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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Aug 30. 2023

돈이 없어도 집을 구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리다

전셋집 계약서 작성부터 대출 신청까지의 여정

부동산 중개인에게 가계약금으로 100만 원을 보내면서 그동안 부동산 앱을 뒤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구하러 다녔던 여정이 끝났다. 하지만 대출이라는 또 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계약서가 있어야 대출 신청할 수 있으니 가계약금을 보내기가 무섭게 계약서 작성은 언제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중개인은 집주인과 상의한 후 이틀 후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다.




계약서를 작성하러 가는 날의 퇴근길은 집을 러 갈 때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달 후면 매일 다닐 출퇴근길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정이 붙었다. 출퇴근 시간이면 사람들로 붐벼 지옥철로 유명한 노선이지만 회사까지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으니 견딜만할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 덕분에 통근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 압도적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부동산 계약 경험이 많은 어른이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해서 엄마와 함께 부동산을 찾았다. 엄마께서는 지옥철에 꽤 큰 충격을 받으셨는지 지하철역에서 나를 보시자마자 내앞으로 매일 같이 사람들로 꽉 막힌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셨다. 나는 40분만 참으면 되니 걱정 없다며 엄마를 안심시켰고 무엇보다 전체 통근 시간이 절반으로 주는 기적을 강조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 엄마의 날카로운 눈이 주변 상권으로 향했다. 널찍한 도로, 끊임없는 유동인구, 카페, 베이커리, 편의점 등 넘쳐나는 편의시설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무엇보다도 지하철역 출구에서 오피스텔이 보인다는 점을 아주 만족스러워하셨다. 부모님 댁은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역세권에 산다는 것의 장점을 누구보다 공감하신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계약을 결정한 만큼 스스로도 잘 골랐다고 생각지만 엄마인정에 마음이 들떠 부동산에 도착하는 내내 오피스텔과 동네 칭찬을 늘어놨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집주인은 일찍 도착해서 차도 한 잔 마신 모양이었다. 중년의 부부였는데 여자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고 남자는 종이컵을 든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집주인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계약이 진행됐다. 계약서는 한 장 짜리였지만 계약조건과 특약 사항이 작은 글씨로 촘촘하게 적혀 있어서 종이를 바짝 가까이 두고 꼼꼼하게 읽었다. 대출이 거절될 시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내용의 특약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는 종이를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총비용의 5%계약금으로 이체하고 계약서와 영수증에 서명을 하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계약도 하고 다 컸네'라는 엄마의 말씀에는 새삼스럽게 기특함이 묻어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하고 긴장되는 관문만이 남았다. 돈이 없어도 집을 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제도, 바로 대출이다. 대출이라는 마법에는 단계가 있다. 먼저,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내가 신청한 청년전용 버팀목전세자금대출은 연소득이 5천만 원 이하이며, 무주택 세대주이거나 예비 세대주여야 하고, 나이가 만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면 임차보증금, 즉 전셋값의 80% 이내에서 최대 2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80%만 대출이 된다는 점이다. 전셋값이 2억이더라도 2억을 전부 대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중 80%인 1억 6천만 원만 대출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4천만 원은 내가 부담해야 한다.


마법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필요한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확정일자를 받은 계약서, 영수증, 재직증명서 등 주택도시기금 홈페이지에 안내된 서류와 은행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준비하면 된다. 그럼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준비한 서류를 들고 직접 은행을 방문해서 대출을 신청하는 것이다. 계약한 집이 위치한 동네의 은행 지점으로 가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휴가를 내서 방문했다. 다행히도 은행 모바일앱에서 미리 상담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가 있어서 은행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직원을 만다.


직원이 내가 가져간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 대출 신청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보다 느렸는지 같이 작성해 보자며 서류의 핵심을 빠르게 짚어줬다. 두껍게 쌓여있던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가더니 드디어 바닥 보였다. 신청을 끝내고 은행을 나왔을 때는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집을 계약할 때보다 더 오래 걸리다니, 집을 얻는 것보다 돈을 얻는 게 더 어렵구나.




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몸이 힘들었다면 대출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마음을 졸였다. 혹시나 거절을 당할까 봐 걱정이었고 심사가 늦어져서 집 잔금을 치르는 날 대출이 나오지 않을까 봐도 걱정이었다. 결국 은행에 전화를 걸어 대출 심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봤다. 직원은 대출 심사 결과는 별도로 통보되지 않으며 문제가 있을 때만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만약 문제가 없다면 잔금을 치르는 날 아침에 문자가 갈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잔금을  치를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퇴근을 하거나 샤워를 하다가 문득문득 대출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덮치면 이제까지 연락이 없는 것은 대출이 통과된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였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새해를 맞았다. 이제 입주까지 남은 날이 열손가락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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