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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5. 2023

자취 라이프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혼자 살거나 둘이 살거나

이 집에서 살게 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집에도 심심치 않은 일들이 있었다.
출장을 갔다 와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불빛이 들어오지 않고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여름에 냉장고가 고장 난 것이다! 급하게 냉장고 수리 기사를 불렀지만  예약이 가장 빠른 날조차 4일 후였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4일은 냉장고 없이 살아보기로 하고 상할 수 있는 식품은 친구 집으로 보냈다. 고장 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관 중문 어디가 잘못됐는지 문이 여닫히지가 않아서 또 한 번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다. 수리가 끝난 중문을 여닫으며 남은 계약기간 동안은 더 이상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데 생각해 보니 계약기간이 이제 일 년밖에 남지 않았더라.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후에는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계속 자취를 하거나,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다시 부모님 댁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새 혼자만의 라이프에 길들여져서 부모님의 룰과 패턴을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쓰던 방은 이미 아빠의 취미방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아빠의 개인 공간을 뺏는 것과 다르지 않다. 셋 중 가장 품이 덜 드는 것은 자취를 이어가는 것이다. 법이 바뀐 이후로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는 한 차례 자동 계약 갱신이 가능하다. 2년의 계약 이후 나가겠다는 의사를 따로 내비치지 않으면 2년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집에서 3년은 더 살 수 있으니 자취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것도 그만큼 미룰 수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오피스텔 전세를 전전하며 살 수는 없다. 계약직의 삶을 끝내고 무기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에 최종 도달한 것처럼 거주지에서의 정규직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싱글 자취 라이프 속에서 뻔한 벌이로 전세를 연장하며 살기에는 내 성격에 불안해서 못 견딜 것이다. 하지만 집을 사는 것은 영혼을 끌어모으다 못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힘들다. 게다가 아파트는 세간살이까지 전부 장만해야 해서 부담스럽다 보니 계속 오피스텔에서 사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중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것을 알게 됐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도시에만 지을 수 있는 주택 형태다. 쉽게 생각하면 소형 아파트 평수를 갖춘 오피스텔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 아파트보다 매매가가 저렴해서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고 대출까지 끼면 노려볼만하다. 이만하면 싱글 자취 라이프를 이어간다는 선택지는 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재작년부터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작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친구들 중 절반 가량이 우르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자 연말쯤 되니 나도 빨리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만 나이법이 시행되면서 한두 살 어려지기는 했지만 체감하는 나이는 여전히 옛날 법을 따른다. 전세 계약이 끝나면 34살일 테고 그렇다면 결혼 적령기에서 조금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막막해진다. 어차피 결혼할 거면 너무 늦게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너무 늦은 나이는 언제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내가 '어차피' 결혼할 것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등학생 때는 비혼주의에 가까웠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청혼까지는 받아보고 싶었다.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할 나이가 되니 도대체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사랑의 결실일까 살림을 합쳐 벌이를 불리려는 전략일까 아니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절차일까? 결혼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편과의 작은 다툼은 물론이고 시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을 둔 엄마는 우리 딸이 이렇게나 자랑스러운데 결혼하고 나서 뻔한 삶을 살까 걱정하고 아들을 둔 엄마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결혼하고 나서 멀어질까 걱정하는 모순을 찾을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말도 있지만 굳이 구더기를 걱정하면서까지 장을 담가야 하는지, 결혼이 장처럼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는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배우자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꾸곤 한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고민을 끝내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그들처럼 언젠가는 나도 절약하는 싱글 자취 라이프와 네 짐 내 짐 가리지 않게 되는 결혼 생활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자취 라이프의 다음 단계는 무조건 전진이라는 것. 돈을 모아서 거주지의 정규직화에 성공하든 모든 번뇌를 초월하고 결혼에 성공하든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그것이 지금보다 발전한 형태일 거라 믿고 지금의 자취 라이프를 최선을 다해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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