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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1. 2023

혼자라서 편하지만 혼자라서 외롭다면

나 홀로 자취생의 혼자 살이

주말 아침이면 꼭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물소리에 잠에서 깨던 때가 있었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아침 7시부터 들리는 것은 기분 좋은 모닝콜은 아니었다. 애써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해도 높은 음의 쨍한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잠을 더 자는 것은 어렵겠다고 판단하며 이불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주말 아침의 여유를 느껴볼라 치면 엄마께서 방문을 벌컥 열고 아침먹을 건지 물으셨다.


엄마께서도 주말 아침에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시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깰까 봐 아침식사 중에도 속삭이며 대화하시는 부모님께 죄책감도 느꼈다. 내가 무슨 상전이라도 된다고 이 집의 어른 행세를 하는가. 부모님의 생활패턴에 맞추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그때부터 자취가 필요했다.




자취를 시작하고서 맞는 주말 아침은 고요하다.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니면 집안에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도, 물소리도, 아밥을 같이 먹을 거냐고 묻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한참 늦잠을 자거나 이불속에서 무료한 듯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끔은 집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제각각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귀가 쉴 수 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고요가 평화롭기만 하다. 아무도 보채는 사람이 없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 없으니 게을러지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여유로운 것도 주말 한정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집안이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게으르고 싶어도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밀고 빨래를 돌릴 수밖에 없다.


자취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서 청소와 빨래를 다 한다는 개념 그 이상으로, 한 가구의 모든 살림을 총괄한다는 의미다. 집에 있는 모든 가구와 용품이 한 명의 결정과 편의에 따라 구매되버려진다. 음식과 식기구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서 먹다 보니 양파는 한 개씩만 구매하고 달걀은 한 번에 10개 넘게 사본 적이 없다. 수저세트는 인터넷에서 구매한 탓에 4인 기준이지만 그 외 식기나 컵은 많아봐야 2인 기준이다. 평소에는 부족함을 모르다가 손님이 오거나 설거지가 밀리기라도 하면 당장 사용할 게 없어 난감한데 그럴 때는 바로 설거지를 하거제각각 다른 모양과 크기의 포크와 앞접시를 꺼내 놓는 것으로 해결한다. 이런 게 또 나 홀로 자취의 매력이 아닌가.




혼자 사는 것이 매번 좋고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한 번은 울빨래를 하려고 전용 세제를 넣으려다가 세제통 바닥이 터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재질의 통이 이렇게 쉽게 터지다니 불량품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흘러나온 세제를 닦고 남은 것은 옮겨 담았다. 그날의 울세제 사건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됐을 테지만 혼자서 처리하다 보니 노동이 되어 버렸다. 혼자 사는 것은 말 그대로 집에 혼자 있다는 뜻이며 혼잣말이 아닌 이상 말할 일 없다. 회사일이 바빠서 종일 컴퓨터만 보다가 퇴근한 날이면 잠잘 때쯤 하루를 돌이켜봤을 때 하루종일 열 마디 이상 내뱉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랄 때도 있다. 저녁이 되어 헛기침을 하며 혀와 목구멍이 빳빳하게 굳은 것을 느낄 때면 오늘도 말할 일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혼자라는 것이 제일 싫은 순간은 아플 때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다행히도 잔병치레가 없었는데 하필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2년 동안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항체 보균자이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느 토요일 아침 몸살기운이 심하더니 저녁부터는 고열에 시달렸다. 응급실에 가서 온갖 검사를 다 해본 결과 코로나에 걸린 것으로 판명 났다. 다행히도 응급실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같이 가줬지만 5일의 격리기간은 홀로 보내야 했다.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것도 힘든 상태에서 잠까지 설치며 3일을 보냈다. 응급실에서 받은 약이 전혀 효과를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증상이 악화되자 더 강력한 약을 받기 위해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 안을 살보더니 '목이 다 헐었네. 엄청 아플 텐데'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컥하여 눈물이 났다. 그날은 조용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욱 쓸쓸했다.




나만의 고요한 패턴을 찾아 자취를 시작했지만 혼자 살고 나서부터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직장 동료와 함께하는 점심식사가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고 친구와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집에서 쉬며 나 혼자만의 패턴을 유지하는 것도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친구와 만나 무한한 수다를 떨며 웃는 것이 예전보다 더 즐겁다.


반년이 넘는 자취생활 덕분에 나의 진정한 생활 리듬을 찾았다. 나 홀로 휴식을 취하며 나를 채우는 시간과, 누군가와 함께 보내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시에 얻시간이 공존하는 리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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