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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3. 2023

다른 자취러들은 어떻게 살까?

초보 자취러부터 프로 자취러까지

자취에 대한 꿈은 오랜 세월 묵혀두었던 로망이었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랜선 자취'로 자취에 대한 욕구를 달랬다. 긴 시간 동안 틈틈이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하며 자취하게 되면 이런 걸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꾸미는 상상을 하곤 했다. 주변에 자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자취방을 직접 가보면서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의 자취라이프는 TV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공한 사람의 도시 라이프보다는 고군분투하는 사회 초년생의 보금자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자취를 준비하면서 내게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있다. 자취 2년을 꼬박 채움으로써 초보 자취러에서 갓 탈피한 친구부터 강산이 바뀐다는 10년 동안 자취를 해 온 직장 동료까지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며 나의 자취를 응원해 줬다. 그들의 자취 라이프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덕분에 나의 자취 라이프 역시 조금씩 풍성해지고 있다.




자취러로서 꽉 채운 2년을 갓 넘긴 친구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올봄에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초보 자취러에서 중견 자취러로 진입했음을 알렸다. 친구는 내가 자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구할 때부터 이사하는 날까지 늘 옆에서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무한한 감사에 보답하고자 내가 만든 요리로 집들이를 했는데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본 요리를 맛있게 먹어줬다. 친구의 본가는 서울에 있지만 서른이 되자 이제 부모님 댁에서 나가 살 때라는 것을 깨닫고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다. 본가에서 회사까지 원래도 그리 멀지 않았지만 지금은 회사까지 도보로 30분, 자전거를 열심히 밟으면 7분 만에 닿는 거리에 산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멀지 않아서 퇴근 후에 자주 놀러 갔는데 합리적인 통근거리와 잘 정비된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하게 된 것이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 친구와는 상생하는 관계가 됐다. 친구의 집이 멀지 않다 보니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대량으로밖에 구매가 안 되는 것은 한 명이 대표로 사서 나눠 가지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소량 구매를 하기가 어려운데 친구와 함께라면 대량으로 사고 나누면 되니 편하면서도 합리적이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귀찮거나 유난히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는 퇴근 후 같이 만나서 맛집을 찾아갈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나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자취 초반에는 외로움을 많이 탔는데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연락하면 친구는 군말 없이 나를 만나줬다. 친구도 처음에는 외로움을 탔지만 지금은 개인 시간을 활용할 줄 알게 되면서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다. 지금은 나도 친구를 본받아 혼자서 보내는 시간의 의미와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전 직장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는 아침마다 핸드그라인더로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렸다. 당시에는 아메리카노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무실 가득 퍼지는 커피 향에 반해서 조금씩 얻어 마셨다. 성격이 워낙 똑부러지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오래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났다. 너무 아쉬웠지만 동료의 퇴사에 이어 나까지 관둔 후에도 좋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했다. 동료는 직장을 다니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이미 이사 경험까지 있는 프로 자취러다. 고양이 집사이기도 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비반려인보다 까다로웠는데 다행히도 청년주택에 당첨돼서 쾌적한 새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들이 날 가보니 새 집이라고 해도 유난히 깨끗했다. 고양이 때문에 부지런하게 청소를 한다고 하니 본받고 싶은 성격은 여전했다.

최근에 반려동물은 아니고 반려식물을 들였다. 초등학교 때 관찰일지를 위해 키웠던 방울토마토가 나의 첫 반려식물이었다. 껍질이 아주 두꺼운 방울토마토가 열렸는데 아무리 씹어도 없어지지 않던 토마토 껍질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후 할머니께서 레몬 허브를 주셔서 키워봤지만 허브가 키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고 부린 객기로 끝이 났다. 그 이후로는 무언가를 키우는 것이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본가에 갔더니 엄마께서 어린 식물이 담긴 작은 화분을 주셨다. 이전까지는 극구 사양했는데 이번에는 햇빛도 안 봐도 되고 바람도 안 불어도 되고 물도 일주일에 한 번만 갈아주면 된다는 말씀에 고민을 하다가 집으로 가져왔다. 본가에서 가져온 식물이 잘 자라자 자신감이 붙어서 영화관 이벤트로 나눠주는 식물까지 들여놨다. 햇빛과 바람이 없어도 돼 책상에서 키우기 딱이라고 하니 용기를 냈다. 집에서 가져온 식물은 물에서 커서 수중이, 이벤트로 받은 식물은 흙에서 커서 토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끝까지 책임질 테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자취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팀의 유일한 자취러인 팀원과 점심을 먹었다. 자연스레 자취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고 그 이후로는 점심을 먹을 때마다 자취 근황을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그분은 20살 때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프로 중에서도 프로 자취러였다. 맛있어 보이는 요리는 직접 만들어 볼 정도로 요리와 막역한 사이며, 커피와 차에 관심이 많아서 집에 홈카페 공간을 만들어놓다. 나중에는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는 나보다 어려도 혼자 산 시간이 많아 자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이 느껴졌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생일에 가족들에게 생일 선물로 홈카페 용품을 사달라고 했다. 직장 동료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뜻하지 않게 커피 원두를 선물 받은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장 원두를 갈 도구조차 없어서 이참에 홈카페를 차려보자라는 생각으로 전동그라인더부터 바리스타처럼 커피를 내려준다는 바리스타핸즈까지 선물 받았다. 아메리카노는 쓰다고 마시지도 않던 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 먹는 날이 올 줄이야. 원두 포장지만 열었을 뿐인데도 온 집안에 커피 냄새가 퍼져 나갔다.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으로 나의 자취 라이프가 풍성해졌다.




개인을 하나의 섬이라고도 표현한다.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의미지만 주변의 자취러들을 보니 모두가 자기만의 공간을 꾸리면서 살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취미를 가꾸고 관심사를 살려서 삶을 채워 나가는 자취러들에게서 받은 자극은 나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다른 자취러들의 삶을 기웃거리며 따라 해보기도 하고 조언도 많이 구했지만 이제는 독립적인 자취러로서 내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터득했다.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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