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로 살아남은 기업들

몰스킨, 파버카스텔, 이토야,모나미의 고객경험 혁신

필기구는 사양산업일까?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서 이어져오는 것은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없습니다. 독일과 스위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대신 손글씨를 쓰고 그림을 지도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지만, 노트와 연필 시장에서 혁신하고 있는 기업을 소개합니다.


필기구 시장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1761년에 창업한 ‘파버카스텔’입니다. 연필 제조회사 파버카스텔은 칼 생산업체 헹켈 등과 함께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의 상징입니다. 연필과 색연필을 주력제품으로 해서 3,000여 종의 필기구를 생산하고 있고, 전 세계 120개 국가에서 연간 1조 원의 필기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연필의 역사는 파버카스텔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필심 B와 H는 경도에 따라 굵기를 결정되고, 전 세계 연필 길이 표준은 18㎝입니다. 이것은 파버카스텔이 세계 최초로 규격화하면서 정해진 것입니다. 동그란 연필이 굴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6각 연필을 고안하고,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처음 사용한 것도 파버카스텔입니다.


파버카스텔은 괴테, 헤르만 헤세, 빈센트 반 고흐, 존 스타인벡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필기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연필은 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단단하면서도 매우 부드러워. 목공용 연필보다 색감도 훨씬 좋지. 언젠가 재봉사 소녀를 그릴 때 이 연필을 썼는데 석판화 같은 느낌이 정말 만족스러웠어. 게다가 한 자루에 20센트밖에 안 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은 “지금껏 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 더 비싸지만 부드럽고 잘 부러지지 않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연필에 브랜드를 도입한 것도 파버카스텔이 처음입니다. 1905년에 파버카스텔 연필의 몸체부 색상인 짙은 녹색을 배경으로 로고를 만들었고, 현재의 ‘연필 기사’라고 불리는 파버카스텔의 로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파버카스텔 연필을 가진 기사가 다른 연필을 가진 기사를 압도한다는 중세 마상전투를 모티브로 한 로고였고, 조금씩 변화돼 양식화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싼 연필은 한 자루에 40만 원이 넘을 정도로 연필과 관련한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파버카스텔은 연필 대신 디지털로도 확장 중에 있습니다. 스테들러 디지털 펜 990 시리즈는 종이에 별도의 수신기를 끼운 뒤 글씨를 쓰면 작성한 문서를 파일로 전환해 컴퓨터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 교육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출시했습니다. 스케치북 대신 디지털 기기로 화면을 옮겨왔지만 나무 펜으로 펜대를 만들어 연필 느낌을 살렸습니다. IT 기기처럼 완전히 새로운 제품은 아니지만 파버카스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쓰이지 않은 책, 몰스킨

연필에 파버카스텔이 있다면 노트에는 몰스킨이 있습니다. 몰스킨은 2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작은 제본업체가 문방구에 납품했던 수첩입니다. 인조가죽 수첩이란 뜻의 ‘레 까르네 몰스킨(Les Carnets Moleskines)’으로 불렸고, 1986년 프랑스 상점이 문을 받으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이탈리아 작은 출판사 '모도 앤 모도(Modo & Modo)'가 '몰스킨'을 상표 등록을 하고 다시 대중 앞에 등장시켰습니다.


모도 앤 모도는 몰스킨의 스토리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유명 예술가와 사상가가 즐겨 사용한 전설의 노트북으로 브랜딩을 했습니다. 속지를 양가죽으로 감싸고, 페이퍼 밴드로 봉인하며, 미색의 내지 디자인과 뒤표지 안쪽에 주머니를 넣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몰스킨은 ‘쓰이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을 콘셉트로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세계 각국에서 매년 1,000만 원 이상 판매되고 있습니다.


몰스킨은 겉으로 보기엔 양장으로 만든 책처럼 보이지만 열어보면 아무 내용도 없는 수첩입니다. 그러나 ‘수첩이 아니라 아직 쓰지 않은 책’이라고 합니다. 헤밍웨이도 썼고 피카소도 썼다고 해서 하나쯤은 가져보고 싶게 만듭니다. 몰스킨은 단순히 쓸 만한 노트가 아니라 예술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몰스킨의 가치입니다. 나를 표현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치!. 그래서 수첩이 아니라 ‘당신의 창조성이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는 콘셉트를 공유하기 위해 문구점이 아닌 서점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기능적 가치 그 이상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몰스킨 노트에는 제품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들과 상징들이 숨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감정과 상징을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써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내가 되고자 하는 미래의 이상형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기업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브랜드에 다양한 감성적 요인들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몰스킨은 여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자주 선보이기도 합니다. 국내의 경우 스타벅스 다이어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해외에서는 화제의 인물이나 캐릭터들과 협업을 합니다. 호빗 에디션, 도라에몽 에디션, 배트맨 에디션, 스누피 에디션, 스타워즈 에디션, 미키 마우스 에디션, 해리포터 에디션 등 계속해서 구매하고 싶은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출시하는 것입니다.


제품과 서비스는 세상에 차고 넘칩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제품에는 가성비를 따지겠지만, 나를 위한 단 하나를 구매할 때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기쁨을 구매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은 사치’와는 다릅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나에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2만 원짜리 국민볼펜, 모나미의 도전

유럽에 '파버카스텔'과 '몰스킨'이 있다면 국내에는 '모나미'가 있습니다. 물론 모나미는 지금껏 모두가 사용하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흔한 저가 브랜드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모나미의 모태는 1960년 세워진 광신화학공업사이고 1963년도에 '볼펜 153'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필기 용품, 미술 용품, 선물 용품 등 다양한 상품군을 제조 판매하고 있지만 필기구 사업 자체는 한계를 맞고 있습니다. 모나미의 매출액은 2011년도 2818억 원을 정점으로 연평균 6%씩 매출이 감소 중에 있습니다. 신사업으로 추진한 학원 운영 사업, 화장품 제조 및 판매 사업, 아마존 입점을 통한 해외 판매 강화 등의 부분에서도 성과를 만들고 있지 못합니다.


매출에 기여하는 부분은 적지만 '경험'을 테마로 한 오프라인 매장의 반응은 좋습니다. 모나미는 본사가 있는 용인시 수지에 2017년에 ‘스토리연구소’를 오픈한 후, 2019년에는 인사동점을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도에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 '워크룸'을 오픈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점과 한남동 팝업스토어에서 진행된 '잉크랩(Ink LAB)'은 소비자가 15가지 잉크 중 원하는 색상을 골라 혼합한 후 나만의 만년필 잉크를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마음에 드는 색이 만들어지면 나만의 잉크를 현장에서 제작해주고, 잉크 기록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추후 재구매도 가능합니다. 매장 한편에서는 모나미 대표 제품인 153 볼펜을 원하는 대로 조립해 DIY(Do It Yourself) 펜을 만들 수 있고, 만년필과 고급 필기구 제품에 원하는 문구를 각인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나미 제품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캘리그래피 등의 수업을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됩니다. 이런 것은 디지털에서 주지 못하는  감성입니다. 브랜드가 경험 지향적인 소비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게 됩니다.


모나미의 오프라인 체험 매장은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취미 플랫폼 업체 ‘하비풀’과 손잡고 모나미 제품과 온라인 영상 수업을 결합해 판매하는 실험에 나선 것입니다. 캘리그래피(손글씨 예술) 등 여러 분야 유명 작가가 진행하는 3시간 분량의 드로잉 수업, 소품 꾸미기 등 집콕 아이템을 선보이면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영상 수업 상품을 구매하면 언제든 반복해서 영상을 보고 전문가를 따라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콘텐츠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모나미는 고급화 전략과 함께 다른 기업들과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도 활발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주 소비층 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재미와 특별함을 주면서 제품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인데요. ‘모나미 153’ 볼펜을 스타벅스 코리아 20주년 기념 한정 볼펜으로 판매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삼성전자와는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갤럭시 S21과 콜라보한 터치펜 ‘모나미 153S펜’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상품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판매하는 이토야

오프라인 체험 매장인 '모나미 스토어'의 미래는 일본의 '이토야(いとう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방구를 의미하는 '스테이셔너리(Stationery)’ 간판을 내걸고 1904년도에 창업한 이토야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백화점 형식의 문구·사무용품 전문점입니다. 본점에 해당하는 긴자 이토야 본점을 비롯하여 10개의 지점과 여러 개의 콘셉트 스토어(Concept store),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매장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긴자의 이토야는 본점인 G.Itoya와, 길 건너편 고급 필기구 전문 매장인 K.Itoya 매장으로 구분되며 거대한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문구용품 및 생활 잡화용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G.Itoya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K.Itoya는 ‘어른들의 비밀 아지트’를 콘셉트를 갖고 있지만, 이토야에서 판매하는 상품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쉽게 보고 만날 수 있는 상품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상품을 전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엽서나 편지지를 고른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직접 우표를 붙여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평범한 종이 하나도 작품을 전시하듯 진열되어 있습니다. 선반에 가득 쌓여 있는 종이는 구매를 위해서 기다리는 상품이지만, 작품처럼 전시된 종이는 경험이 되고 즐길거리가 됩니다. 판매를 위해 전시된 쇼윈도의 상품이 아니라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향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판매하는 상품 자체에는 차이가 없지만 리테일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야는 창조적인 시간을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하기 위한 문구를 제안하며, 물건을 파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즐거움, 새로움, 아름다움 등을 그 시대의 가치 기준에 맞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토야에서는 좋은 물건뿐만 아니라, 좋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긴자 본점 1층에서 스무디를 파는 드링크 바, 그리고 가장 위층은 12층에서는 '이토야'의 농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채소로 만든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는 1,000가지가 넘는 펜과 잉크 옵션으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펜과 노트북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부가가치에 따른 경제가 원자재 경제에서 → 상품경제로 → 그리고 서비스 경제에서 → 경험 경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조업에서 서비스 경제로 전환이 되면 고객 경험이 중요해집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원재료인 커피콩은 2~3센트에 불과하지만,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오렌지색 조명과 초록색 로고, 미국식 카페테리아 등의 경험요소가 추가되면 값이 가격은 5천 원 이상이 됩니다.  인터넷에서는 천 원이라도 싸게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는 5천 원이 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합니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커피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서 오는 경험과 만족감 때문입니다.


훌륭한 브랜드나 성공한 기업을 분석해 보면 모든 사업 영역에서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단순한 구호나 이벤트가 아닙니다. 조직의 모든 역량을 하나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고객이 최고의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실행하는 것이 고객 경험입니다.

몰스킨, 파버카스텔, 이토야, 모나미의 고객 경험 혁신
이전 04화 고객 경험 제공을 위한 맥락(Context)적 사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