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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l 23. 2023

간절한 마음의 안식처 <용산사>

@Lungshan Temple (龍山寺)


빗길을 뚫고 시먼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했다. 시먼 지역이 속해있는 완화구 남단인 이곳은 아주 오랜 옛날 번화했던 거리로 조금은 낙후된 지역이지만, 언제나 많은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붐빈다. 바로 타이베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원인 ‘용산사’ 때문이다.


수차례 타이베이를 찾은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장소 역시 용산사. 첫 여행, 첫 방문 때부터 이 사원에 완전히 반해버린 나는, 타이베이에 올 때마다 어떤 의식처럼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 방문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안고 떠나곤 한다.



대만에서 가장 영험한 사원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조용해진 골목을 걷고 걸어 용산사에 도착했다. 작은 안마당이 지나쳐, 오른편에 난 입구로 들어서자 짤그락 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기도용 붉은 나무 조각을 바닥에 던지는 이 소리는 용산사의 상징! 그만큼 언제 방문해도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사원이다.


곳곳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우리나라의 절이나 교회, 성당과는 다르게 신도들의 차림새가 비교적 캐주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종교가 일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만의 사원은 대부분 불교와 도교 신을 함께 모시고 있는데, 70%에 육박하는 대만 사람들이 이 종교를 믿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실제로 퇴근길에 들린 직장인부터 하굣길에 찾아온 교복 입은 학생들, 또 주변 시장을 오가던 상인이나 어르신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현지인들이 용산사를 찾는 이유는 이곳의 영험함을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 푸젠성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1738년 지어진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데, 대지진과 공습으로 사원과 그 일대가 모두 파괴되었을 때에도 이곳에 모셔진 관음상은 늘 온전하게 남아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타이베이 사람들은 이곳을 더 신성시 여기게 되었고, 그 후 복원과 확장을 반복해 1956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기도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


나는 스스로 종교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욱 종교에 관심이 많다. 내가 속하지 못할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도 그 관심의 크기는 여전해서, 어딜 가도 사원이나 성당 같은 종교 시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행자가 되었다. 종교의 세계는 너무 깊고 방대해서, 그 세계에 속하지 못한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얄팍하기 그지없지만. 여러 종교 시설을 방문하면서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여행 중 종교 시설을 방문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간절함에서 나오는 낮은 자세와 애틋한 얼굴. 비종교인인 나에겐 조금 낯설고, 때론 기이해 보이기도 하는 기도 행위들. 이를 놓고 누군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지만. 나는 일상에선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낯선 일면을 볼 때마다 그것이 정말 경이롭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기도가 그렇겠지만, 나에겐 기도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곧 명상이자 환기인 것이다.



오랜만에 들린 용산사에서는 마침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인지,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불경을 외우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법당 문 앞에 서서, 거친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또 계단참에 조그리고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자세와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그 간절함의 크기는 너 나 할 것 없이 거대해 보였다.


어떤 것이 너무 소중하고, 너무 지키고 싶어서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무언가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며.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를 이렇게 크게 키워낼 수 있는 건 어쩌면 인간뿐이라고, 비이성적일 정도로 큰 사랑을 쏟을 줄 아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 우주도 결코 미워하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강인함과 용기, 또 아름다움이라고.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둥 뒤 모퉁이에 서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경 외는 소리와 향 냄새 덕분에 명상하듯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법회가 끝나고 조용히 사원을 빠져나가는 신도들. 그 흐름에 휩쓸려 나도 함께 용산사에서 빠져나왔다. 왠지 모르게 후련해진 마음으로. 편안해진 얼굴로.






용산사 (Lungshan Temple, 龍山寺)

No. 211, Guangzhou St, Wanhua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8   ‣ Goole map


1738년 지어진 용산사는 중국 푸젠성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지어진 사원으로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용산사라는 이름 역시 중국 푸젠성에 있는 사원 용산사로부터 가져온 이름이다. 주요 신은 불교의 관음(관세음, 자비의 신)이지만, 100여 명이 넘는 불교신, 도교신을 함께 모시고 있다.

여행자들도 누구나 기도에 참여하고 점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 절차를 따르지 않더라도, 건물 안팎을 둘러싼 조형물과 석조, 벽화의 수준이 다른 사원에 비해 특출나 미술적으로만 즐겨도 재미가 크다.


Tip

우리나라 종교시설에 비해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지만, 현지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사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무리하게 사진을 촬영하거나 큰 소리로 대화하는 등 일상적인 종교 생활을 방해하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용산사 1편. <간절한 마음의 안식처, 용산사>

용산사 2편. <용산사에서 소원 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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