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os, Adeu, Farewell, 이만 안녕

어떤 언어로 얘기하든 작별인사뿐

by 사과실

네타방 중 내가 처음이었다.


사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내가 처음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학교 오리엔테이션 날 종강 날짜를 정확히 알게 되고 나서, 기숙사 입주 기간을 2주 줄이고 수수료까지 물면서 비행기 탑승 날짜를 앞당겼다. 그때는 번거로운 일을 하면서까지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마지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돌아가는 날을 더 늦추고 싶어 진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니.'

한국에서의 생활이 진짜 내 삶이고 바르셀로나에서의 삶은 경험의 한 자락이라고 주장했던 나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곳에서의 삶과 사랑에 빠졌는데 이별이라니.


솔직해지자면 한국에서의 삶이 두려웠고, 더 솔직해지자면 싫었다. 그토록 경계했던 감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누누이 말했던 대로 한국에서의 삶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삶과 달랐다. 성실한 학생을 넘어서서 노력하고 애쓰고 아등바등해야 했다. 현실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을 겪어본 후라 기존의 내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진심으로 바랐다, 이곳에서 깨달은 모든 것들을 잊지 않기를.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주 중 전반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해 겨울에는 눈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런던을 떠나는 날 굵은 눈발이 펑펑 쏟아졌다.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런던과 달리 평화로웠다. 흐릿함 하나 없이 청아했다.

작별인사의 시작은 룸메이트들이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전 날, 외출했다가 기숙사로 돌아오니 식탁에 선물과 함께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액자에는 룸메이트 3명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A4용지에 일반 프린터기를 이용해 칼라로 출력한 사진이었다. 겉보기에는 투박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룸메이트들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뒤엉켜 떠올랐다. 시간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하나의 추억이 다른 추억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든 것에 고마웠고 더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것에 미안했다. 네타방과 보낸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룸메이트들에게는 소홀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왜 균형을 맞추지 못했을까?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은 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룸메이트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 날은 학기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룸메이트들은 작별인사를 전달한 뒤 본가로 떠났다. 그들의 부모님과 'M'의 남자친구도 왔는데 다들 내게 진심이 담긴 작별인사를 건넸다.

'Adios', 'Adeu', 'Farewell'

언어는 달랐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같았다.

'이만, 안녕.'




룸메이트들이 떠나고 네타방의 친구들이 방으로 찾아왔다. 송별회는 런던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했기 때문에 가벼운 식사 후 짐 싸는 것을 도와주려는 지원군들이었다. 한국 음식이 차지했던 공간에는 새로 산 옷과 기념품들이 들어갔다. 다음 날 입을 옷을 제외하고 바르셀로나에서의 모든 짐과 추억이 커다란 이민 가방 안에 다 들어갔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방에서 뒷정리를 하는데 어느덧 새벽 4시가 되었다. 막상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밤은 이 방에서 자고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더 오래 눈을 뜨고 있었다.


고맙게도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자'가 차를 빌렸다. 이제 나의 모든 행동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마지막으로 앉는 식탁, 마지막으로 닫는 창문, 마지막으로 잡는 문고리. 수백 번도 더 열고 닫았던 방문이었는데 문고리마저 내가 떠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차에 짐을 다 싣고 나서 '하'와 작별인사를 했다. '마'와 '사'는 공항까지 배웅해줬지만 '하'는 기숙사에서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영원한 이별도 아니고 6개월 후면 '하'도 한국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하지만 따듯한 포옹으로 대신한 인사는 둘 사이의 작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과 추억에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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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도 애틋한 포옹이 이어졌다. 하지만 공항으로 들어선 순간 정신이 없었다. 일단 시간이 촉박해서 후다닥 체크인을 했는데 짐이 많아서 패키징을 하러 왔다 갔다 했다. 탑승을 앞두고 게이트 앞에 앉아있을 때도,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창 너머로 지중해가 보였다. 바다는 한가운데로 나아갈수록 더욱 푸르러졌다. 새파란 바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가슴속에 단단한 응어리가 지더니 눈물로 쪼개져 흘러내렸다. 소리 내어 운 것은 아니었기에 옆에 앉은 사람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이제 떠나는구나. 전부 다 안녕이구나.'




도하에서 환승한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자지 않았다.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될까 하여 내내 영화를 보면서 버텼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보다도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보이는 한국어 표지판이 내가 한국에 왔음을 실감 나게 했다. 긴장을 늦추자 안정감이 찾아왔다. 익숙한 환경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엄마께서 해주신 집밥을 먹었다. 매콤한 닭가슴살 볶음과 하얀 쌀밥, 밑반찬. 바르셀로나에서부터 먼길을 함께 온 선물을 나눠드렸고 네덜란드에서 온 스트룹 와플이 후식이었다.


시차 적응을 위해 비행기에서부터 고생했건만 밤이 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간사하게도 바르셀로나에 적응했던 나의 모든 세포들이 다시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때 '사'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조용히 받았다. 네타방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사'는 공항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울었다고 했다. 마음이 찡했다. 한국에 온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친구들이 보고 싶었고 바르셀로나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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