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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Aug 25. 2023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집은 없다

마음에 드는 곳 얻으시려면 금액을 올리셔야 해요

자취를 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회사에서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가장 좋은 것은 회사가 있는 동네에 집을 구하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집값이 너무 비싼 동네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알아봐야 했다. 그래도 같은 지하철 라인은 포기할 수 없어서 지하철을 기준으로 검색했다. 한강의 북쪽에서만 살아왔던 내게 남쪽 세상은 한 곳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중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가 마침 예산에도 맞아서 친구의 동네로 범위를 좁혔다. 집을 구하는 과정이 선착순은 아니지만 좋은 곳은 빨리 계약되기 때문에 재빠르게 매물을 골라 부동산에 연락했다. 부동산 앱을 통해서 연락하면 굳이 전화할 필요 없이 앱에 연동된 시스템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관심 있다고 말한 매물이 거래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바로 이틀 후에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처음 집을 보러 가던 날은 화창하지만 초겨울의 추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주말이었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서 약속시간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라 처음 와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내가 생활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구석구석이 달라 보였다. 번화가가 바로 앞에 있어서 편의시설까지 도보로 2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여기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 카페를 나와 오피스텔로 향했다.




겨울바람을 피해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부동산 중개인을 기다렸다. 곧 중개인에게서 전화가 왔고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중개인은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다. 내 또래의 젊은 부동산 중개인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중개인은 내게 자취하게 된 이유와 왜 이 지역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었다. 직업적인 특성이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떠있는 듯했고 내 대답의 길이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첫 번째로 들어간 집은 공실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인지 조금 추웠는데 기본 인테리어가 흰색과 짙은 푸른색으로 이루어졌다 보니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언제든지 입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마음에 걸렸던 것은 부엌 찬장의 색이 조금 바랬다는 것과 가구가 놓였던 곳으로 추측되는 벽지가 푸슬푸슬하게 낡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막상 가구를 다 놓고 나면 너무 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점과 아쉬운 점을 말하자 중개인은 그럼 다음 집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다음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가 중개인의 차에 탔다. 나는 아직 차가 없어서 주차 공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주차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었다. 중개인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했지만 이곳 지리를 정확하게는 모르는 나는 지도앱을 켜고 위치를 확인했다. 첫 번째 집보다 지하철역에 가까웠으므로 위치만 봐서는 조건이 더 좋았다. 첫 번째 오피스텔과는 달리 두 번째 오피스텔의 첫인상은 건물 외관과 로비가 아니라 지하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은 굉장히 넓고 쾌적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공간 역시 앞서 봤던 곳보다 넓었다.


두 번째 집에는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라는 직감이 들며 소름이 끼쳤다. 흰색과 옅은 갈색으로 이루어진 인테리어는 따듯한 느낌을 주었고 옷장을 포함해서 수납공간이 굉장히 많았다. 무엇보다도 화장대와 책상, 심지어 책장까지 빌트인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세 가지 모두 무조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나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했던가. 커튼으로 창문을 막아 놓지 않으면 안팎이 서로 다 보이는 2층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밖으로는 바로 앞이 주유소라서 볼만한 풍경이 아닌 데다가 바깥 소음이 그대로 올라와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다 들렸다. 창밖으로 붙어 있는 작은 발코니는 누군가에게는 분위기 있는 옵션이 될 수도 있겠지만 2층의 모든 세대 발코니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소름이 가라앉았다.


오늘 내게 준비된 집은 두 개가 전부였다. 둘 다 마음에 쏙 들지 않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자 부동산 중개인은 어쩔 수 없지만 공감은 한다는 말투로 '마음에 드는 곳 얻으시려면 금액을 올리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결국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 본 집 중 두 번째 집은 2층인 점만 빼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층의 집을 구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바로 부동산 앱에 접속했고 같은 건물의 더 높은 층에 있는 집이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이 급해져서 앱으로 할 수 있는 간편 문의를 제치고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매물은 아직 거래가 가능한 상태였고 돌아오는 주중에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퇴근하고 집을 보러 가는 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업무에 박차를 가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나버렸기 때문이다. 오피스텔 출입구 앞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인은 지난번 만났던 사람과는 달리 중년의 여자였고 내게 질문하기보다는 집을 홍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지난번처럼 꼼꼼하게 보지 않아서 생각보다 집 구경이 빨리 끝났다. 이미 집 구조는 다 알고 있었으므로 창밖 풍경만 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간절하게 원했던 매물이었으므로 웬만하면 바로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편견이 생길 정도로 집이 더러웠다. 집을 보러 들어갈 때만 해도 시원했던 마음이 나올 때는 찜찜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고민했다. 앞으로 더 집을 보러 다니기엔 이미 지쳐버렸고 더 나은 집, 즉 내 마음에 더 드는 집이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 더러운 것은 입주 청소를 하면 좋아진다는 엄마의 말씀에 설득당해서 마지막으로 본 집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부동산에 연락해서 계약금으로 100만 원을 입금하기 전까지는 아직 내 집에 생겼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업무 하나를 해치운 것처럼 마음이 가볍기만 했는데 사무실에 앉아 상황을 곱씹으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자취라이프가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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