다. 이 순간을 알아차렸다면 분명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그렇죠. 즐기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행복하게 만드는 거죠. 이건 어떻게 하냐고요? 그건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약간의 팁이 있다면 미래보다 지금 당장만 생각하세요. 지금 당장 웃을 수 있고 바로 즐거울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앞의 상황을 다시 구성해보죠.               


“아빠, 같이 가아아~”

“그래. 올라가는 게 힘들지?”

“너무 힘들어. 여기 왜 왔어!”

“그럼, 우리 저기 계단부터는 가위바위보 해서 올라갈까?”

“가위바위보?”

“응. 이기는 사람만 한 칸씩 올라가기 어때?”

“좋아!”



#2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는 교육     


이렇게 힘든 순간도 ‘아빠와 함께라면 즐겁다’라는 사실이 아이에게 힘이 됩니다. 아이가 힘을 내고 아빠도 즐거울 수 있다면 여행이 달라지겠죠? 힘들지만 즐거운 여행, 뿌듯한 여행이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이렇게 이겨낸다는 걸 아빠에게 배우게 됩니다. 만약 아이에게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면? 아빠에게 배운 대로 즐겁게 이겨내려고 할 겁니다. 그런 아이의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모여들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순간의 선택은 여행을 달라지게 만들고 아이의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선택의 과정을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말로 설명하고 장황하게 이야기한다고 상황이 달라질까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화가 나고 결국은 감정적으로 끝이 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즐겁게 이겨내는 걸 선택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야 비로소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게 쉽냐고요?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쉬운 방법이 아니라 좋은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선택은 좋은 상황으로 우리를 이끄는 선택입니다. 좋은 상황은 우리가 좋아하는 상황. 즉 우리가 원하는 상황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쓴 <넛지>에는 인간의 두 가지 인식 체계로 자동 시스템과 숙고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자동 시스템은 말 그대로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사고방식을 말하고 숙고 시스템은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고방식이죠. 우리는 평소에 본능적이거나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 자동 시스템을 이용해 선택합니다. 반면 문제를 풀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숙고 시스템을 이용하지요. 좋은 선택을 하려면 처음엔 자동 시스템보다는 숙고 시스템을 이용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선택할 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숙고 시스템으로 좋은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자동 시스템으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3 선택과 지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불편하고 힘든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른들의 여행에 따라가니 어딜 가더라도 아이에겐 힘들고 벅찰 수밖에 없지요. 아이가 힘들면 어른도 힘들어지고요. 그렇지만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이 죽도록 고생하는 여행이 되느냐 힘들지만 뿌듯한 여행이 되느냐를 좌우하는 건 ‘한 순간의 선택’과 ‘어려움을 즐겁게 이겨낼 만한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B는 탄생(Birth)을, D는 죽음(Death)을, C는 선택(Choice)을 의미하는데요. 다시 말해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라는 말이죠. 인생은 계속된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어떤 선택을 얼마나 지혜롭게 하느냐가 인생을 달라지게 합니다.      


우리가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건 다른 쪽을 선택했을 때 얻는 것들을 포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막연하게 추측하고 기대합니다. 아마도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 추측이 우리의 선택을 망설이게 합니다. ‘아이도 나도 즐겁고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편하고 동시에 손쉽고 간편한 최고의 여행 방법’이라는 건 없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선택해도 즐거운 대신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편한 대신 귀찮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하는 문제만 남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삶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는데요. ‘결국 우린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무엇이 더 행복해지는 선택인지를 고민하면 됩니다. 몸이 힘들거나 귀찮더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해 보세요. 알긴 알겠는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아.’라는 상황이라면 두려운 겁니다. 잘하고 싶은데 실패가 두렵습니다. 실패는 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해봐야 아는 거고요. 미리 두려워하면 기회도 없이 그냥 실패입니다. 그럴 바엔 실패하더라도 한번 선택해보는 게 좋겠죠?  




작가의 책

http://aladin.kr/p/xf1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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