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되어버린 시간들

추억 속에 살거나 추억을 간직하며 살거나

by 사과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한동안 바르셀로나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는 아침에 요플레를 먹었는데,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는 새벽에도 곧잘 나가서 산책을 했는데, 바르셀로나 지하철은 내릴 때 문에 달린 버튼을 눌러야했는데, 바르셀로나는 겨울에도 낮 기온이 여기만큼 낮지 않았는데 등등. 주위 사람들이 질려버릴 정도로 '바르셀로나'가 문장의 첫 단어였다. 엄마께서는 '6개월 살고 왔으면서 말하는 건 6년 살다 온 사람같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깨달은 바를 전부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봐. 다행히도 한 번 넓혀진 견문은 다시 좁아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등바등 거릴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오글거리지만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보기 시작했다. 세상은 땅따먹기가 아니라 컬러링북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한 칸씩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씩 색깔을 입혀 나만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M'과 연락을 계속 했고 그다음 학기에는 남미 학생이 내가 살던 자리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 친구는 스페인어를 잘해서 다행이다'라고 하자 'M'은 크게 웃더니 그래도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해줬다. 몇 달 후에는 'A'군과도 몇 마디 나눴다. 한국에 잘 갔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네타방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부를 묻고 정기적으로 만난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초등학교 때 얘기를 하고,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면 고등학교 때 얘기를 하듯, 바르셀로나에서의 추억은 유한한데도 우리는 만나면 항상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던 시절을 얘기한다. 같은 얘기를 반복해도 항상 재밌고 같은 부분에서 자지러지게 웃는다.




어느 나라를 갔다왔든 교환학생을 갔다온 사람들의 그후의 삶은 비슷하다. 교환학생으로서의 생활에 금단증상을 보이는 것이 다반사인데 금단증상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두 가지다.

첫 번째, 어떻게든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부류가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해외 생활로 잡고 해외취업을 하기도 한다. 아슬아슬한 나이로 워킹홀리데이에 가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교환학생 시절은 추억으로 남기고 주어진 삶에 집중한다. 나의 경우 두 번째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나도 해외취업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라에서 하는 해외취업 프로그램도 알아보고 워킹홀리데이 상담도 두 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계획을 구체화할수록 과연 최선의 결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의문이 든 이유는 하나였다. 다시는 그때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서의 생활은 거기서 끝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방식으로 해외를 가더라도 그때와 같은 기분이나 경험을 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때만큼 만족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내 결정에 대한 진심을 들여다봤다. 여러겹의 포장지를 벗기고 나서 찾은 것은 여운이었다. 그때에 대한 향수가 여운을 남겼고 다시 돌아갈 것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 여운에 확신이 있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속에 있던 여운은 뜬구름이었다. 결국 나는 두 번째 부류가 되기로 결심했다. 추억에 머물러 있지 말고 더 나아가기로.




속 빈 여운에 대한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우리 엄마랑 똑같은 얘기를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두 번째 부류가 되기로 했다고 해서 첫 번째 부류를 뜬구름이나 잡는 허황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도 첫 번째 부류가 꽤 있고 해외취업으로 성공한 경우도 더럿 있다. 결국 어떤 부류에 속하든지 그 추억을 가지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느냐가 중요하다.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게 됐다. 사실 나는 대학생 때까지 내가 비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길이 남을 '난사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이 전환점이 되어 내 생각을 바꿔놨다. 평범과 비범은 중요하지 않다고, 지금 내가 사는 삶에 집중하면 그 삶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그래서 내게 바르셀로나에서의 삶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냈던, 나만 아는 바르셀로나는 좋은 추억으로 시작해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고, 다시 없을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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