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냈던 두 가지 시간

때로는 꿋꿋하게 혼자서, 때로는 다정하게 둘이서

by 사과실

11월이 끝나갔다. 첫 번째 고비라는 3개월 차의 막바지가 되자 내 생활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비가 그쳤다는 것이었다. 뜨거운 태양, 시원한 지중해, 열정적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에게 한없이 우울했던 비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활기를 찾았고 잠시 미루었던 외출을 다시 시작했다. 오랜 비가 그친 후 올려다 본 하늘은 세상 푸르렀다. 이것은 지역과 상관없이 날씨의 진리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았다. 죄책감과 재촉 없이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으면서 낮이나 밤이나 하늘을 구경했는데 어디서 봤던 하늘보다도 높게 느껴졌다. 높고 푸른 하늘을 동경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내 시간은 두 가지로 분류됐다. 첫 째는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여행객 모드로 돌아갔는데 3개월 동안 미루다 아직까지 가지 못했던 곳을 가보는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의 하늘에서 뚜렷하게 맑은 하늘을 본 첫날 내가 선택한 곳은 람블라의 박물관이었다. 람블라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여럿 있다. 취향에 맞추어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됐는데 그날 나는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과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을 골랐다.



이 도시의 한철도 끝이 난 지 오래였다. 여행객으로 북적였던 여름이 지나고 9월 중순으로 넘어가면 남아있던 마지막 여행객까지 모조리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찾아왔던 여행객은 대체로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휴가나 방학과 같이 누군가가 정해준 일정이 아니라 스스로 일정을 계획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선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대신에 여유와 중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 끼어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사실 찾는 과정에서 길을 좀 헤맸다. 고딕 지구는 길이 꼬불꼬불 복잡하고 골목이 많은데 카테드랄 뒤편은 대부분의 거리가 비슷한 풍경을 만든다. 똑같은 길을 서너 번 오르내린 끝에 입구를 찾았다.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 앞 해변으로 가는 길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은 총 3곳에 있다. 3곳 중 하나는 해변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물결에 출렁거리는 요트와 그 너머의 노을과 마주 보고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쉽게 내어주곤 한다. 핑계지만 내 시선 또한 수평선에 뺏겨버려 한참 후에야 내 뒤통수가 보고 있던 건물이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람블라의 역사박물관을 찾았으니 나름 공평한 처사다. 박물관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요약한 영상을 시청해야 한다. 그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것이 보상받듯 영상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익숙했다. 영상을 쭉 보고 있으니 스페인의 역사가, 특히 바르셀로나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비슷한 시기에 내전을 겪었던 것,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겪게 된 도약과 외면. 그 어느 시대에도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간 여행을 해서 도착했던 곳은 옛 로마 시대의 도시였다. 터밖에 안 남았지만 로마 시대의 한 마을을 거닐어 볼 수 있었다.




역사박물관에서 나와 그다음으로는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으로 향했다. 카테드랄 앞을 지나갈 때마다 카테드랄 옆에 꼿꼿하게 서있던 박물관 간판을 보며 저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해놓은 곳이라 그런지 입구에 사람이 너무 없어 운영을 안 하는 줄 알았다. 문 앞에 서서 기웃거리고 있는 나를 한 직원이 보고 직접 문을 열어 안내했다. 그곳은 프레데릭 마레스라는 사람의 개인 수집품을 전시해놓은 곳인데 파이프, 문고리, 엽서, 종이 인형 등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신기하거나 독특한 것이 많아서 본래의 것을 본떠 기념품으로 팔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념품 가게는 찾지 못했다.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박물관을 보고 온 데다가 지하부터 지상 4층까지 이어지는 전시를 종일 서서 관람하려니 다리가 쑤셨다. 4층까지 구경을 끝냈을 때는 성취감이 들었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창밖으로 카테드랄 앞 광장이 보였고, 그 앞으로는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토요일의 카테드랄은 한 낮 동안 문을 닫았다가 5시 15분부터 다시 관람객을 받았다. 그때는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 앞 작은 공연


박물관을 나섰을 때 대문 밖으로부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거리의 악사가 작은 연주회를 열었고 그 앞으로는 구경꾼이 몰려있었다. 어느 나라나 거리의 악사는 있는 법이지만 연주하는 음악 장르는 다를 것이다. 연주하는 악기도 다른 법이니깐. 거리의 악사는 박물관 앞, 지하철 안, 지하철역 환승 구간 곳곳에서 연주했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스페인스러운' 음악을 연주했다. 슬프면서도 정열적인 분위기의 곡조가 울려 퍼졌고 악기의 선율은 가슴을 후볐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것을 묘하게 즐겼고 그것이 스페인 음악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내 시간 중 두 번째는 바로 A군과 보내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다. 만나서 거리를 걷고 공원을 가고 얘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얘기도 주로 A군의 입에서 시작됐으며 나는 리액션을 담당했다. 다른 언어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했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침묵이었고, 그것은 우리 사이를 좁히지 못했다. 어쩌다 내가 먼저 입을 떼면 A군의 눈과 고개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가끔 A군을 돌아보면 과연 A군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내 얘기를 듣는 A군의 눈빛을 보면 내 이야기를 듣는다기 보다는 나 자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을 볼 때면 내 얘기를 듣건 말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A군은 말보로 레드를 폈다. 어렴풋한 지식으로 말보로 레드가 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A군은 내 앞에서는 피지 않았는데 그날은 내가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연기는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덕분에 나는 조금 떨어져서 A군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행동이었지만 A군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해왔던 행동이었다. 나에게는 낯설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모습. 그에 손에 쥐어진 붉은색의 담뱃갑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말보로 담배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가난했지만, 여자는 지방 유지의 딸이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딸을 먼 친척 집으로 보냈다. 남자는 여자를 찾아다녔고 시간이 흘러 결국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생겼다. 남자는 여자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내가 담배 한 대를 필 동안만 내 옆에 있어줄 수 있어?"

담배는 빠르게 타들어갔고, 짧은 몇 모금으로 둘의 마지막 만남은 끝났다.

남자는 담배를 좀 더 오래 태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래서 필터가 탄생했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 마지막 한 모금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회사,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것을 로맨틱하게 만들어준 이야기.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낭만이 과다 함유되어 억지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그 얘기는 회사에서 만들어낸 상술이라는 소문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필터를 발명하게 된 이유는 아닐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보고 싶어 담배 한 대를 길게 태웠던 사람은 분명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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