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른 크리스마스

텅 빈 크리스마스, 포도 12알의 새해, 그리고 달콤한 동방박사의 날

by 사과실

이미 12월에 들어선 순간 온 도시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람블라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에 반짝이는 전구가 걸리고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카테드랄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크리스마스 꽃'으로 알려진 커다란 포인세티아와 예수 탄생을 담은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만 봤던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를 판매하는 곳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12월이 되면 창고에서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장식했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바르셀로나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축제라기 보다는 명절에 가까웠다. 룸메이트들은 긴 연휴를 맞이해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유럽 국가에서 온 '에라스무스'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행기표를 예약해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아니면 긴 연휴를 이용해 유럽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도 많았다. 네타방의 친구들도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등 각자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짰다.




크리스마스 이브, 일찍 여행길에 오른 친구들을 제외하고 네타방의 다른 친구들과 람블라를 찾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기숙사에만 있기에는 아쉬웠다. 그렇다고 특별히 갈 곳이 있지는 않았다. 항상 가는 람블라와 카탈루냐 광장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사'가 모리츠 맥주 공장을 제안했다. 모리츠는 스페인 맥주 브랜드로 본사가 바르셀로나에 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출발하는 페로카릴 중 외벽에 온통 모리츠 광고가 그려진 열차가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에서 모리츠의 입지는 꽤나 높다. 내가 느끼기에 모리츠 맥주는 확실히 다른 맥주와 맛이 달랐는데, 뭐랄까, 보리맛이 강해서인지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포만감을 준 달까? 그래서 평소에는 모리츠 맥주를 즐겨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장에서 먹는 맥주라는 특별함에 매료되어 모리츠 맥주 공장을 가게 되었다.


IMG_20140913_223018.jpg 모리츠로 도배된 페로까릴


희한하게도 모리츠 맥주 공장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맥주도 안주도 아니고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을 가려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갔는데, 일단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멀어서 좀 놀랐다. 그런데 화장실로 가는 통로 옆 전면 유리를 통해 공장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유리 너머에 위치한 커다란 맥주 양조 기계에 압도되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며 짧은 공장 투어를 마쳤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대한 감탄은 나만 느낀 감상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갈 계획이 없던 친구들도 다녀와서는 동그래진 눈으로 놀라움을 표현했다.




당시 상식으로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은 대목에 너도나도 오랫동안 장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저녁 8시를 전후로 문을 닫았다. '마'가 한 직원에게 왜 이렇게 빨리 닫는지를 물었다.

"우리도 연휴를 즐겨야죠."

듣고 보니 당연한 말이지만 꽤나 충격받았다. 이런 날 일찍 문을 닫는 것은 손해일텐데.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이익을 챙기는 것보다 그 순간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그곳에서 느꼈던 여유가 유럽 고유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여유를 갈망하는 사대주의에 빠졌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적어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을 일찍 닫았던 이유가 특유의 여유로운 유럽 문화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 크리스마스를 하나의 명절로 본다면 우리도 설 연휴와 추석 연휴에 많이들 쉬지 않는가. 시선을 달리해본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명절 풍경일뿐이었다.


IMG_20141224_164915.jpg 예수 탄생의 순간을 보여주는 시청 앞 디오라마


들어갈 곳을 못 찾았던 우리는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시청 앞 광장에 다다랐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예수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 켠에 아기 예수가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동방박사가 건너오고 있었다.

우리는 바르셀로네타로 가서 잠시 바다를 구경하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체력이 남은 친구들만 '마'의 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은 각자 집에서 한 봉지씩 들고 왔다. 라면이 웬만한 식재료보다 비싸서 자기가 먹을 라면은 자기가 직접 들고 오는 것이 예의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갔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은 방에서 편안히 쉬었다. 그날부터 나는 커다란 기숙사방을 약 2주간 독차지했다. 텅 비어있는 느낌은 우리 방뿐만 아니라 기숙사 전체에서 느껴졌다. 기숙사 단지 중앙에 펼쳐진 공터를 지나다니는 사람 수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고요해졌다.


조용해진 기숙사 단지에서는 시간도 더 느리게 가는듯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 해의 끝이 다가왔다.

12월 31일, 시차를 감안해 오후 4시에 이미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새해 문자를 보냈다. 참으로 이상했다. 그곳은 이미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아직 과거에 있다니. 사실 시간여행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와 나는 미리 새해 전야에 먹을 음식과 술을 장만해놓았다. 스페인에는 새해로 넘어가는 0시에 종이 12번 울리는데 종이 울리는 것에 맞춰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있다. '마'와 나는 내 방에 모여 작은 전야제 파티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 방에 룸메이트가 설치해놓은 티비가 있어서 새해 특별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채널을 돌리다가 가장 화려해보이는 채널에서 멈췄다.

드디어 새해를 맞이하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포도 12알을 구하지 못해 포도주 12모금으로 대체했다. 종이 한 번 울릴 때마다 화면에서 포도 알이 하나씩 사라졌나 아니면 반대로 나타났던가 했는데 우리는 그 신호에 맞춰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생각보다 종이 울리는 속도가 빨라서 포도주가 역류할 뻔 했다. 포도알로 했으면 삼키다가 목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 12번의 종소리가 끝나자 화면에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새해를 알리는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Feliz Año Nuevo!




동방박사의 날을 마지막으로 연휴가 끝이 났다. 동방박사의 날 전후로 학생들이 돌아오면서 기숙사 단지도 활기를 찾았다. 동방박사의 날은 주현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날이다. 태어나서 동방박사의 날이 1월 6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아니 아예 그런 날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동방박사의 날 역시 스페인에서는 커다란 행사가 있는 날이라 카탈루냐 광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기숙사가 있는 베야테라까지 동방박사의 날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도 동방박사를 보고 싶어서 시간 맞춰 베야테라역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역 주변이 붐볐는데 베야테라에 사는 아이란 아이는 전부 나온 것 같았다. 3명의 동방박사는 단상에 서서 번갈아가며 긴 글을 읽더니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준 후 의외로 평범하게(?) 페로카릴을 타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동방박사의 날 동방박사가 사탕을 나눠주는 것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동방박사를 만나고 왔던 '아'가 가방과 주머니에 사탕을 받아와서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우리는 '아'를 동방박사라고 부르며 작은 사탕 더미에 열광했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고 우리 모두 한 살을 더 먹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것보다도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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