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만들어갔던 시간들
그곳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 적정 수면 시간이 8시간이라는 것이다. 드르륵 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검은색 블라인드를 내리면 방 안으로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살면서 이 정도로 완벽한 어둠이 보장되는 밤을 보낸 적이 있던가.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면 하나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그곳은 그 정도의 적응도 허락하지 않았다. 11시에 자면 7시(11시에 잠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12시에 자면 8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잠든 시간으로부터 8시간 후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4개월이 다 되도록 하품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피곤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곳에서 깨달은 것 중 두 번째, 4개월 동안 '바쁘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진정으로 바쁠 일이 없었다. 시간이 금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체가 엘도라도였으니까.
오후 2시가 좀 넘은 시각, 난 기숙사를 나섰다. 페로카릴을 타러 가는 길에 우연히 플랫 메이트인 L을 만났다. L은 아침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L은 내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네덜란드에서 친구가 놀러 와서 마중 나가는 길이야."
도서관에서 같이 근로했던 친구 중 나와 같은 시기에 네덜란드로 교환을 갔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나와 같은 학기에 처음 근로를 시작해서 사이가 돈독해졌다. 우리는 같이 교환학생을 준비했고, 한국 학교에서 했던 오리엔테이션도 같이 갔다. 열흘 전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바르셀로나로 놀러 가려는데 시간이 되면 만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시간이 되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었다. 남는 것이 시간이 아니었던가. 한 톨의 거짓 없이 기쁜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람블라의 시작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은 신촌 유플렉스 앞이나 홍대 9번 출구와 같은 곳이었다. 람블라에 도착했을 때 친구와 일행들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듬뿍 담아 말했다.
"세상에,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다니!"
친구와 일행들은 짧은 일정을 알차게 써야 하는 여행객이었다.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근황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에스파냐 광장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간단한 근황을 물었다. 몇 분의 시간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일 가이드가 되어 친구와 일행들을 안내했다. 에스파냐 광장에 내린 후 150번 버스를 타러 가려면 카탈루냐 미술관 앞 주작대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주작대로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가 말했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카탈루냐 미술관을 정면에서 찍을 수 있답니다."
사려심 깊은 신호등은 우리가 사진 찍는 시간을 침착하게 기다려줬다. 우리는 150번 버스를 타고 몬주익으로 이동했다. 나는 Gaudir+BCN이라는 것에 등록되어 있어서 몬주익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바람을 쐬고 싶을 때, 람블라보다는 멀리 나가고 싶을 때, 때로는 귤을 사들고 몬주익 성을 방문했다. 몬주익 성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다행히도 친구와 일행들은 몬주익 성을 맘에 들어했다. 몬주익 성은 한쪽은 육지를, 반대쪽은 바다를 내려다본다. 어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친구들은 갖가지 느낌을 위해 셔터를 아끼지 않고 눌렀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맘이 뻥 뚫리는 곳에서 우리는 좀 더 머물렀다.
몬주익을 오르내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다를 지나는 케이블카, 육지를 지나는 케이블카, 그리고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 케이블카는 한 번 정도는 타볼 만해서 친구와 일행들에게 타고 내려갈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나는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케이블카를 이미 타본 데다가, 사실 난 케이블카를 무서워한다. 자이로드롭, 바이킹, 롤러코스터는 다 타지만 케이블카나 관람차는 못 탄다. 어쩌다 타는 날에는 몸을 절반으로 눕혀 최대한 안정감을 찾는다. 친구와 일행들은 나를 빼고 케이블카를 탄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지만 나는 오히려 버스를 타는 것이 반가웠다.
성에서 내려와 바르셀로네타를 둘러보던 중에 '하'가 도착했다. 우리는 다 같이 베야테라에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친구의 일행 중에는 '하'의 친구도 있었다. 이게 무슨 운명적인 우연인가 싶어 우리는 다 같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그것은 바로 '하'네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하'는 정말 대단한 요리사였다. 일식, 중식, 한식, 양식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연어를 사다가 초밥을 만드는가 하면 어느 날은 짬뽕을 끓이고 또 다른 날은 오삼불고기를 해서 매콤한 음식을 갈망하는 네타방의 입을 달래주기도 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왔던 그 날은 더 특별한 음식이 필요했다. 그날 '하'가 준비했던 대망의 요리는 바로 치즈등갈비였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음식도 '하'의 손에 들어오면 막힘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요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하'와 정반대였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데다 귀찮아했다. 하지만 그날은 나도 내 친구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틀 전부터 돼지 앞다리살을 양념에 재워놓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요리다운 요리를 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친구와 일행들은 집들이(?) 선물로 상그리아를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 갔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의 뜨거운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정말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나 혼자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은 내 제육볶음을 좋아해 줬다. 특히 평소의 내 모습, 파스타를 먹을 때는 물기를 제거한 면이 아직 뜨거울 때 냉장고에서 갓 꺼낸 토마토소스를 뿌려 면의 열기로 소스를 데우던 내 모습을 알고 있던 '하'는 내 장족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치켜세워줬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는 내게 따로 선물을 챙겨줬다. 예쁘게 포장된 스트룹 와플이었다. 나는 또 새로운 문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스트룹 와플은 바르셀로나에서는 포장된 채 있다가 한국에 와서야 포장 밖으로 나왔다. 특별한 선물이라 타지에서 나 혼자 낼름 먹고 싶지 않아 한국까지 가져간 것이었다. 가족들과 하나씩 나눠 먹고 나니동이 났다. 스트룹 와플은 이제 카페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디저트가 되었다. 스트룹 와플을 먹을 때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탔던, 내 인생 최초의 스트룹 와플과 그것을 선물받았던 순간이 여전히 떠오른다.
그 후에도 영국에서 유학하던 친구가 한 차례 다녀갔다. 먼 곳의 친구들을 만났던 일주일 후 네타방 친구들과 보드를 타러 나갔을 때 '자'가 말했다.
"너 자꾸 그렇게 개인행동하면 곤란해."
'사'와 '마'도 일주일 동안 날 보기 힘들었던 것에 섭섭함을 표했다. '자'의 말과 '사'와 '마'의 섭섭함은 나를 가둬두려는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표현이 고마웠고 또 좋았다. 교환학생으로서 공식적으로는 UAB 소속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네타방 소속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네타방에 개인행동 따위는 없다고 외치며 뜨거운 소속감을 과시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마'와 나는 산쿠갓으로 갔다. 마침 '사'와 '가'로부터 시내에서 들어오는 길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기다렸다가 둘과 함께 카페로 들어가기로 했다. 산쿠갓 역 맞으편에는 2층짜리 전원주택 건물의 카페가 있다. 이름은 'VIENNA'. 산쿠갓을 갈 때마다 동화 같은 겉모습에 끌려 안은 과연 어떨까 라고 상상만 했던 곳이었다. 우리는 상상에서 벗어나 눈으로 직접 보기로 결심했다. '사'와 '가'를 기다리며 잠시 카페 앞에 서 있었다. 낮동안 한가했던 역이 분주하게 사람들을 뱉어냈다. 퇴근 시간이 빚어낸 마법이었다. '마'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문득 도시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는 모든 게 새로워서 길 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 내 모습은 그때의 나와 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중간 지점에 있었다. 3개월 차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오만한 무료함, 그래서 새로운 감흥을 찾아내기 위해 했던 노력. 공기 중에 은은하게 녹아있던 비가 서서히 내 옷을 적시고 있었던 그날, 나는 새로운 설렘을 느꼈다. 익숙한 향기에서 오는 편안함. 물론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오만함이었지만 조금 건방을 떨어도 괜찮았다. 짧은 시간 동안 가까이 지내며 가족이 되어버린 친구들, 한 덩이의 시멘트 보다는 네모난 블록이 모여 만들어낸 거리, 느리지만 재촉할 필요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에 나는 또 다른 설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