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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6. 2023

조금 더 부모님의 둥지에 머무르세요

자취를 하고 싶다는 직장 후배에게

회사에서 우리 팀은 모든 부분에서 '신생'이다. 올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신생' 팀인 데다 팀장님을 제외하면 입사 2년 차 직원이 2명, 이제 막 수습을 마친 직원이 2명인 '신생' 직원으로만 이루어졌다. 중간급의 직원이 없다 보니 대리급이 해야 할 업무를 팀장님과 2년 차 직원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2년 차 직원에 속하는 나는 가장 최근에 입사한 신입직원의 사수를 맡게 됐다. 전 직장에서 단발적으로나마 신입직원을 교육한 적이 있고 그 전 직장에서도 후임 직원을 여러 번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사수가 된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후배 직원이 열의가 있고 업무에 대한 태도가 좋아서 큰 걱정이 없었다.

후배 직원의 수습 기간이 끝날 때쯤 최종평가를 앞두고 둘이서 티타임을 가졌다. 티타임의 업무상 공식명칭은 회의였지만 실상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분위기가 풀려서 자연스럽게 좀 더 사적인 영역으로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후배는 현재 자취를 고민 중이라고 했고 우리 팀 내 유일한 자취러인 나의 생각을 물었다.
"저도 자취하고 싶어요!"
"음...... 집에서 회사까지 먼 편이니까 해도 좋지만...... 엄청 추천하지는 않아요."




이제 적응기에 들어선 나의 자취 라이프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왜 후배에게 자취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일단 후배가 고려하는 지역이 본가와 많이 떨어진 곳이 아니라서 통근 시간을 크게 줄여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취를 해야 하는 거리적 이유는 탈락이다. 게다가 부모님 댁에서 나와 자신만의 라이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일단 한 번 자취를 시작하면 다시 본가로 들어가는 것이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도 어려울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자취를 추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후배가 사회 초년생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돈을 모으기보다는 쓰기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돈 쓰는 재미를 알게 됐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벌어 들이는 수입은 두 자리 수의 만원 단위를 넘기지 못했고 생활비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전부 쓸 곳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들어오는 돈이 세 자리 수의 만원 단위로 늘어났다. 직장 동료와 퇴근 후 맛집을 찾아다니고 친구와 시간이 안 맞으면 나 홀로라도 여행을 떠나며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게 사회 초년생은 돈을 씀으로써 얻는 재미와 경험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출보다는 절약에 가까운 자취러의 삶을 추천해주고 싶지 않았다.




반면에 친구들의 자취는 적극 지지한다. 대부분 직장인 4~5년 차에 접어드는 나이라서 사회 초년생의 흥청망청은 이미 충분히 즐겼고 부모님 댁에서 나와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면서 또 한 번의 성장을 겪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또는 서른을 훌쩍 넘겨서 자취를 시작하기도 하지만 만약 자취를 시작하는 나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서른을 꼽을 것이다.

스스로 온전히 나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이자 나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기에 딱 좋은 나이, 서른. 나는 서른에 자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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