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결말

요리를 지나 알코올의 세계로

by 사과실

내게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가 졸업도 하기 전에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서로 솔직해질 수 있었고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그 친구에게는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친구가 방학 동안 한국으로 들어왔다. 5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기에 그동안 주고받았던 메일이 무색하게도 낯설게 느꼈다. 오히려 그 친구가 군대를 가고 나서 휴가 때마다 만나다 보니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그 친구를 만나러 갈 때마다 친구들은 데이트라며 나에게 바람을 넣었지만 나는 잔뜩 부풀어 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태연한 척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에도 그 친구를 만났다. 내가 타지 생활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그 친구가 제일 먼저 했던 말은 의외였다.

"너 요리 좀 할 줄 알아?"


바르셀로나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마'를 직접 초대해 스파게티를 해줬던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요리는 빈약해졌다. 요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갔고 '그냥 배고프지 않고 예상했던 맛만 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적정선을 넘는 '맛있다'라는 표현이 나올 수가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난 재료에 투자하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먹는다면 야채와 소스를 기본으로 넣고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야채, 소스, 단백질. 이 세 개의 맛이 느껴지기만 하면 그것은 내게 샌드위치였다. 심지어 나중에는 요거트 소스를 넣게 되면서 단백질을 빼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거트 소스의 새콤달콤함이 강력해서 단백질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 친구의 질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혼자 살게 되면 요리가 중요하구나.'


IMG_20141020_180236.jpg 핼러윈을 앞둔 10월의 어느 날. BCN의 마트에도 다양한 재료는 있다.




그 날은 피카소 미술관을 갔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40분이 넘는 페로카릴을 타고 나가 미술관을 갔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타지에 와서 이렇게 부지런해도 되는 건가?'라는 오만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애교 섞인 위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수업을 빠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다. 피카소의 창의성은 내게 부담스러운 경지에 있었고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화가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어린아이라면 한 번씩 '저 정도라면 나도 화가가 될 수 있겠다'라는 꿈을 꾸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는 그런 류의 희망적인 작품은 많지 않았다. 초기 작품이 많아서 '피카소가 이런 방식으로도 그렸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낯선 피카소를 만날 수 있었다.


미술관 내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있을 때쯤 네타방의 단체 톡방에 연락이 왔다. '하'의 룸메이트 생일을 맞아 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참가 자격은 '하'의 룸메이트나 '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였다. 우리는 각자 음식을 준비해 가기로 했는데 그때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고민이 시작됐다. 나 혼자 먹을 때처럼 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료를 더 산다고 해도 난 쓸 줄을 모른다. 집에 도착해 부엌을 샅샅이 뒤진 결과 답이 나왔다. 비상식량으로 남겨뒀던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 데워서 봉지만 뜯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였다. 그래서 재빠르게 밥을 하고 카레를 데웠다.

'제발 인기가 있어야 할 텐데.......'




스페인 요리로 널리 알려진 빠에야에는 강황 가루가 들어간다. 처음으로 강황 가루를 넣었던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스페인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가져간 카레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그분 덕분이니까. 파티에서 음식은 거들뿐 메인은 술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술을 단 시간 내에 마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은 가볍게 맥주로 시작했다. 그 다음은 보드카. 그때까지도 탄산수나 오렌지 주스와 적절히 섞어마셔서 페이스 조절이 가능했다. 그러나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한 잔 속 탄산수의 양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고 나서 마신 술은 위스키였다. 그때부터는 취기가 오를 대로 올라 맛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룡정점의 테킬라. 손등에 소금을 뿌리고 라임즙을 짜내 테킬라에 곁들이니 술이 제대로 들어갔다. 사실, 그건 아니다. 소금과 라임의 조화가 무슨 맛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먹기에 먹었을 뿐이고 어느새 손등을 넘어 왼쪽 팔 전체가 소금기를 뒤집어썼다.


술에 취해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내 눈앞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추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구토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네타방 친구 중 한 명은 이 모든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정신으로는 누구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마'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고 바람을 쐬러 가자거나 속을 비워내 보라는 제안을 계속해서 했다. 나는 좀 더 버티다가 한 살 어린 친구의 부축을 받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가 8시였다. 그 후로 나는 7시간 동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구토를 했다. 그 틈에 주말이라 메이트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L이 주말인데도 방에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정신 못 차렸던 7시간 동안은 밖에 나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연락이 왔지만 답할 새가 없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려놓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아,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도 안 좋고, 외롭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불효를 저지르게 만들었다. 엄마는 한숨을 푹 쉬시며 말씀하셨다.

"라면 먹으면 속만 더 뒤집히지. 밥 있어? 밥을 묽게 끓여 먹어, 미음처럼."

철없는 전화 통화 덕분에 내 속은 진정됐다.


내가 당연히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오후가 돼도 연락이 없자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그때쯤에는 나도 기운을 어느 정도 차린 상태라 친구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마'와 '사'가 나를 데리러 왔고 우리는 '마'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고 고백했다. 그쯤에는 나도 내가 철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였다. 친구들은 어머니 걱정하시게 왜 전화를 했냐고, 우리한테 하지 그랬냐고, 나를 나무랐다. 나무람을 심하게 들어도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입 밖으로도 다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다시는 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 말도 안 되게 취했던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은 그 다짐을 지켰다.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는 술을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날이 떠오르는 트라우마 때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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