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인 줄 알았는데 삶이 되었다

내 입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다'라는 말이 처음 나왔던 날

by 사과실

유학이나 교환학생뿐만 아니라 단기간 해외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마저도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외국애들은 외모에 신경 안 쓰더라. 학교 갈 때 매번 화장하지도 않고 옷도 청바지에 후드티 같은 것만 입는다. 우리나라 애들만 매번 파티 가는 것처럼 꾸민다."




하지만 내 룸메이트들은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에 상당한 시간을 치장하는 데 썼다. 마스카라도 항상 빼놓지 않고 했으며 화장실은 고대기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거나 C컬을 마는 룸메이트들로 붐볐다.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주로 든다는 말도 룸메이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토트백에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커다란 교재는 손에 들고 다녔다. 옷 또한 고심해서 고른 티가 났다. 청바지를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무심하게 입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등교를 위해 화려하게 꾸미는 시간은 거의 매일 같이 펼쳐졌다.

오히려 꾸미지 않은 쪽은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도 단순하게 입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완전 반대였다. 시험기간이라서 아무리 공부할 양이 많고 잠을 2~3시간밖에 못 잤어도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학교를 간 적이 없었다. 항상 풀메이크업을 했고,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바지보다는 치마를 입었다. '어디 나갈 때는 꾸미고 가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조로웠던 고등학생 때와 다르게 대학교를 다니며 얻게 된 자유를 꾸미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달랐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조깅을 시작했는데 날이 쌀쌀해지면서 계절에 맞는 바지 구입이 시급해졌다. 친구들과 보드를 샀던 데카슬론에 가서 편하게 입을 바지를 샀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조깅할 때 입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맵시가 살지 않고 그저 편하게만 보이는 검은 바지를 곧잘 시내에도 입고 나갔다. 한 번은 '사'가 갑작스럽게 내 방으로 찾아와 같이 람블라로 쇼핑을 간 적이 있었다. 계획에 없던 외출이기도 했고 이제 람블라도 캠퍼스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발길이 잦았던 때라 별생각 없이 조깅용으로 산 검은 바지를 입고 갔다. 귀찮다고 내켜하지 않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지금 차림 그대로 걸음만 옮기면 된다고 말했던 '사'지만 페로카릴에 타고나서 본심을 드러냈다. 내가 정말 '그 바지'를 입고 나올 줄은 몰랐다고.


'그 바지'만큼 줄기차게 입었던 옷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가져간 갈색 점퍼. 두께가 얇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아서 가볍게 입을 수도 있고 안에 옷을 껴입으면 따듯하게 입을 수도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있었던 11월부터 12월에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똑같은 갈색 점퍼를 입고 있는데 그 정도로 자주 입었다. 어느 날, 속에 껴입은 니트 소매를 끌어당겨 추위에 시린 손을 덮으려다 갈색 점퍼의 소매 끝이 해진 것을 발견했다. 쉴 틈 없이 옷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점퍼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클럽에 가는 날이나 날 잡고 시내에 나갈 때는 화장도 했고 맵시 나는 옷도 골라 입었다. 그런 날은 오랜만에 만나는 내 모습을 기념하기 위해 셀카를 여러 장 찍었다.




학교보다도 자주 갔던 곳이 카탈루냐 광장과 마트였다. 특별히 뭔가를 사거나 갈 곳이 있어서 30분을 걸려 광장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가 있는 동네와는 다르게 북적북적한 시내를 걷는 것이 좋았고 숨만 쉬는 데도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사실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목적 없이 골목골목을 거닐다 보면 여행 책자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도로변으로 난 창을 통해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을 보고 가게로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 여유를 부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그때 처음 가져봤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스페인 혹은 유럽만의 특징이 아닌 것에도 혼자만의 라벨을 붙여 특별한 기억으로 분류했다. '한국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것'이라는 라벨. 한국에서의 내 삶이 상당히 협소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독 편집샵이라고 하는, 작은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를 많이 찾았다. 예전에는 그런 것에 흥미가 없어서 그렇게나 많은 가게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쓸모와는 상관없이 존재 자체가 특징인 소품에 흥미가 없었으나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자주 찾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다. 아기자기한 소품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유용한 생활용품도 있었지만 honey dipper라고 하는, 꿀 젓는 용품, 촛불 끄는 쇠막대, 클래식한 촛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던 물건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였던 것은 바로 세계지도다. 세계지도에는 대부분 sea of Japan이라고 적혀 있었다. 참 씁쓸했던 기억이 나는데 엑삼플레 지구에서 처음으로 East sea라 적힌 세계지도를 발견했다.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어디서 만들었는지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브랜드더라. 그때 깨달았다.

'아, 지도를 제작해서 해외에 수출하면 되는구나'


IMG_20141006_175111.jpg 바르셀로나의 어느 가게


무엇보다도 마트를 가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과 중 하나였다. 베야테라역 바로 앞에는 있는 콘디스(Condis), 람블라 중간에 있는 까르푸, 기숙사와 가까운 창고형 대형 마트 알캄포, 크기는 까르푸와 비슷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메르카도나, 그리고 바르셀로나 곳곳에 포진한 한인마트까지.

수돗물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1.5L짜리 생수를 사다 먹었는데 물의 부피가 클수록 리터당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욕심내서 7L를 낑낑대며 들고 왔는데 결국에는 절충안으로 5L짜리를 사서 1.5L에 나눠 담아 마셨다.

우연히 발견한 메르카도나의 당근 케이크를 처음 먹었을 때도 기억난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했던 케이크 종류가 당근케이크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던 때이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던 대로 나는 요리를 잘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끼니는 먹어야 했으니 선택했던 것이 바로 시리얼이었다. 알캄포에 가면 복도 하나를 끼고 양쪽이 전부 시리얼이었는데 그중 맛있는 시리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꽤나 재밌었다. 시리얼 한 톨마다 정성이 들어갈수록 가격도 올라갔는데 한두 번 정도 별미로 가격이 좀 있는 시리얼을 사 먹었다. 그렇다 보니 그만큼 우유도 많이 들었고 우유를 한 번에 2개씩 사다 보니 하나가 언 적도 있었다. 룸메이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주말에도 평일과 똑같은 온도로 맞춰놓아서 얼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던 날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꼽으라면 처음 도착한 날도, 처음 보냈던 추석도, 처음 마트에 갔던 날도 아니다. 바로 그해 12월 1일이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면서 이케아에 가서 하얗고 도톰한 이불을 사서 덮기 시작한 때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났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심해 밤에는 전기장판까지 켜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12월 1일, '하'가 먼저 따듯한 음식을 먹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국물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어려웠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산해진미를 차려냈던 '하'였지만 깊은 맛이 나는 육수를 바탕으로 한 국물 요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면이나 우동 같이 순식간에 조리해낸 가벼운 국물 말고 온몸 깊숙한 곳까지 데우는 진정한 국물이 그리웠다. '하'와 나 말고도 2~3명이 더 붙었다. 다들 같은 향수에 젖어있었나 보다. 그날도 소매 끝이 해져가는 갈색 점퍼 안에 니트 소매를 손가락과 손바닥 경계까지 끌어올려 입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카테드랄 뒤쪽에 있는 쌀국수 가게였다. '하'가 이미 먹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스페인에 와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따뜻한 소고기 국물의 온기가 그릇을 통해 전해졌다. 움푹 파인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니 온몸이 사르르 녹았다. 얼마 만에 먹는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이었던가. 국물 있는 음식을 먹어도 국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던 나였지만 그날은 국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쌀국수 가게를 나와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젤라토를 먹었다. 마침 젤라토 가게가 쌀국수 가게 옆에 붙어 있었다. 뱃속은 따뜻한데 입안은 아이스크림의 냉기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디즈니 매장을 지나 '천사들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12월 첫날인데도 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었다. 길 한중간에는 'Feliz Navidad'이라 적힌 띠를 두른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반대편 건물에는 거대한 온도계가 걸려 있었는데 10도 언저리까지 빨간 선이 올라와 있었다. 그 모든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이 터진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채 의식을 거치지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한국 가기 싫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친구들도 놀랐고 심지어 그 말을 뱉은 나도 놀랐다.


1417520951950.jpeg '아, 한국 가기 싫다'라는 말을 뱉었을 때 서있던 거리


그전까지는 나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을 완벽히 분리해서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내 삶이고 여기서 보내는 시간은 잠시의 일탈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 마음을 바탕에 깔고 있어 바르셀로나에 정도를 넘어선 정을 주지 않았다. 여행지 이상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데 정을 줬나 보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을 내 삶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다음 해 12월 1일은 한국에서 맞았다. 도서관에 있다가 후배와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찬바람이 훅 불어왔다. 후배가 말했다.

"작년 12월 1일이 엄청 추웠던 걸로 유명했잖아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작년 12월 1일의 기억과는 달랐지만, 그랬냐고 오늘도 춥다고 말했다. 여전히 12월 1일만 되면 어느 해든 그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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