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새로운 직장, 또 다른 첫 출근. 벌써 3번은 반복한 일이지만 이번에도 첫 출근을 앞두고 밤잠을 설쳤다. 자다가 깰 때면 푸른 새벽빛이 방안을 가득 채운 것을 보며 아침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로운 회사는 전 직장보다 거리가 멀어서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제때 못 일어나서 첫날부터 지각할까 봐도 걱정이었지만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지금이라도 새 직장을 포기할까?', '그냥 예전회사로 돌아갈까?',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으니 다시 받아주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밤새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어느새'보다는 '드디어'에 가까운 긴 밤이었다. 분명 충분히 자지 못했는데도 몸이 피곤하지 않았다. 긴장감으로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기라도 한 걸까? 아직 온전히 해도 뜨지 않은 하늘 아래로 출근길에 나섰다. 두 배는 길어진 통근 시간. 꼬박 2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통근. 그중 1시간 30분을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다. 앉아서라도 가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1시간 30분 내내 서서 가야 했다. 환승하기 위해 하나의 지하철에서 내려 또 다른 지하철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매일 이렇게 출근할 수 있을까?"
신입직원의 대기 장소는 면접이 진행되었던 회의실이었다. 첫날이라 좀 일찍 갔더니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속이 불편해서 가방을 놔두고 화장실부터 갔다.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을 때는 나의 유일한 동기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휴대전화로 시선을 돌렸다. 넓은 회의실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그래도 동기가 있다는 점이 은근 위안이 됐지만 미리 말하자면 동기는 수습기간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관뒀다. 부서가 다르기도 했고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동기의 퇴사가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다시 첫날로 돌아가서, 9시가 되자 인사담당자가 회의실로 들어오더니 책자와 안내문을 나눠줬다. 이어서 기관장과의 어색하고 불편한 면담이 이어졌고 사무실을 돌며 기존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별 거 안 했는데도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 점심식사를 위해 인사담당자와 함께 회사에서 가까운 중식당으로 갔다. 붉은 장식이 화려하게 걸려 있고 고동색의 커다란 등받이 의자에 앉는 오래된 중식당이었다. 자유롭게 식사를 고르라고 해서 나는 새우볶음밥을 골랐다. 새우볶음밥과 같은 페이지에 가지덮밥이 적혀 있는 것을 봤지만 가지덮밥을 주문하지 않은 것은 나 혼자 지키고 싶은 옛 직장 동료와의 의리였다.
오후에는 배정된 팀으로 가서 내 자리에 앉았다. 마침 팀장님이 휴가를 가셔서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으로부터 인수인계서를 전달받았다. 내일 팀장님이 오시면 업무를 설명해 주실 거라면서 오늘은 가볍게 훑어보라고만 했다. 나는 인수인계서보다 책상을 먼저 훑어봤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그리고 펜과 형광펜이 한 자루씩 꽂혀 있는 필통이 전부였다. 일할 기분이 나기 위해서는 책상에 먼저 정을 붙여야 했다. 회사에 내 돈을 쓰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펜도 수정테이프도 연필도 전부 무조건 회사 비품실에 있는 걸로 천천히 채워 넣었다. 책상 위 물품은 전부 회사 협찬으로 채워졌지만 딱 2개, 모니터 받침대와 키보드 매트만 내 돈으로 샀다.
책상에 정을 붙이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했지만 업무를 파악하는 데는 일주일은커녕 한 달도 부족했다. 내 자리는 증원이 아닌 충원이었고, 계약직으로 일하던 분이 계약이 끝나면서 정규직으로 채워진 자리였다. 그렇다 보니 나는 전임자와 대면하지 못하고 전임자가 남긴 서류만 가지고 업무를 파악하며 2개의 사업을 단독으로 담당했다. 다행히도 전임자의 배려로 딱 한 시간의 대면 인수인계 시간이 주어졌지만 업무와 관련한 다년간의 히스토리를 전부 파악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런 사정을 이해해 주는 곳이 아니다. 직원으로 앉아 있으면 그만큼의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곳이다. 그 결과로, 왜 공공기관에 신입 공채가 없는지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공기관에서 순수한 의미의 신입은 살아남을 수 없다. 별다른 교육 없이 바로 단독 업무에 투입되어야 하는 자리에는 경력직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도 경력직이 필요하다.
업무만큼 적응 안 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혼자 밥 먹는 문화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혼밥이 당연한 분위기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혼밥을 왕따의 상징처럼 여기던 전 직장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을 여기서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팀의 1년 선배가 점심 약속이 없으면 같이 먹자고 말했다. 첫날을 제외하면 새로운 회사에서 누군가와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는 거였고 입사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갈 때쯤이었다. 선배는 회사를 나서자마자 우리 팀이 지금 너무 바쁜 시즌이라서 많이 못 챙겨줘 미안하다며 원래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변명했다. 나는 괜찮다고, 혼밥이 자연스러운 문화라 좋다고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이후로 선배와는 종종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됐고 선배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직원들하고도 점차 점심 약속이 생겼다. 이전 직장과 비슷하게 돈가스나 중국 요리를 먹으러 가기도 했지만 그런 메뉴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 차츰 줄어들었다. 새 직장에서의 점심 메이트 취향은 햄버거, 돈가스 등 기름진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고 청국장이나 생선구이 같은 한식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새로운 동네의 맛집이 궁금해서 따라다녔지만 어느새 내 발로 찾아가는 날이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편식이 심했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한식은 굳이 찾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 어느 순간 입맛이 확 변했다.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청국장이 확 끌리고 고등어구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보다는 밥을 찾는 횟수가 늘었고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윗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내 입으로 하고 있다니,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바뀐 입맛 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것은 육회를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사 주변에는 유독 육회비빔밥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딱 봐도 회식하기에 좋은 고깃집에서는 점심메뉴로 육회비빔밥을 팔았고 청국장집과 일식집에서도 육회비빔밥을 팔았다. 내가 처음 먹어봤던 육회는 어느 바에서 안주로 먹었던 육회 타르타르였다. 의심반 호기심반으로 아주 조금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날 이후로 육회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목록에 올라갔고 그 덕분에 회사 주변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당당하게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다. 새싹채소, 김, 육회에 밥과 고추장만 넣고 비볐을 뿐인데 이렇게나 맛있다니! 육회비빔밥의 매콤한 맛에 스트레스가 풀렸고, 육회의 식감은 흥미로웠으며, 비빔밥 그 자체로 든든했다.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나의 변한 입맛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 번은 언니가 뷔페에서 육회를 집는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너 육회도 먹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주 자랑스러운 말투로 "나 이제 웬만한 거 다 먹어."라며 우쭐댔다. 30년 넘게 쌓아온 나의 입맛에 익숙한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면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고 매번 가족들은 "세상에, 진짜 놀랍다."라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입맛만큼 달라진 것은 직장에 대한 태도였다. 전 직장을 다닐 때는 가족들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늘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에서 이런 일 때문에 화가 났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등. 그러나 이번 직장을 다니면서 수습기간 3개월 동안 별다른 말이 없자 아빠께서는 내가 불만을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을 보니 이직하길 정말 잘했다고 하셨다. 통근 거리도 훨씬 멀고 업무 강도도 더 높았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정규직이라는 직위가 직업만족도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예전부터 원하던 직장에 다닌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