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 콘텍스트
코로나 이후의 비즈니스 키워드는 '경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사용자 경험과 브랜드 경험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상품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징인 품질, 디자인, 성능 등과 같은 것을 사용자 경험이라 할 수 있고, 브랜드 전반에 걸쳐진 공통적 맥락을 브랜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품과 서비스는 브랜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브랜드 경험이 사용자 경험보다 더 넓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탐색하고 구매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접점에서 브랜드를 느끼고 인식하고 기억합니다. 브랜드 경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반드시 어떠한 물리적인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체험매장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을 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워치와 노트북 등을 연계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의 경계는 흐릿해지는 반면 경험은 통합되는 중입니다.
통합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맥락(Context)'입니다. 소비자의 구매, 브랜드 충성도 형성, 나아가 브랜드 추천까지를 목표로 한다면, 단순한 재미와 흥미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 콘텍스트가 필요합니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와 경험은 상황마다 다르고 주관적입니다. 이런 순간순간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고객 경험은 실패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광고 캠페인에서 신발을 판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이키 신발에 포함되어 있는 기능들도 떠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이키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엄청난 신발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가 바로 콘텍스트입니다. 나이키는 신발을 판매하지 않고, 스포츠를 팔고 있습니다. 스포츠 영웅들을 존경하며 스포츠라는 행위의 놀라움과 숭고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은 그 스포츠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속해있는 작은 부속품일 뿐입니다.
스타벅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벅스는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라는 문화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커피맛만 따진다면 스타벅스보다 좋은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들은 커피맛이 아닌 공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타벅스의 커피 원재료인 커피콩은 2~3센트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오렌지색 조명, 초록색 로고, 미국식 카페테리아 등의 경험요소가 추가되면 가격은 5,000원을 훌쩍 넘어섭니다. 온라인에서는 1,000원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몇 시간씩 가격비교를 해보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5,000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에서 오는 경험과 만족감 때문입니다.
콘텍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개념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소비자의 시간 또는 상황 정보를 토대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개념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남겨놓은 흔적에서 인사이트를 찾아내고, 이를 정교하게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녹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품은 제품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SNS에 공유합니다. 경험이 제품 자체보다 중요해진 시대 즉, 시장의 주인공이 제품에서 경험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멋진 플랫폼을 설계한다고 저절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소하고 지루한 연결 하나하나가 쌓여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이 사소한 연결을 만드는 것이 바로 콘텍스트입니다.
콘텍스트는 발견, 선택, 경험, 공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물론 발견, 선택, 경험, 공유는 독립 배타적이지 않고 순차적으로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끊김이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콘텍스트란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발견, 선택, 경험, 공유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점입니다.
발견은 콘텍스트의 접점이자 계기입니다. 페이스북에 친구가 올려놓은 책 표지를 보고 ‘내용이 괜찮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이 발견은 곧 선택이고 경험이 됩니다. 발견을 통해 책을 읽기도 전부터 경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발견은 의도하지 않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결의 결과입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 구글 알고리즘, 네이버 알고리즘을 통해 나에게 발견되기도 하고, 기업에서 관심사 등으로 타겟팅한 광고를 통해서도 발견이 됩니다.
선택은 발견에 영향을 받습니다. 발견 과정이 절묘하다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추천해준 책에 대한 의견과 리뷰만으로 책의 구매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매 순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아는 사람’들이 주는 정보의 효과성이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경험은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를 소비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매와 소비과정에 만족한 소비자들은 재구매로 이어지고, 충성고객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업사원이 되기도 합니다. 구매의 경험이 즐겁지 못하면 발견과 선택의 과정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또한 소비의 과정이 즐겁지 못하면 일회성 고객으로 끝나기 때문에 기업은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발견하고, 선택하고, 경험한 것은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됩니다. URL을 공유하는 적극적인 공유도 있지만, 좋아요나 댓글로 참여하는 소극적인 공유도 있습니다.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구독하기를 누르는 것도, 좋아요나 댓글을 다는 것도 모두 공유의 행동입니다. 공유는 데이터로, 정보로, 나의 목소리로, 나의 글로 다른 사람들의 발견과 선택과 경험에 영향을 미칩니다.
발견, 선택, 경험, 공유라는 콘텍스트는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생산 담당자들이 모두 참여해서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입니다. 기획자와 마케팅 담당자가 뚝딱뚝딱 설계한다고 실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브랜드 마케팅의 주된 목표는 브랜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고 고객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떠한 브랜드인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랜드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은 역효과를 불러올 뿐입니다. 기업 고유의 관점과 전문성을 통해 고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브랜드 마케팅의 방향성입니다.
고객 경험 자체가 상품이고 마케팅인 시대입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적 특징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갖고 있는 경험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경험은 온라인을 통해 공유와 확산되면서 뛰어난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고객들이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는 흐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브랜드 이미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브랜드 경험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중요한 차별화 요인이지만 기술 자체로는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이 성공하려면 소비자에게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디오 대여점으로 출발한 넷플릭스가 대표적입니다.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동영상 콘텐츠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매 순간의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사용자가 어느 순간 동영상을 정지하는지, 언제 되감기와 빨리 감기를 실행하는지, 어느 시점에 체류 시간이 가장 긴지 등을 분석해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콘텐츠를 제시합니다. 사용자가 서비스 경험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서비스 자체가 미디어 및 콘텐츠가 됩니다.
고객이 판매자를 만나서 구매를 진행하고, 구매 후 피드백을 하는 모든 과정을 '구매 여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고객과 판매자가 만나는 접점에서 고객이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느끼는 순간을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진실의 순간은 다시 고객이 처음 제품을 접하는 순간과 구매 후 사용하면서 느끼는 순간으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스토어에서 맥북에어를 보고 ‘가볍고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맥북에어를 사용하면서 ‘이 노트북 정말 괜찮은데’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 제품을 접하는 순간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프로세스 혁신이 필요합니다. 애플스토어에서 운영 중인 ‘지니어스 바(Genius Bar)’ 가 대표적입니다. 지니어스 바는 매장 내 Bar 형태의 테이블에서 전문가(Genius)와 기기를 함께 다루며 상호 소통합니다. 단순 판매보다 사용자 체험과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판매방식입니다.
제품을 판매한 후의 고객 경험 관리도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제품을 사용해본 개인의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기껏해야 가까운 지인들에게 경험을 이야기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품을 사용해본 경험을 소셜미디어에 손쉽게 올리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이 다른 개인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진실의 순간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자 기업의 활동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품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고객의 구매 여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한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편리함과 만족감, 내구성 등의 측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즉, 고객들의 구매 여정을 따라 다리면서 고객과 만나는 접점마다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